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한국에서 자동차, 특히 클래식카 마니아로 살기란 쉽지 않다. 매년 까다로워지는 배출가스 검사부터 일명 폭탄돌리기(?)라 불리는 저질 자동차 판매까지. 여러모로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혹독한 곳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자동차 문화를 즐기는 계층이 탄탄하고, 법률도 다양하며 탄력적으로 적용된다. 그래서 관련 산업이 계속 확장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오래됐다는 이유로 모든 차가 클래식 반열에 올라 대우받기는 어렵지만, 그 스토리만은 누군가에게 매우 소중한 추억이다.

이곳은 인근에서 클래식카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성지로 통한다. 
이곳은 인근에서 클래식카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성지로 통한다. 

시애틀 다운타운 근처 공장 지대에 있는 '더 샵 시애틀'. 이곳은 시애틀은 물론, 인근 머서 아일랜드, 에버렛, 이사과, 커클랜드 등에 거주 중인 자동차 마니아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곳은 인근에서 클래식카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성지로 통한다. 

더 샵 시애틀은 거대한 규모의 스토리지 서비스를 비롯해 정비 및 유지보수를 주 업무로 한다. 각 동호회가 주최하는 파티와 카밋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클래식카 마니아들의 사랑방인 셈이다. 여담이지만, 더 샵 시애틀은 테슬라 전시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데, 테슬라 직원들이 가끔 식사하러 온다고 한다.

#국내에는 생소한 스토리지 서비스 

더 샵 시애틀에서는 스토리지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자동차를 보관하는 서비스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서비스인데, 단순 공간만 입대하는 곳도 있고, 주기별 유지보수, 정비, 튜닝 프로그램을 같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한 달, 혹은 그 이상 단위의 보관료를 지불한다.

이런 곳일 수록 가격은 비싸고, 제공되는 서비스도 다양하다.
이런 곳일 수록 가격은 비싸고, 제공되는 서비스도 다양하다.

업체에 따라서는 별도의 심사를 거쳐 자동차 보관을 결정하는 곳도 있다. 돈만 있다고 될 문제는 아니다. 차량이 가진 가치에 대해서도 엄격한 평가가 뒤따라온다. 이런 곳일 수록 가격은 비싸고, 제공되는 서비스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 스토리지 전문 서비스를 표방하는 업체들이 있었지만, 조용히 사라졌다. 일종의 장기 주차장 같은 개념에서 출발했는데, 고가의 스포츠카나 고급차의 경우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반면 해외의 스토리지 서비스는 용도가 매우 다양하다. 독일의 클래식 슈타트나 클래식 레미제, 미국의 더 샵(미국 전국 체인)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스토리지 서비스 외에도 방문객들이 보관 중인 차들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말 그대로 보관과 전시의 역할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 단순히 보관만 하는게 아니야

더 샵 시애틀은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레스토랑과 프라이빗 라운지를 비롯해 시가 바, 세차장, 정비소, 바버숍, 스토리지 공간 등 다양한 구성이 돋보이는 곳이다. 필자가 더 샵 시애틀을 찾았을 때는 다음 날 커클랜드 인근 와이러니에서 진행된 클래식카 이벤트 참가자들을 위한 사전 파티가 진행 중이었다.

레스토랑과 프라이빗 라운지를 비롯해 시가 바, 세차장, 정비소, 바버숍, 스토리지 공간 등 다양한 구성이 돋보이는 곳이다.
레스토랑과 프라이빗 라운지를 비롯해 시가 바, 세차장, 정비소, 바버숍, 스토리지 공간 등 다양한 구성이 돋보이는 곳이다.

