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벤틀리, 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불려왔다. 장인들이 손수 만든 실내는 '탑승'보다는 '경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듯 호화롭고 안락하다. 함께 언급되는 벤틀리보다 약 2배가 넘는 가격표를 달고 있지만, 롤스로이스는 매년 판매 실적을 갱신하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격보다 가치를 중시하는 부자들에게 '꼭 사야 할 이유가 있는' 자동차인 것이다. 

물론 비싸기만 한 건 아니다. 1900년대 초 롤스로이스는 너무나 조용한 나머지 고스트(유령)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그 유명한 팬텀, 쉐도우(그림자), 스피릿(영혼), 세라프(천사), 클라우드(구름), 던(동틀녁) 등 전통적으로 소리없는 것들을 이름으로 붙여왔다. 가장 최신작이자 그들의 첫번째 전기차인 스펙터 역시 유령의 일종이다.

이번에 만나본 차량은 롤스로이스의 메인 모델인 고스트다. '가장 많이 팔린 롤스로이스' 타이틀은 SUV인 컬리넌이 가져갔지만, '고급차=세단'이라는 공식이 통하는 만큼, 여전히 최고급 승용차로 어필하고 있다. 플래그십의 자리는 팬텀이 맡고 있는 덕분일까, 고스트는 오너드리븐 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롤스로이스를 주인이 직접 운전한다니 조금은 갸우뚱 했지만, 실제로 몰아본 고스트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애마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행 모델은 2020년 풀체인지를 거친 2세대다. 워낙 클래식한 디자인을 유지하는 브랜드다 보니, 1세대 모델에 현대적 해석을 조금 곁들였을 뿐, 전반적인 실루엣과 디테일 등은 변함없다. 거대한 판테온 그릴과 반짝이는 환희의 여신상, 우아하게 열리는 코치도어 등이 롤스로이스의 헤리티지를 지켜내고 있다.

시승차에 적용된 올리빈 컬러가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히 어두운 계열 색상같지만, 자세히 보면 짙은 녹색빛을 띄고 있다. 한번 눈에 익고 나면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매력이 있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고급스러우면서 확실히 젊어보인다.

롤스로이스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고급감이 있다. 대량생산 자동차에서는 절대 느껴지지 않는 감성이다. 과거 마차를 만들던 코치빌더가 가죽과 원목, 크롬을 가득 더해 최고급 자동차의 실내를 만든 것처럼, 당시의 호사스러움을 재현해냈다. 물론, 모든 마감은 장인의 손길을 거친다.

고스트는 여전히 많은 버튼을 남겨두고 있다. 터치 패널이 더 자연스러운 요즘, 이렇게나 많은 버튼은 세월을 거스르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절대 오래됐다거나 촌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 어떤 자동차보다 '타임리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고스트의 심장은 6.75리터 V12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이다. 6.75와 12라는 비현실적인 숫자를 되새겨본다. 환경 문제로 배기량과 기통수를 줄여가는 요즘, 내연기관 시대의 마지막 남은 히어로를 보는 듯하다. 그룹 넥스트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던 그들...'. 롤스로이스는 다운사이징이라는 타협 대신 곧장 전동화의 길을 택했다.

감상을 뒤로하고 직접 달려볼 차례다. 운전석 왼편에 위치한 시동 버튼을 누르자 V12 엔진이 우아하게 눈을 뜬다. 분명 시동이 걸린 상태인데, 너무도 조용하다. 어지간해선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옷가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거슬릴 만큼 고요했다. 이 차가 왜 유령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계기판 구성도 독특한데, 타코미터(엔진회전수 게이지) 대신 '파워 리저브'가 자리한다. 남은 힘을 퍼센트(%)로 보여주는데, 평소엔 100%를 보이다가 가속페달을 밟을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방식이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더라도 최소 10% 정도의 힘은 비축하고 있다.

최고출력은 571마력, 최대토크는 86.7kgf·m에 달한다. 2.6톤의 거구를 4.8초 만에 100km/h로 몰아부칠 힘이지만, 롤스로이스는 기본적으로 '여유로운 주행'에 방점을 둔다. 시종일관 부드러운 가속 능력을 보여주는데, 급가속 상황에도 불쾌한 거동을 최대한 억제한다. V12 엔진의 회전질감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고스트의 엄청난 방음 처리는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왠만한 전기차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에어 서스펜션은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최상의 승차감을 만들어낸다. 도로의 자잘한 충격들이 수많은 기술을 만나 사라져간다. '마법의 양탄자'와 같은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고속안정감도 두말하면 입아프다. 분명 도로 위를 둥둥 떠다니는 승차감인데, 무게중심은 한없이 낮다. 다만, 이를 너무 맹신해서는 안 된다. 무거운 몸무게와 껑충한 키로 인해 고속 코너링에서는 조금 부담스러기도 하다. 넘치는 힘은 때와 장소를 가려 사용할 필요가 있겠다.

문득 연비가 궁금해 계기판 보니 4.8km/L라는 숫자가 보인다. 여유와 풍요의 대가로 이정도는 치러야 한다는걸까. 고속에서는 그나마 낫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 어렵다. 다행히 연료탱크 크기가 83리터에 달해 주유소를 자주 갈 일은 없겠다. TMI지만, 실제 오너들도 롤스로이스를 타고 장거리 주행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부자들에게도 롤스로이스의 연료비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롤스로이스의 진가를 알아보기 위해 2열에 올랐다. 앞쪽이 열리는 코치도어는 타고 내리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다. 구조상 좀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탑승이 가능하다. 닫을때는 버튼만 누르면 '스르륵' 문이 다가와 자동으로 닫힌다.

앉은 느낌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두툼한 시트와 부드러운 가죽 질감이 하루의 피로를 절로 씻어내는 듯하다. 롤스로이스 측은 '치열한 비즈니스 가운데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한다. 실내를 은은하게 감싸는 가죽향과 손가락이 쑥 들어갈 정도로 푹신한 플로어매트가 나만의 오아시스를 더욱 아늑하게 꾸며준다.

수많은 호화 옵션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묘사한 이 옵션은 장인이 직접 손으로 제작한 1300여개의 광섬유로 만들어진다. 주문 제작 프로그램인 '코치빌더'를 통해 별똥별을 구현하기도, 원하는 별자리를 넣기도 한다. 아쉽게도 운전자는 이를 감상하기 어렵다. 오직 2열 승객만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의외인건 생각보다 넓지 않다는 것이다. 리클라이닝을 지원하지만 몸을 누울 만큼 작동 범위가 넓지 않을 뿐더러, 1열을 앞으로 밀어 퍼스트 클래스와 같은 자세를 취할 수도 없다.

확실히 오너드리븐 성향이 강조된 모델이다. 아빠가 운전하고 자녀들이 뒤에 탄 모습을 상상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롤스로이스라고 해서 꼭 뒷좌석을 위한 의전용이 아니라, 패밀리카로도 어울렸다. 앞서 시승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80의 쇼퍼드리븐 느낌과 비교된다. 광활한 뒷좌석에 다리를 뻗은 2열 승객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더 넓은 공간과 첨단 기능들로 무장한 경쟁 모델도 많지만, 롤스로이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2023년형 고스트의 가격은 5억1500만원, 옵션이 추가된 시승차는 무려 7억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롤스로이스는 매년 판매량을 갱신하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롤스로이스의 역사는 전기차 시대에도 독보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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