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벤틀리의 성지, 더 롤스 커넥션 [미국 자동차문화 탐방기⑤]
  • 황욱익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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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27 10:00
롤스로이스·벤틀리의 성지, 더 롤스 커넥션 [미국 자동차문화 탐방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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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 남쪽으로 약 25km를 내려가면 켄트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시애틀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된 지방 소도시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이곳에는 롤스로이스, 벤틀리의 성지라 불리는 '더 롤스 커넥션' 이라는 전문 숍이 있다. 

켄트에 위치한 더 롤스 커넥션
켄트에 위치한 더 롤스 커넥션

사람들은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라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쇼룸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고급 카펫이 깔려 있는 입구며, 화려한 인테리어와 값비싼 소품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인들의 철저한 실용주의에 깜짝 놀랐다. 이곳은 물류센터와 비슷한 산업단지에 자리 잡았고, 리프트 몇 개가 전부인 작은 창고를 개조한 곳이었다. 

이곳은 BMW와 폭스바겐에 각각 인수된 이후의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는 3명이 스페셜리스트가 상주 중인데, 대표이자 리스토어 스페셜리스트인 제이콥, 전기 계통 스페셜리스트 데이브, 영국의 롤스로이스 딜러숍에서 근무했던 또 다른 데이브 등이다. 나이가 지긋한 제이콥은 2017년에 이곳을 인수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영국차의 매력에 푹 빠진 클래식카 마니이기도 했다.

# '전문가' 라고 칭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더라

더 롤스 커넥션은 영국차, 특히 고급스러움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숍이다. 기본적인 정비부터 시작해 리스토어, 유지, 보수, 부품 제작 등 판금과 보디 작업을 제외한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더 롤스 커넥션의 대표인 제이콥. 2017년에 숍을 인수한 3대 사장이다.
더 롤스 커넥션의 대표인 제이콥. 2017년에 숍을 인수한 3대 사장이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 곳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보관에 신경 쓰는 까다로운 오너를 위해 정비를 기다리는 차를 야외에 방치해 둘 수 없어 실내 주차가 넉넉한 건물을 임대했다고 한다. 롤스 커넥션은 판금작업을 제외하곤 클래식카 스페셜숍답게 파워트레인 리빌드와 전기, 기계와 관련된 모든 전문복원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제이콥은 클래식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전문가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무려 400대.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차도 있고 리스토어나 정비, 부품 제작도 다 각양각색이다. 화려한 쇼룸은 없지만 사무실과 작업장 곳곳에는 엄청나게 많은 서적이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이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정비 지침서와 리스토어 관련 서적인데, 정비와 관련된 지식은 지금도 꾸준하게 업데이트 하고 있다.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벤틀리 아주어 마크 I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벤틀리 아주어 마크 I

작업장은 얼핏 보기에 일반적인 정비소 내지는 리스토어숍과 큰 차이가 없지만, 준비된 공구나 작업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럭셔리 브랜드는 리스토어 자체도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입고된 차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차주들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클래식 롤스로이스나 벤틀리가 특별한건 연식이 오래됐음에도 소유주 변경 이력이 적다는점이다. 대부분은 직계 가족이 물려받거나 2~3회 정도의 명의 변경 이력을 갖고 있어 차량들의 배경이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은 수행기사를 두고 있었던 최상류층이 소유했던 차들이라 일반적인 클래식 모델들과는 접근 방식 자체도 달랐다. 불과 20년 전, 일반인들에게는 제한적이었던 브랜드 답게 영국 본사로부터 전달된 주문서류 등을 열람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 럭셔리카는 복원 과정도 특별하다

또 다른 특징은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만을 위한 특수 공구들이다. 지금에야 도량법이 국제 표준화되었지만 70년대 이전만 해도 영국에는 인치와 미터 도량형이 혼용되었고,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브리티쉬 스탠다드 위트워스(BSW)규격도 있어 지금의 공구로는 작업이 불가능한 것들도 많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공구들 역시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구하기 힘든 귀한 것들이다. 

리스토어 작업중인 롤스로이스 실버쉐도우.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소유했던 차로도 유명하다.
리스토어 작업중인 롤스로이스 실버쉐도우.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소유했던 차로도 유명하다.

제이콥은 현재 작업 중인 차 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지금까지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리스토어 과정을 봤지만, 롤스로이스의 리스토어 과정은 그 자체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전기와 엔진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리스토어보다 더 특별한 작업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주했다. 바로 롤스로이스에 사용된 목재를 리스토어 하는 과정이다. 참고로 이곳에서는 철저하게 출고 당시의 부품만을 사용한다. 작업자의 편의를 위한 개조나 현시대에 맞는 튜닝, 커스터마이즈는 다루지 않는다. 

지금이야 안전상의 이유로 자동차 내부에 직접적인 목재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에는 고급차의 상징 중 하나가 무늬가 좋은 원목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진짜 원목을 사용했고 1990년대부터는 플라스틱에 우드 그레인을 입힌 트림을 사용했다. 

뒷좌석 테이블은 최상급 원목으로 만들어져있다.
뒷좌석 테이블은 최상급 원목으로 만들어져있다.

롤스로이스에는 뒷좌석 티 테이블을 포함해 도어 프레임 상단 부분 등 많은 부분에 최상급 원목을 쓰고 있다. 목재는 시간이 오래 지나면 깨지거나 변형이 오는데 더 롤스 커넥션에서는 새로운 부품을 구해서 교체 하는 것이 아닌 원형 리스토어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원목으로 된 테이블이나 도어 프레임 상단은 눈속임이 아닌 목재 그 자체다. 리스토어 과정에 설명을 들어 보니 시간과 노하우가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우선 표면을 덮고 있는 비니어를(주로 변형이 오거나 깨진) 벗겨내고 그 위에 다시 여러 겹의 비니어를 무늬에 맞춰 덧입히는 작업을 반복한다.

무늬목 선택부터 비니어의 얇은 두께까지 전 과정이 매우 정밀하다. 단순히 플라스틱 부품에 우드 그레인을 씌우거나 수전사로 눈가림 하는 작업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며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명품이 왜 명품인지를 알 수 있었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정비만을 위한 전용 공구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정비만을 위한 전용 공구들

미국에 정식 수입되지 않았던 시절의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를 수리하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부품 수급 문제였다. 미국 내 수입 대수가 워낙 극소수라 당연한 일인데, 이렇다보니 영국의 공식 딜러에서 부품을 가져오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라이센스 부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애프터마켓 부품과 달리  메이커에서 한정 생산을 허가한 헤리티지 파츠란다. 

클래식카는 돈만 있다고 접근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아니다. 특히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차를 좀 안다는 기준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카가이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 직접 정비부터 리스토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영역을 커버하는 사람들이었다.

글·사진: 황욱익
현지 코디네이터·통역: 사무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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