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의 압도적인 소방차 클래스 [미국 자동차문화 탐방기①]
  • 황욱익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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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12 14:44
'천조국'의 압도적인 소방차 클래스 [미국 자동차문화 탐방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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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쪽 최북단에 있는 워싱턴 주는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가 이어지는 곳이다. 혹자는 겨울에 비가 자주 내리는 기후 때문에 우울한 도시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자유와 젊음의 상징이었던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 록, 그리고 스타벅스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워싱턴 주의 가장 큰 도시인 시애틀은 일 년 내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저녁 9시 반이 훌쩍 넘어야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워싱턴 주는 여름의 낮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이렇다 보니 여름철 워싱턴 주를 찾는 관광객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데, 북유럽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백야 현상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워싱턴 주를 찾은 이유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다양하게 자동차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시애틀을 시작으로 캘리포니아, 테네시, 켄터키, 애리조나 등을 방문하는 일정을 처음 구상한 것은 4년 전 쯤. 40% 이상 오른 미국 내 물가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항공요금을 보고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미루면 실행이 어려워질 것 같아 일단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현지에서는 혼다의 클레이모델러 출신의 클래식카 스페셜리스트 사무엘 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어마어마한 TDA의 위용

미국 방문 일정 중 시택시(City of SeaTac)의 소방서에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이곳은 델타항공의 모공항인 타코마 국제공항이 있는 곳으로, 피터 권(Peter Kwon) 시의원과 사무엘 장의 주선으로 취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퓨젯 사운드 소방서는 시택시 내에서 가장 고가의 장비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공항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단충 건물이다 보니 대형 소방차가 거의 필요 없다고 들었는데, 이곳에는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한 TDA라는 대형 사다리차가 준비되어 있다. 권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시택시에서 TDA를 보유한 소방서는 이곳이 유일하다. 

TDA는 일단 그 크기가 어머 어마하다. 워낙에 큰 것을 선호하는 미국이라고 해도 TDA의 크기는 압도될 정도다. 트랙터 트론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다리차는 미군의 중대형전술차 HEMTT로 유명한 피어스에서 제작한 화재진압전용 장비다. 전장만 해도 10m가 넘고, 운전석 외에 뒤쪽 사다리를 운용하는 공간에서 조향을 돕기도 한다. 앞과 뒤에 운전석이 있는 셈인데, 이는 좁은 도로를 기동성 있게 다니기 위함이라고 한다.

TDA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운전자를 포함해 최소 3명이 필요하다. 도시의 분위기나 건축물의 구조를 봤을 때 '과연 이런 거대한 장비가 필요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소방서 측의 생각은 달랐다. 얼마나 자주 사용하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화재나 위급상황이 장비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환경에 대응하는 장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렇다보니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TDA는 해당 소방서의 관할구역을 넘어 시 전체를 커버하고 있다. 

커민스의 6기통 디젤엔진을 탑재한 TDA의 최고속도는 65마일(약 105km/h) 정도다. 육중한 덩치에 비해 빠른 편인데, 이는 촌각을 다투는 화재 현장에 가능한 빨리 도착하기 위함이다. 사이렌 종류는 총 4가지인데, 파장과 음량에 따라 그 용도가 다르다. 사람이 직접 돌려서 소리를 내는 아날로그 방식 사이렌도 갖추고 있다. 

TDA에는 교통신호제어 시스템도 장착되어 있다. 미국의 재난 시스템은 소방서 하나가 아닌 병원, 도시, 교통 시스템 등 관련된 모든 부서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인데, 구급차와 소방차가 같이 출동하면 소방차는 모든 신호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역할도 겸한다. 

피터 권 의원의 말에 따르면, 시택시의 거주 인구는 약 3만명 정도. 하지만 공항을 비롯한 기간산업 시설이 몰려 있어 낮에는 7만 명의 유동인구가 몰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소방서의 장비가 매우 중요하단다. 

#펌프카, 그리고 소방관들

함께 등장한 펌프카는 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640갤런(약 2422리터)을 저장할 수 있는 펌프카는 화재진압에서 가장 먼저, 가장 다양하게 움직이는 차다. 엔진으로 펌프를 돌리는 시스템을 탑재한 펌프카는 최대 6명이 탑승하는데, 펌프 오퍼레이터를 겸하는 드라이버, 캡틴(내비게이터), 3명의 파이어맨이 한 팀이다. 

1분에 약 1000갤런(약 3785리터)의 물을 분사할 수 있는 펌프카는 펌프 시스템 외에도 최전방에서 뛰는 파이어맨들을 위한 장비도 가득하다. 가장 특이했던 부분은 시트에 파이어맨들의 산소통을 거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휴대장비를 거치할 수 있어 시트에서 곧장 장비를 장착할 수 있다. 

내부는 파이어맨들이 사용하는 각종 장비가 어지러운 듯 탑재되어 있지만, 저 마다의 역할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시간을 다투는 직업이다 보니 효율에 중점을 둔 모습이다. 

취재를 도와주러 현장에 나온 소방관들의 나이대는 20대의 신참부터 40대의 베테랑 캡틴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모두 어렸을 때 꿈이 소방관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소방관은 용감한 사람들로 통하다 보니, 어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직업정신과 희생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화재 현장 뿐만이 아니라 9·11 테러 때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위험천만한 현장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미국에서 소방관의 인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인식, 존경도 미국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글·사진: 황욱익
현지 코디네이터·통역: 사무엘 장
취재협조 : 시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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