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시장에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정의선 회장의 속내는 무엇일까.

현대차와 기아가 1월 경기도 용인과 전북 정읍에 각각 '자동차매매업' 등록 신청을 마쳤다. 자동차매매업은 신차와 이륜차를 제외한 중고차를 대상으로 매매 및 알선, 등록 신청 대행 업무 등을 제공한다(자동차관리법 제2조 제7호). 즉, 현대기아차가 직접 중고차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현대글로비스도 1월 온라인 중고차 중개 플랫폼 '오토벨'을 리뉴얼 론칭했다. 그동안 현대글로비스의 중고차 사업은 경매 및 수출 등 기업 간 거래(B2B)가 중심이었고, 개인(B2C)에게는 차량 매입 서비스만 한정적으로 제공해왔다. 하지만 이제 오토벨을 통해 일반 소비자와 딜러를 연결해주는 중개 플랫폼 서비스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 사업개시 일시정지 권고를 내리며 제동을 걸었지만, 현대차그룹 태도는 확고하다. 중기부 권고가 강제사항이 아닌 만큼, 사업 준비 절차를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권고 위반 시 처벌도 1억원 이하 과태료에 불과해 부담스럽지 않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중고차매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가 올 3월 대선 이후로 예고된 만큼 중고차 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기존 중고차 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일반적인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면 거부감을 보였겠지만, 현재 중고차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 정보 비대칭이 심각한 '레몬마켓'이기 때문이다. 허위·미끼·불량 매물은 물론, 소비자 감금 및 협박, 사기 사례까지 쏟아지며 시장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을 쳤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상담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중고차 중개 및 매매와 관련된 소비자 불만 상담 건수는 연 평균 1만여건이 넘는다. 2020년과 2021년 접수된 불만 상담도 1만1000여건으로, 스마트폰 판매와 정수기 렌탈 등에 이어 4번째로 많았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종료된 2019년 이후 소비자 불만 상담 건수는 감소했지만, 그 배경도 중고차 업계가 자정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속을 들여다보면 '인증수입차 및 직영중고차 사업 활성화'와 '대형 중개 플랫폼의 허위·불량 매물 감시·단속 강화' 그리고 '개인 간 거래 물량 증가'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동반성장위원회마저도 중기부에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재지정이 '부적합하다'라고 의견서를 제출했다.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중고차 사업은 고를 수밖에 없는 선택지다. 

지난해 국내 중고차 거래량은 246만여대로, 신차 판매량(174만여대)의 1.4배를 웃돌았다(국토교통부 등록 기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연간 시장 규모는 30조원으로 추산된다.

거대한 규모에 반해 시장 진입 장벽은 매우 낮다. 상대적으로 현대차그룹의 기존 사업 조직과 연관성은 매우 높다. 소비자 만족도가 현저히 낮은 현재 시장 분위기라면, 인지도와 자금력을 앞세운 현대차그룹이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더욱이 인증중고차 사업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주효하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난립하는 중고차 시장에서 인증중고차는 명확한 기준이자 잣대다. 일부 물량이더라도 중고차 시장 내 가격 형성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도 '가격 방어'가 잘된 제품을 선호하는 만큼, 브랜드가 보증하는 인증중고차 사업은 중고차 감가상각률을 낮추고 신차 할인 및 판촉 프로모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이와 함께 할부·리스·렌탈·구독 등 현대캐피탈의 다양한 금융 상품과 결함해 한층 더 고도화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으며, 신차 판매 시 바이백과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도 가능하다. 이 같은 과정에서 브랜드 밸류는 자연스레 높아진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하는 제네시스에게는 더 요구되는 사업이다. 

더불어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사업 진출은 수면 아래 불법적인 관행을 보다 체계적이고 합법적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도 내세울 수 있다. 자동차매매업을 등록하지 않은 신차 영업사원의 경우 고객 차량을 처분하거나 중개하는 것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자동차관리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중고차 사업은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뿐 아니라 현대차그룹의 중장기적인 비전과도 맞물린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자동차 제조사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선언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앞서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란 구호 아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부터 자동차 제조의 전 공정을 아우르는 수직계열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정의선 회장은 신차와 중고차 그리고 폐차까지 자동차 라이프타임 밸류를 책임지는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 자동차 생애 전 주기를 관리하며 수집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예측하고 사업 다각화와 새로운 전략 수립에 사용할 수 있다.

# 현대·기아·제네시스 인증중고차, 어떤 모습일까?

지금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 후생'이란 명분이 '소상공인 보호'란 기존 주장을 덮고 있다. 여론을 등에 업은 현대차그룹은 과연 어떤 형태로 시장에 진출할까.

현대기아차 인증중고차 사업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주최한 중고차매매산업발전협의회 등을 통해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우선 현대·기아·제네시스뿐 아니라 브랜드에 관계없이 중고차 매입을 진행하고, 신차 구매 시 할인 혜택을 적극적으로 제공할 방침이다. 중고차를 사고 파는 과정에서 이윤을 남기는 것보다 신차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외 현대캐피탈에서 운용하는 리스 및 렌터카부터 그룹 각 계열사의 법인차량, 2년마다 임직원 할인 구매 시 발생하는 개인차량 등 기타 매물도 상당할 전망이다. 

