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구 55바퀴 달린 '오렌지볼보'를 폐차했습니다"
  • 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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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15 09:00
[인터뷰] "지구 55바퀴 달린 '오렌지볼보'를 폐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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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차량 누적 주행거리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실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새 차를 구매하거나 특별한 누적 주행거리(예를 들자면 7777km)를 찍어 올리는 '인증' 문화가 흔하다. 

하지만 사진 속 주행거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 숫자는 무려 220만34km였다. 약 4만km인 지구 둘레를 55바퀴나 돈 셈이다. 

캡처=오늘의 유머
캡처=오늘의 유머

네티즌들은 한결같이 '22만km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0이 하나 더 붙어있었다'며 놀랐다. 이 글은 1월 초 현재 조회수 1만8000건, 좋아요 107개를 넘어서며 베스트 게시판에 오른 상태다.

모터그래프는 수소문 끝에 해당 차량의 차주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마침 일을 일찍 마치고 쉬는 중이었다던 차주 안현섭 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 Q. 인터뷰 요청에 응해 주어서 감사하다. 사진 속 차량의 모델명이랑 구매 시기는 어떻게 되는가?

A. 흔히 '오렌지볼보'라고 부르기도 하는 FM12다. 2014년 6월에 중고차로 구매했다. 구매 당시 주행거리는 100만km가 조금 안된 상태였다. 이 차를 구매하고도 120만km 이상 달린 셈이다.

# Q. 찾아보니 100만km 주행한 타타대우 트럭 차주 인터뷰가 있더라. 이보다 두 배 이상 달린 차주를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A. (화물차는) 국산차와 수입차의 내구성이 완전 다르다. 국산차는 100만km 탔으면 정말 잘 탄 거다. 수입차는 그 이상도 탄다. 나도 조기 폐차 했지만, 계속 탈 수 있는 차였다. 폐차 직전까지 전혀 문제가 없었고, 연비도 리터당 4.2km 정도로 큰 차 치고는 잘 나왔다.

# Q. 트럭의 주행거리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220만km는 어느 정도인가? 업계에서 보기 드문 거리인가?

A.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볼 수 있는 거리다. 300만km를 넘은 볼보트럭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내 글이 관심받게 되어 민망하다.

# Q. 주행거리가 일반 승용차의 10배 이상이다. 특별한 관리 비법이라도 있나?

A. 특별히 다른 관리법은 없었다. 중·장거리 운송을 주로 했기 때문에 주행거리에 관계없이 무조건 6개월마다 엔진오일과 소모품을 교체했을 뿐이다. 물론, 잔고장은 있었다. 그래도 큰 고장은 아니었고, 일상적으로 생기는 잔고장이었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나 큰 금액이 나간 적은 없다.

# Q. 그 차로 어떤 일을 주로 했는지?

A. 컨테이너 운송만 했다. 컨테이너는 20피트와 40피트 컨테이너가 있는데, 이 차는 40피트 컨테이너만 운송했다. 고속도로를 주로 달렸고, 전국 어디든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 Q. 차를 운행하면서 느낀 장점이 있다면?

A. 요즘 차량과 달리, 반 전자식 수동변속 차량이다. 연비도 좋고, 제어가 참 잘된다. 수동 운전의 매력이 있다. 보통 자동 변속 차량은 가속 페달을 밟으면 끝인데, 수동 변속 차량은 엔진 브레이크나 배기 브레이크를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장점인 것 같다. 

# Q. 트럭은 주행거리가 긴데, 수동 변속 차량을 운행하려니 힘들었겠다.

A. 별로 힘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좋았다. 수동 운전을 좋아한다.(웃음)

# Q.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

A. 직업 특성상 차량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데, 차 안이 생각보다 많이 좁다. 그것 빼고는 별 문제가 없었다. 정비비는 국산차보다 확실히 비싸다. 작게는 2배,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난다. 수리비가 많이 드는 편이지만, 한 번 수리하면 굉장히 오래간다는 장점이 있다. 속된 말로 '수리빨'이라고 하는데, 한 번 수리하면 국산차보다 수명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수리비에 대해서도 큰 불만은 없었다. 정비가 오래 걸린다든지 하는 불편함도 없다. 

# Q. 이전에 운행하던 차량은 어떤 것인가?

A. 현대 70T라는 트럭을 오랫동안 운행했다. 완전 별로였다. (웃음) 그 차를 타고 '이제 국산차는 정말 안 타겠다'는 생각을 했다. 힘은 약한데 기름은 엄청나게 먹는다. 속도도 안 나고, 승차감도 안 좋았다. 사람들이 비싼데도 수입차를 타는 데는 이유가 있다.

# Q. 220만km 인증글을 보니 폐차한 것 같은데?

A. 그렇다. 배출가스 5등급이 나와서 조기 폐차시켰다. 5등급 차는 도심 지역에 들어갈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하고, 저속으로 오르막에 들어서면 시커먼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인다. 평소에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기고 했고, 차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동안의 애정이 있어서 폐차하기 싫었다. 폐차 전날 소주 한잔하며 참 많이도 울었다. 내게 희망과 꿈을 안겨준 녀석인데,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니…

# Q. 매연 저감장치를 달면 더 운행할 수 있을 텐데?

A. 국산 트럭은 DPF를 장착할 수 있다. 그런데 수입차는 DPF 장착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DPF 개발 업체에 찾아가서 확인해봤는데, 일반적으로 국산차는 차량 정보를 제공해서 DPF를 개발할 수 있지만, 수입차는 그런 소스가 없기 때문에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앞으로도 DPF 개발이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다음 눈물을 머금고 폐차하기로 마음먹었다.

# Q. 조기 폐차 혜택은 없나?

A. 조기 폐차 보상금으로 497만원이 나왔다. 폐차 후 신차를 구매하면 이 금액의 두 배를 받을 수 있다.

# Q. 폐차 후 어떤 차로 바꿨는지?

A. 볼보 FH 500 글로벌 모델을 운행 중이다.

# Q. 볼보 트럭만 두 대째다. 체감되는 장점은 무엇인가?

A. 일단 가장 불만이었던 실내 공간이 넓어졌다. 뒤에 침대도 정말 넓다. 또, 차가 높다 보니 시야가 굉장히 좋다. 이전 차량을 운전할 때는 1톤 탑차 뒤에 서면 앞이 안 보였는데, 지금은 높다 보니 어지간한 차량 뒤에 있서도 앞이 다 보인다. 방어 운전에 용이한 것 같다. 각종 안전장치나 편의 장치도 많다. 특히,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탑재됐는데, 사용해보니 기가 막힐 정도로 좋다. 속도와 차간 거리만 설정해두면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추돌 사고를 막아주는 획기적인 시스템인 것 같다.

# Q. 아까는 수동 운전이 좋다고 하지 않았나. 수동 운전의 매력과 최신 편의 사양,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A. (웃음) 지금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에 완전히 젖어있다. 한 번 사용해보니 빠져나올 수가 없다. 

# Q. 그래도 새 차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A. 차로 유지 보조 시스템이 없는 점은 아쉽다. 메르세데스-벤츠트럭에는 탑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기능까지 있으면 최고가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 Q. 농담 반 진담 반 질문이다. 현대차는 100만km 주행한 그랜저 택시 차주에게 감사패를 줬던데, 볼보 트럭에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나?

A. 그런 일이 있었나? 볼보 트럭에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아쉽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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