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포르쉐 911과 메르세데스-AMG SL
(왼쪽부터) 포르쉐 911과 메르세데스-AMG SL

"고민되는걸?"

만인의 드림카 포르쉐 911을 앞에 두고 시선을 빼앗길 줄은 몰랐다. 메르세데스-AMG의 새로운 럭셔리 컨버터블 'SL'의 존재감이 만만치 않다. 두 모델은 고성능 '오픈카'라는 점 외에는 차량의 성격도, 엔진 레이아웃도, 구동 방식도 많은 부분이 다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을 이 둘을 놓고 우열을 가리곤 한다.

값비싼 컨버터블 2대를 비교 시승했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개인 취향 및 가치관에 따라 선택지가 갈릴지언정, 어떤 차를 고르든 후회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

먼저 911의 외관을 살펴보자. 특유의 유선형 몸체를 통해 한눈에 독일산 개구리임을 알아챌 수 있다.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시대의 아이콘만이 낼 수 있는 아우라다. 전장과 전폭, 전고는 각각 4520x1850x1300mm, 휠베이스는 2450mm다. 낮고 넓은 비율과 컴팩트한 차체만 보더라도 이미 달릴 준비가 됐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911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불룩하게 솟아오른 리어 펜더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든, 엄청난 볼륨감에 시선을 절로 빼앗긴다. 이는 실내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사이드미러에 비친 리어 펜더를 보고있노라면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이전에는 상위 모델에만 오버 펜더가 적용됐는데 8세대부터는 카레라 모델에도 기본이다.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새롭게 등장한 SL의 포스도 만만치 않다. 최신 AMG의 카리스마와 더불어 바닥에 쫙 깔린 차체가 내뿜는 포스가 상당하다. 911만큼 드라마틱한 볼륨감은 없어도, 내로라하는 슈퍼카들 사이에서 전혀 꿀림 없는 디자인이다. 전장과 전폭, 전고는 각각 4705x1915x1353mm로, 911 대비 반 체급 이상 큰 덩치다. 휠베이스도 2700mm로 250mm 이상 길다.

SL의 첫 등장은 1954년으로, 911보다 무려 9년이나 빠르다. 차이점이라면 911이 역사와 전통을 고수했지만, SL은 항상 브랜드 최신 디자인을 따랐다는 것이다. 생김새 뿐만 아니라 비율과 시트의 갯수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장단이 있겠지만, 적어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모델이라면 과거의 향수를 자극할 포인트가 필요해 보인다.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

다음으로 실내다. 911은 1963년 첫 등장 이후 큰 변화 없이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여기에 최신 디지털 기술까지 듬뿍 담았으니, 말 그대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인 셈이다. 시승차는 GTS 모델로, 레이스 텍스라 불리는 스웨이드 재질을 실내 곳곳에 둘렀다. 기본형보다 더욱 스포티함을 강조하고 있다.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SL은 호화로움 그 자체다. 사방을 두른 새빨간 고급 가죽과 첨단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커다란 센터 스크린이 운전자의 두 눈을 사로잡는다. 단순히 예쁘기로만 판단한다면 SL과 정면 승부할 경쟁자는 많지 않겠다. 최소한의 버튼은 남긴 채 대부분의 기능을 화면 속으로 감췄는데, 공조 조절부는 상시로 표기해 불편을 덜었다.

(왼쪽부터) 911, SL 2열
(왼쪽부터) 911, SL 2열

감옥 수준인 2열은 그저 추가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 두 차 모두 성인이라면 정상적으로 앉기조차 버겁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911은 방석이 넓고, SL은 등받이가 조금 더 편한 정도다. 이마저도 실내로 들이치는 바람을 줄여주는 윈드 디플렉터를 작동하면 2열 탑승은 아예 불가능하다. 911은 윈드 디플렉터가 자동으로 펼쳐지는 반면, SL은 수동으로 설치해야 하는 점이 아쉽다.

SL 트렁크와 911 프렁크
SL 트렁크와 911 프렁크

트렁크 위치가 서로 상반된 점이 흥미롭다. 앞 엔진 구조를 갖춘 SL은 일반적인 승용차처럼 차량 뒤쪽에 트렁크가 마련됐고, 반대로 엔진이 차량 뒤쪽에 위치한 911은 프렁크(프론트 트렁크)를 갖췄다. SL은 트렁크 바닥이 얕은 대신 안쪽으로 깊게 파여있는 형태고, 911은 세로로 깊숙이 파인 것이 특징이다. 적재 용량은 SL 213리터, 911 132리터로 SL이 약간 우위다.

