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⑳ [황욱익의 로드 트립]
  • 황욱익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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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01 10:00
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⑳ [황욱익의 로드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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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D 웨이스 멀클 교수의 차고지
ACCD 웨이스 멀클 교수의 차고지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땅이다. 일 년 내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사막 기후와 해안성 기후가 섞여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아무래도 미국하면 동부 뉴욕과 서부 캘리포니아를 떠올리는데, 두 지역 모습은 확연하게 다르다. 전통적인 느낌이 가득한 동부에 비해 태평양과 접한 서부는 풍부한 자원과 기후 덕에 소득 수준이나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에게 캘리포니아에 있는 ACCD(ArtCenter College of Design)는 꿈을 이루기 위한 첫 관문인 경우가 많다. 동부의 CCS(College for Creative Studies)와 영국의 RCA(Royal College of Art)도 유명하지만, 아무래도 자동차 디자인은 ACCD가 가장 유명한 편이다. 

캘리포니아 일정 중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ACCD에 재직 중인 웨이스 멀클 교수를 만났을 때다. 

#이탈리아 자동차를 사랑하는 미국인

피아트 X19,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모델이다.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피아트 X19

현지 코디네이터가 보내 온 주소는 숙소인 얼바인에서 북쪽으로 약 50마일(80.4km) 떨어진 버뱅크 공항 인근 주택단지였다. 멀클 교수와 만남을 주선했던 현지 코디네이터는 사실 그의 제자였다. 현지 코디네이터는 멀클 교수를 "보통 미국인과는 다른 시각으로 자동차를 바라보는 미국인으로, 그가 소유한 피아트만 살펴봐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일요일 아침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1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곳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주택 단지로, 깔끔하게 정리된 구획에 집집마다 널찍한 잔디밭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후 빨간색 미니 쿠퍼를 타고 멀클 교수가 등장했다. 큰 덩치와 무뚝뚝한 저음의 목소리로 인해 첫인상은 굉장히 권위적이었지만, 그는 매우 친절하고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그를 따라 집 뒤편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넓다고 생각하지 않은 집 앞과 달리 뒷마당에는 예전 마구간으로 사용하던 창고와 어린 말을 훈련시키는 작은 트랙, 별채로 구성된 공간 등이 나왔다. 

피아트 모레티 850 스포르티바. 단 40대만 만들어졌고, 미국에는 한대만 남아있다.
단 40대만 만들어진 피아트 모레티 850 스포르티바
피아트 리트모 아바쓰 2000
피아트 리트모 아바쓰 2000

말을 조련하는 그의 부인이 이용하는 대형 트레일러도 있었고, 강아지와 고양이, 닭 같은 동물도 여럿 있었다. 대강 소개를 마친 후 과거 마구간이었지만, 개인 개러지로 사용하는 그의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에는 미국에서 정말 보기 힘든 5대의 피아트가 자리했다. 그는 이곳에서 차량 정비를 비롯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V8 엔진과 대형 픽업이 가득한 나라에서 이탈리아 소형차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다녀본 곳과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피아트 850 스파이더를 비롯해 아바쓰 1300, 40대만 만들어진 모레티 850 스포르티바, 리트모 아바쓰 2000, 베르토네가 디자인과 생산을 담당한 X19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중 모레티 850 스포르티바는 미국 내에서도 단 한 대 뿐인 차다. 나머지 모델 역시 현재 미국 내 극소수만 남은 것들이다. 왜 피아트를 수집하는지, 멀클 교수의 생각을 들어봤다. 

웨이스 멀클 ACCD 교수
ACCD 웨이스 멀클 교수

멀클 교수는 "이탈리아 차는 엔진이 작지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피아트는 그런 점에서 굉장히 재밌죠"라며 "미국 자동차 문화하면 대부분 픽업이나 대형 세단, 머슬카를 떠올리지만 저는 그게 낭비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저도 픽업을 가지고 있지만, 말을 이동시킬 때만 사용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픽업 소유자들은 그 차를 매일 운용하죠"라며 "더군다나 혼자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미국인들과 확연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동차란 효율을 극한으로 뽑아내는 것에 집중해야 하며, 이미 이탈리아는 1950년대에 이 부분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생각은 미국보다 주차 환경도 안 좋고 기름 값도 비싸며 큰 차를 선호하는 한국 시장에 더욱 어울리는 개념이다.

#연구소를 방불케한 차고지

웨이스 멀클 ACCD 교수의 차고지
ACCD 웨이스 멀클 교수의 차고지

멀클 교수의 취미는 이탈리아 차 수집이지만, 실제 업무는 자동차 디자인과 다양한 교통 시스템 개발 및 분석이다.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의 개러지와 사무실도 마찬가지. 개러지는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공간이었다. 자가 정비를 위한 부품과 관련 서적으로 가득했다. 오래된 마구간이지만, 최신 작업대와 곳곳에 걸려 있는 소품은 안락한 느낌을 준다. 

반면, 개인 사무실에는 자동차 역사에 관한 자료들과 자동차 잡지가 빼곡하다.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사무실에서 그는 다양한 교통사고 사례를 설명하며 자동차 움직임과 충돌 시 회피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웨이스 멀클 ACCD 교수
ACCD 웨이스 멀클 교수

멀클 교수는 "자동차는 사람을 위한 기계이며, 사고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구할지 고민해봐야 합니다"며 "자율주행차가 나온다고 하지만 여전히 도로에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가 절대 다수일 것이며, 사고 분석을 통해 비슷한 사례를 최대한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엔지니어로서 관점은 확실히 일반 마니아와 상당히 달랐다. 차의 움직임을 알고 그에 따른 예방책을 연구하는 일은 언제나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의 설명 뒤에 살펴본 벽면에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가득했다.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자동차 디자인을 모아 놓은 자료들이었다. 모든 자료들은 그가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 것들로, 상당히 오랜 시간을 투자한 흔적이 보였다. 자료의 질과 양 모두 자동차 연구소에서나 보던 수준이었다.

이어 개인 사무실과 근처 음식점에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과 한국의 자동차 시장과 향후 미래, 그리고 시시콜콜한 개인사까지 일요일 오후를 즐겁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글 황욱익·사진 류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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