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전용 충전 시설인 '슈퍼차저'가 타사 전기차에 개방됐다. 충전 편의성을 높여 전기차 시장을 키우고, 커진 시장에서의 충전 표준이 되겠다는 장기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개방되기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테슬라와 충전 규격이 달라 제 속도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추측부터, 타사 전기차로 인해 정작 테슬라 오너들이 불편을 겪을 것이란 주장이다. 다른 전기차로 테슬라 슈퍼차저를 이용하면 어떨지 직접 체험해 봤다. 

테슬라 슈퍼차저에서 충전 중인 기아 니로 플러스
테슬라 슈퍼차저에서 충전 중인 기아 니로 플러스

먼저 기아 니로 플러스로 시험했다. 초고속 충전이 불가능한 차량이 '슈퍼'차저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니로 플러스의 충전구는 앞에 있어 전면 주차를 해야 한다. 방문한 슈퍼차저는 주차 스토퍼 덕분에 기둥에 부딪힐 염려는 없다. 다만, 양 옆에 모델S나 X같이 넓은 차가 있다면 쉽게 주차하기 부담스러울 듯하다. 

캡처=테슬라 앱
캡처=테슬라 앱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테슬라 앱 회원 가입 후 결제할 카드 정보를 등록하고 이용할 기기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테슬라 차량 충전과 차이가 있다면, 충전구를 바로 잡아 뽑는 것이 아니라 한 차례 안으로 집어넣었다가 당겨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테슬라가 '매직 독'이라 부르는 DC콤보 어댑터가 함께 뽑힌다.

거대한 어댑터에 비해 케이블은 얇아 보였지만, 만듦새가 뛰어나고 견고하게 부착되어 있다. 다만, 제법 무겁기 때문에 주변 차량에 떨어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케이블이 짧아 닿지 않는다
케이블이 짧아 닿지 않는다

이제 충전기를 꽂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가 생겼다. 전면 주차를 하면 오른쪽 충전기를 써야 하는데, 니로 플러스는 충전구가 왼쪽에 있다. 아무리 케이블을 잡아당겨 봐도 늘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왼쪽 충전기를 이용하면 자리를 두 칸이나 차지하는 민폐 운전자가 된다. 

다행히 이곳에는 앞쪽에 배치된 충전기와 옆쪽에 배치된 충전기가 모두 마련됐다. 앞쪽 충전기로 옮기니 이제야 차량에 닿는다. 충전기를 연결하니 빠르게 충전이 시작됐고, 충전 현황이 실시간으로 앱에 표시된다.

30분가량을 충전한 결과, 20%였던 배터리 용량이 51%로 늘었다. 충전량은 21kWh, 요금은 8484원이다. 궁금했던 충전속도는 40~50kW를 넘나들었는데, 최고기록은 53kW였다. 니로 플러스가 소화할 수 있는 최대 충전속도에 근접한 숫자다.

아이오닉6와 모델Y가 슈퍼차저에서 나란히 충전 중이다
아이오닉6와 모델Y가 슈퍼차저에서 나란히 충전 중이다

다음은 현대차 아이오닉6 차례다. 니로 플러스와 달리 E-GMP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800V 충전 시스템을 갖춘 만큼 더 빠른 충전속도가 기대됐다.

그러나 니로 플러스보다 더 큰 난관에 부딪혔다. 후면주차를 했는데, 충전구가 조수석 뒤편에 있는 아이오닉6 구조상 케이블이 닿지 않았다. 운전석 쪽에 충전구가 있는 테슬라에 맞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잡아당겨봐도 무리였다. 

케이블이 짧아 어느쪽 충전기도 이용할 수 없다
케이블이 짧아 어느쪽 충전기도 이용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 옆 충전기를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충전기가 옆에 있는 곳으로 이동해 반대쪽 기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혼자서 2칸을 차지한 것이다. 다행히 충전 내내 다른 차량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아이오닉6는 배터리가 58%인 상태에서 충전을 시작했다. 34분43초 만에 100%까지 완충됐고, 최고속도는 97kW를 기록했다. 최신 전기차인 만큼 확실히 구형 플랫폼인 니로 플러스보다 빨랐다. 

'매직 독'이 적용된 테슬라 슈퍼차저
'매직 독'이 적용된 테슬라 슈퍼차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케이블을 1~1.5m 정도만 늘리면 타사 전기차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이런 호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개방했다. 테슬라의 궁극적인 목표가 충전 표준이 되는 것이라면 빠르게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브랜드 및 차량에 따라 충전구 위치는 다르다. 아이오닉6처럼 테슬라 반대편에 있는 차량은 충전기 두 개를 점유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충전구가 차량 옆구리에 있는 포터EV라면 주차공간을 가로로 3~4칸을 차지하지 않는 한 아예 불가능하다. 배터리가 바닥난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짧은 케이블 외에도 몇가지 한계도 나타났다. 우선, 기대한 것보다 충전속도가 느렸다. E-GMP 설계상 최고속도인 350kW는 물론, 테슬라 V3 슈퍼차저의 최고속도인 250kW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충전 요금도 kWh당 407원으로 환경부 100kW급 급속 충전기(347.2원)보다 비싸다. 특히, 니로 플러스처럼 50kW급 충전만 가능한 차량이라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환경부 50kW급 충전요금은 kWh당 324.4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슈퍼차저는 속도가 느려도 똑같이 kWh당 400원 이상을 받는다.

물론, SK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충전기도 회원 가입을 하지 않으면 400~450원의 요금이 나온다. 심지어 현대차그룹 E-피트는 일반 회원에게 510원(초고속 충전 기준)을 받는다. 그러나 해당 충전기들은 모두 100kW를 훌쩍 넘는 빠른 충전을 자랑한다.  

아이오닉6는 슈퍼차저에서 최대 97kW의 충전 속도를 기록했다
아이오닉6는 슈퍼차저에서 최대 97kW의 충전 속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차저의 장점도 확실했다. 앞서 언급한 단점 역시 타사 전기차여서 그렇지, 테슬라 오너라면 전혀 겪지 않아도 되는 불편이다.  

당장 결제부터 충전까지의 전 과정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쾌적하게 이뤄진다. 충전 시작 버튼을 누르고 카드를 꺼내서 집어넣는 과정이 없어 훨씬 편하다. 전기차 충전기를 이용하며 결제 오류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충전기 고장률이 매우 낮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테슬라가 기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부품 교체부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까지 직접 관리하기 때문이다. 방문한 슈퍼차저는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음에도 환경부 충전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미줄 하나 없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기다림 없이 쾌적한 충전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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