다음으로 퍼포먼스 테스트다. 스펙부터 살펴보면 911 카레라 GTS는 3.0리터 터보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8단 듀얼클러치와 맞물린다. 최고출력은 490마력, 최대토크 58.2kgf·m다. SL 63은 4.0리터 V8 가솔린 터보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해 585마력, 81.6kgf·m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은 두 차 모두 3.6초로 동일하며, 최고속도는 SL(315km/h)이 911(309km/h)을 소폭 앞선다. 911은 오직 뒷바퀴를 굴리며 SL은 네 바퀴를 모두 사용한다. 두 차 모두 후륜조향 시스템이 탑재됐다.

먼저 승차감부터 체크했다. 911 GTS는 순수한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세팅이라면, SL은 그랜드 투어러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바닥에 딱 붙어서 달린다는 건 두 차가 동일하지만, 노면 피드백 등은 911에서 더욱 생생하게 전달됐다. 번갈아 타보면 더욱 도드라지는데, 911에서 SL로 넘어갔을 땐 SL이 마치 럭셔리 세단처럼 느껴질 정도다.

주행 감성은 SL의 압승이다. 대지를 울리는 V8 엔진의 바리톤 배기음은 가히 폭력적이라 말할 수 있다. 기어를 낮출 때마다 살벌하게 터져대는 팝콘 사운드는 또 어떤가. 잊고 있던 질주 본능이 꿈틀댄다. 진정 스포츠카는 이래야 한다. 전기차가 이런 감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 단순히 빠른 것만으론 이런 감성을 채울 수 없다.

SL이 바리톤이라면 911 GTS는 고음의 소프라노와 같다. 6000rpm을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운전자를 무아지경에 빠뜨리는 마력이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목청이 작다. 사실 911도 작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8기통 괴물과 함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교된다. 우렁찬 목소리를 원한다면 출력과 배기량이 더 높은 662마력 터보 S나 4.0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한 GT3 등 상급 라인업을 고려해야겠다.

굽잇길에서는 각자의 매력이 있다. 앞서 말했듯 911은 오직 달리기에 집중한 스포츠카다. 짧은 휠베이스와 순수한 노면 피드백을 바탕으로 과감한 코너 공략을 가능케한다. 마법의 비기인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을 활성화하면 중력을 거스르듯 롤을 억제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진정한 포르쉐를 원한다면 주행 관련 옵션은 아낌없이 넣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SL은 와인딩에 친화적인 자동차는 아니다. 커다란 덩치와 2톤에 달하는 무거운 무게가 부담이다. 그럼에도 강력한 토크로 밀어내며 코너를 탈출하는 재미만큼은 911 못지 않게 짜릿하다. 숙련된 운전자라면 SL의 거친 움직임을 더 선호할 수도 있겠다. 후륜조향 기능은 차체가 긴 SL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질적인 움직임에 기분 좋은 손맛이 느껴진다.

연비는 작은 심장과 차체를 가진 911이 유리하다. 500마력에 가까운 고성능 엔진을 갖추고도 고속도로 연비는 13~14km/L를 쉽게 달성한다. 반면 SL은 복합 연비 두 자릿수를 찍기가 무척 어렵다. 예술적인 엔진을 품은 대가다.

마지막으로 일상 영역이다. 두 차 모두 웬만한 방지턱이나 주차장은 무리 없이 진입한다는 점에서 데일리 스포츠카로는 합격이다. 옵션도 풍부한데,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어라운드 뷰 모니터,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을 포함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편의 사양을 가득 담았다. 여름철 필수인 통풍 시트도 갖췄다. 911 시승차는 스웨이드 스포츠 시트가 적용되면서 통풍시트가 빠졌는데, 옵션으로 선택 가능하니 큰 불만은 아니다.

가격은 어떨까.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의 기본 가격은 2억2030만원, 옵션이 가득 들어간 시승차는 무려 2억7020만원에 달한다. 약간의 옵션 타협을 통해 2억원대 중반으로 맞추는 게 현명해보인다. SL은 기본 2억3500만원, 퍼포먼스 패키지를 추가하면 2억6000만원이다.

시승을 마쳤다. 생김새는 언뜻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과 방향성을 추구한 두 오픈카의 매력에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911 GTS는 달리기의 본질에 충실한 소비자에게 추천한다. 모든 911 모델은 각자의 매력이 있지만, GTS 만큼은 운동 성능에 더 초점을 맞췄다. SL 63은 고급스러운 데일리 스포츠카가 필요한 이들에게 제격이다. 굳이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그저 천정을 걷어내고 유유자적 달리는 것만으로도 이 차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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