스웨덴 예테보리에 위치한 토슬란다(Torslanda). 이름처럼 '토르의 땅(Thor's land)'이란 의미의 이 지역에는 1964년에 문을 연 볼보의 가장 오래된 생산공장이 있다. 6500여명의 직원들이 3교대로 근무하며 연간 30만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는 이 곳에서는 XC90, XC60, V60 크로스컨트리 등 국내에 판매되는 볼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볼보 토슬란다 공장
볼보 토슬란다 공장

근로자 수와 연간 생산능력만큼이나 그 규모도 거대하다. 공장의 전체 면적은 45만m²(약 13만6000평)로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6배를 넘는다. 카트를 타고 공장을 둘러보는 데에만 꼬박 1시간이 걸렸다.

# '튼튼한 볼보'의 비결, 보론 스틸이 뭐에요?

프레스 파트에서 눈길을 끈 건 공장 한편을 가득 메운 철강 코일이었다. 두루마리 휴지처럼 돌돌 말려있는 철판은 2300톤에 달하는 고압 프레스를 통해 차체 부품 모양으로 바뀐다. 가공을 마친 뒤 발생하는 철판 자투리는 전문 수거업체를 통해 철저히 재활용한다. 

인상적이었던 건 공장 내부가 생각보다 조용했다는 점이다. 여러 완성차 공장의 프레스 공정을 살펴봤지만, 볼보의 프레스 시설은 그리 시끄럽지 않았다. 안내를 맡은 직원은 첨단 공법을 사용해 소음을 최소화했고, 이를 통해 근로자들의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볼보 토슬란다 공장
볼보 토슬란다 공장

투어 카트는 성형을 마친 철판을 따라 조립 설비로 이동했다. 이곳에선 철판을 넘겨받은 로봇들이 일사불란하게 불꽃을 튀기며 용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차체에 가해지는 용접만 5000번 이상이다. 모든 용접은 로봇이 했고, 용접 정도가 적정했는지도 스캔 카메라가 달린 로봇들이 판단한다. 물론 차체 조립 및 용접 품질을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건 사람이다. 

안내를 맡은 관계자는 "부품 생산을 담당한 직원들의 정보와 생산 일자도 모두 확인할 수 있어 누가 언제 이 부품을 만들었는지도 모두 확인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도장 작업을 거치지 않은, 이른바 '화이트 바디'라고 불리는 차체 곳곳엔 은빛 철판과 대비되는 시커먼 금속 재질도 눈에 띄었다. 볼보가 스웨덴의 철강회사 사브(SSAB, 자동차·항공기 제조사와는 다른 곳이다), 룰레오 공과대학과 함께 개발한 신소재 '보론 스틸' 이다. 일반적인 강철보다 튼튼하다 보니 높은 강성이 필요한 부품을 제조하는 데 활용하고 있단다. 특수강 소재지만 용접이나 프레스 과정은 일반적인 강철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 '안전한 차'를 만드는 '안전한 공장'

조립을 마친 차체는 도장 공장으로 이동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파워트레인과 시트, 대시보드 등 내장재 작업이 한창이었다. 많은 과정에서 로봇의 도움을 받지만, 차체 작업과 마찬가지로 모든 최종 결과를 판단하는 것 역시 인간이다.

볼보 토슬란다 공장 (메리지 포인트)
볼보 토슬란다 공장 (메리지 포인트)

토슬란다 공장의 백미는 '메리지 포인트(Marriage point)'다. 도장을 마친 차체와 파워트레인을 얹은 언더바디가 만나 하나의 자동차로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다. 볼보 관계자들은 이 같은 광경이 두 연인이 하나의 부부가 되는 결 연상시킨다며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자동차가 되어 최종 라인에 도달한 차들은 작업자들에 의해 내장재 조립 작업을 거친다. 여기선 작업자들이 편안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차체와 부품의 위치를 이리저리 틀어가며 작업을 이어갔는데, 허리를 과도하게 굽힌다거나 팔을 멀리 뻗는 등 신체에 무리가 가는 자세는 볼 수 없었다. 

실제로도 토슬란다 공장은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었다. 모든 이동 통로 바닥은 나무로 설계해 부상 위험을 줄였고,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 갑작스레 로봇이나 프레스 작업실의 출입문이 열릴 경우 모든 생산 설비가 멈춰 서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었다. 

볼보 토슬란다 공장
볼보 토슬란다 공장

공장 관계자는 최근까지 보고된 산업재해가 일절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담이 아니라 현장보다 본사 사무실에서 넘어져 다치는 직원들이 더 많을 정도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안전과 생산 효율을 생각하면 로봇 공정 비중을 더 늘릴 수 있을 만도 하지만, 볼보 측의 생각은 달랐다. 이 관계자는 "생산 과정에서 사람과 로봇 간의 업무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모든 공정을 자동화하긴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 볼보 공장 근로자의 30%가 여성인 이유

언더바디와 차체가 만나는 메리지포인트, 분주하게 움직이는 용접 로봇, 거대한 프레스 기기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공장에 있던 '사람들' 이었다.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의 국내 공장 분위기와는 아주 달랐다. 휴식 공간에서 동료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로 공장 내부를 자유롭게 오가며 다른 파트의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면 흡사 서울 도심 어딘가에 있을법한 IT 스타트업 사무실 같았다. 

볼보 토슬란다 공장
볼보 토슬란다 공장

일 자체를 즐기는 것 같은 직원들의 밝은 표정도 보기 좋았다. 에어팟을 낀 채 무심히 본인의 일을 하고 있다가도 눈이 마주친 직원들은 반갑게 웃어주며 인사를 건넸다. 카트가 지나가는 내내 곳곳에서 "웰컴"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취재하면서 이렇게까지 환영받아보기도 처음이다.

토슬란다 공장이 다른 생산시설들과 유난히 달랐던 건 이뿐만이 아니다. 작업자들의 연령대가 젊어 보였고, 여성 근로자들도 유독 많았다. 실제로 토슬란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30%, 약 2000여명은  여성이다. 공장의 안내를 맡았던 직원도 여성이었다. 

그는 "최종 품질 검수나 의장 등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 공정들에 여성들이 투입되고 있다"며 "여성들이 더 세심한 작업을 잘한다는 건 단순한 인식이 아닌 통계 수치로도 입증되어있다"라고 설명했다. 

# 미래를 준비하는 토슬란다, '생산도 친환경적으로'

토슬란다 공장은 자동차 공장으로선 처음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한 곳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쓴 전기와 난방 에너지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없다는 뜻이다. 

볼보 토슬란다 공장
볼보 토슬란다 공장

이곳은 2008년부터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되고 있다. 공장을 데우는 난방 에너지의 50%는 바이오가스를 이용하고 있고, 나머지 50%는 산업 폐열을 활용한 지역난방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절약된 난방열은 다시 도시로 공급해 지역 사회에 돌려주고 있다. 

볼보는 이 같은 노력을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2023년까지 연간 2만MWh의 전기를 줄일 계획인데, 이는 스웨덴 가정 1350여가구의 연간 에너지 사용량에 해당한다. 2025년까지 차량 1대를 만드는 데에 쓰이는 에너지도 30%까지 감축시킬 계획이다. 

토슬란다 공장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볼보는 2040년까지 완전한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25년까지 전 세계 모든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0'으로 만들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고, 순환 경제를 받아들여 원자재의 재활용 및 재사용 비중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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