파티는 20대부터 70대가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다양한 자동차와 함께 모두 친구가 되어 즐길 수 있는 자리다. 지금까지 유럽이나 일본의 클래식카 프라이빗 파티에 여러 번 참석했지만, 파티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는 처음이었다. 현지 코디네이터 사무엘 장은 우리에게 이번 파티와 더 샵 시애틀의 가이드를 담당할 소도 모터의 아담 코바낙을 소개했고, 아담 덕에 우리는 시애틀 근처의 클래식카 인플루언서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더 숍 시애틀의 스토리지는 VIP와 일반으로 구분된다. 큰 창고(우리가 생각하는 크기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두 동에는 다양한 차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고, 회원제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에 따라 서비스 내용이 달라진다. 물론 일반적인 차들은 거의 볼 수 없고 대부분 희귀하거나 수집 목적의 보관용 차들이다. 특이한 점은 오너가 원하면 언제든 차를 출고해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리프트가 구비된 정비 구역에서는 DIY와 간단한 정비도 가능하고 세차장 역시 준비되어 있다.
리프트가 구비된 정비 구역에서는 DIY와 간단한 정비도 가능하고 세차장 역시 준비되어 있다.

그 외에도 리프트가 구비된 정비 구역에서는 DIY와 간단한 정비도 가능하고 세차장 역시 준비되어 있다. 더 숍 시애틀에서는 오너들을 상대로 정비 교실이나 비롯해 같은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아담은 우리를 스토리지 안쪽으로 안내했다. 일반인들은 스토리지 밖에서 구경할 수 비롯해 코디네이터 덕에 아담과 함께 스토리지에 있는 다양한 차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안내를 맡은 아담은 자동차 지식이 매우 풍부한데 시애틀 근처 클래식카 모임에서는 명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특히 아담은 일반적인 미국차 중심의 컬렉터들과는 관심 분야가 매우 다르다. 미국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유럽차(BMW나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차가 아닌 비독일계)에 전문가며 아반트 이벤트에도 MG TC를 가지고 참가한다고 했다.

아담의 설명과 함께 스토리지를 둘러보는 데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규모도 꽤 크고 차종이 다양해서 볼거리도 많았지만, 수준 높은 아담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잊을 정도였다.

#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

스토리지 투어를 마친 후 본격적인 파티에 참석했다. 파티는 더 숍에서 운영 중인 펍에서 진행되는데 이곳은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백인이 아닌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모두가 자연스레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자동차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자동차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모두 반갑게 맞아 주었다(BTS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미국에서 파티는 모두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누가 되었든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군가가 소외되지 않도록 모두가 신경 써 주고 함께 즐긴다. 더군다나 자동차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다양한 차를(거의 겹치지 않는다.) 소유하고 있으며 거기에 얽힌 스토리도 제각각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차는 1964년식 썬빔 타이거를 타고 온 30대 초반의 부부였다. 이 차는 원래 부인의 아버지가 타다가 유품으로 큰딸에게 넘겨준 차다. 차를 넘겨받은 큰딸은 차에 관심도 없고 수리비 지출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 차를 둘째 딸이(현재 오너) 인수해 풀 리스토어를 진행했다고 한다.

주차장에는 스토리지만큼이나 다양하고 귀한 차들이 많았다.
주차장에는 스토리지만큼이나 다양하고 귀한 차들이 많았다.

"분명 불편하고 시끄러운 자동차에요. 꾸준한 관리도 해야 하고, 에어컨도 없지만, 남편과 이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가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죠. 이 차는 매우 팬시해요."

썬빔 타이거 오너가 자신의 차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덩치가 큰 남편이 합류하며 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부부는 이 차를 함께 정비하고 리스토어 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오래된 차가 세 대를 이어 이야깃거리를 갖게 된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주차장에는 스토리지만큼이나 다양하고 귀한 차들이 많았다. 카본 휠을 장착한 포드 GT나 다양한 버전의 포르쉐 911도 멋지고 귀하지만 이 부부의 썬빔 타이거는 개인적으로 가장 예쁘고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차였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즐기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즐기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즐기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는 어떤 차를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어떤 줄거리를 가졌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자동차를 통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는 철저하게 자동차로 이어진다는 점도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다. 파티에서 이야기를 나눈 한 노신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말을 전했다.

"당신이 어떤 차를 가졌는지는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다만 자동차를 얼마나 좋아하고 그 차에 얼마나 애정이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야. 그게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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