이렇게 매입된 중고차는 일차적으로 오프라인 사업부를 통해 판매된다. 다만, 수입차와 달리 현대기아차는 전국 주요 거점에 협력사를 두고 인증중고차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인증중고차 사업은 차량 점검 및 매입 단계부터 상품화 작업과 판매 후 추가 보증까지 많은 수의 전문 인력을 요구한다. 정비 부품은 현대모비스를 통해 확보할 수 있지만, 중고차 전문 인력과 시설에 대한 수급은 아직 제한적인 상황이다. 기존 대형 중고차 업체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할 방침이다.

오프라인에서 판매할 매물은 5년/10만km 이하 엔진 및 동력 계통 보증이 남아있는 차량이 우선 대상이다. 향후 거래 대상 범위가 더 늘어날 수 있지만, 사업 초기 품질 안정화를 위해 연식 및 주행거리가 짧은 차량에 집중할 예정이다. 

연식이 오래되거나 상품화 과정이 복잡한 차량, 그리고 타사 브랜드 차량은 현대글로비스에서 경매 처리한 이후 오토벨 서비스로 소비자와 딜러 간 거래를 중개한다.

현대기아차가 단기적으로 많은 물량을 매입하더라도 자체 노하우 부족과 협력사 규모 제약 등에 따라 오프라인 사업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결국, 상대적으로 인력 및 시설 투자가 작은 현대글로비스의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중심으로 중고차 사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 핵심은 현대글로비스!

현대차그룹 중고차 사업의 핵심은 현대글로비스다. 현대기아차가 전면에 나서지만, 그들 입장에서 중고차는 신차 판매 촉진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반면, 현대글로비스에게는 놓칠 수 없는 먹거리다. 현대글로비스는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을 표방하지만 그 성장 한계가 분명하다. 회사 전체 매출의 약 70%가 현대차그룹 국내외 계열사에서 발생하며, 수익 역시 상당 부분 내부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완성차부터 CKD, 부품, 원자재 등 다루는 품목도 신차에 오롯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글로비스는 이전부터 중고차 사업 확대를 준비해왔다. 2019년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물류회사인 창지우그룹과 손을 잡고 조인트벤처를 세워 현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 국내 규제를 피해 해외에서 이미 신차 판매 네트워크를 활용한 중고차 사업 운영을 경험한 셈이다.

이제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도 최종 B2C 영역에 온전히 진출하게 됐다.

더욱이 중고차 사업은 회사 미래 신사업과도 맞물린다. 현대글로비스는 친환경차 시장의 핵심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진출할 것을 선언했다.

주행거리가 길고 배터리 수명이 빨리 닳는 법인고객을 중심으로 배터리 충전부터 렌탈 및 교체, 회수, 재활용 등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LG화학, KST모빌리티 등과 협력해 교체용 배터리를 대량으로 확보해 장기 운영하며, 배터리 재활용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플랫폼 구축까지 친환경차 시장 활성화와 더불어 규모의 경제를 꿈꾼다.

# 중고차 사업, 정의선 회장 경영권 승계가 달렸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룹 순환출자 해소와 정의선 회장의 경영권 승계 등이 엮여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기업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열사 간 주식을 서로 보유하고 있다.

순환출자의 문제는 IMF 외환위기 당시 쓰러진 대우그룹 연쇄 부도처럼, 계열사 하나가 부실해지면 출자 고리에 엮인 다른 계열사까지 연이어 무너질 수 있다. 더불어 대주주가 소수 지분으로 지배권을 행사해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고, 외부 투기 자본 공격에도 취약하다.

이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공정위 등 정부로부터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압박을 꾸준히 받아왔다.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을 통한 '사업 지배회사 체제' 개편을 시도하지만, 분할·합병 비율 문제로 국내외 기관투자자와 주요 의결권자문사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한다.

연관기사 : '이보다 복잡할 순 없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총정리…정의선 회장의 선택은? [2020.10.19]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의선 회장이 가진 주요 계열사 지분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정의선 회장의 주요 계열사 지분은 현대차 2.62%, 기아차 1.74%, 현대모비스 0.32% 등에 불과하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가진 지분(현대모비스 7.15%, 현대차 5.33%, 현대제철 11.81% 등)을 물려받는 것도 쉽지 않다. 대주주의 경영권 할증(프리미엄)이 더해질 경우 상속·증여세가 최대 65%까지 부과되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선 회장이 가진 패 중 가장 비싼 현대글로비스(지분 20.0%)가 경영권 승계에 핵심이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을 통한 사업 지배회사 방식을 택하든, 현대글로비스를 그룹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든 반드시 그 가치를 높여야 한다. 

공정거래법 개정(특수관계자 지분 20% 미만 제한)으로 인해 최근 현대글로비스 주식 일부(3.29%)를 매각했지만, 현대엔지니어링(지분 11.7%)의 상장이 철회된 시점에서 그 가치는 한층 더 높아졌다.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한 중고차 사업이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해소와 경영권 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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