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1억짜리 지프' 그랜드 체로키 L…"가격만 안 올렸다면"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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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25 15:40
[시승기] '1억짜리 지프' 그랜드 체로키 L…"가격만 안 올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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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그랜드 체로키가 11년 만에 한층 젊어진 모습으로 풀체인지됐다. 기존 모델의 투박한 실내를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꾸고, 전장을 늘려 3열 시트를 탑재하는 등 내실도 튼튼히 다졌다.

신형 그랜드 체로키는 국내에 롱바디(L)만 출시됐다. 그랜드 체로키 L은 7인승(오버랜드) 및 6인승(써밋 리저브)로 나뉜다. 시승차는 고급 사양이 추가되고 2열 독립시트가 적용된 6인승 써밋 리저브 모델이다.   

그랜드 체로키 L의 길이는 무려 5220mm에 달한다. 경쟁 모델로 꼽히는 포드 익스플로러(5050mm)와 링컨 에비에이터(5065mm)를 능가하는 수치로, 윗급인 캐딜락 에스컬레이드(5382mm)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너비(1975mm)와 높이(1795mm), 휠베이스(3090mm) 등 제원표에 쓰여있는 숫자만 봐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전반적인 외형은 언뜻 이전 세대 모델과 큰 차이는 없다. 대신 요소 하나하나를 다듬어 보다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집중했다. 지프 혈통을 나타내는 7슬롯 그릴은 조금 더 가늘졌고, 외부 조명은 모두 LED가 적용되며 한층 날렵해졌다. 측면에는 다이아몬드 컷 21인치 알로이 휠이 커다란 휠 하우스를 가득 메운다.

실내는 일취월장이다. 이전 모델의 약점이었던 투박한 인테리어를 완전히 개선했다. 세련된 스티어링 휠 디자인부터 디지털 계기판과 무선 스마트폰 미러링을 지원하는 터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전자식 룸미러, 다이얼 타입 변속기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첨단 사양을 대거 투입했다.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사용한 것도 칭찬 요소다. 대시보드와 윈도우라인 등 손이 닿는 곳 대부분을 부드러운 가죽으로 마감했고, 밝은 갈색 오픈포어 스타일 우드마감을 통해 다소 심심해 보일 수 있는 실내에 포인트를 살렸다. 여기에 루프라인까지 부들부들한 스웨이드 재질로 마무리하는 등 고급차가 갖춰야할 요소를 두루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저렴해보일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는 최소화했다.

6인승 모델이자 최상위 트림인 써밋 리저브에는 고급 시트가 적용됐다. 운전석에는 국내 소비자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통풍 기능을 포함해 럭셔리카의 상징인 마사지 기능까지 탑재됐다. 2열은 독립식 캡틴 시트로 마련됐는데, 시트 사이 콘솔과 컵홀더 등이 추가돼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실용성 모두를 잡았다.

기본 트렁크 용량은 490리터다. 2열과 3열 좌석은 버튼만 누르면 간단하게 폴딩이 가능하다. 2, 3열을 모두 접을 경우 최대 2390리터, 길이만 2m가 넘는 광활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캠핑과 레저, 차박 등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이들에겐 매우 유용한 공간이다.

신형 그랜드 체로키에는 하이엔드 오디오 업계에서는 꽤나 정평난 브랜드 '매킨토시' 오디오 시스템이 탑재됐다. 950W 출력 17채널 앰프와 10인치 서브 우퍼를 포함해 총 19개 스피커가 차량 곳곳에 자리한다.

개인적으로는 저음부와 고음부의 조화가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창문을 열거나 볼륨을 높여도 소리가 깔끔하게 퍼지는 점이 마음에 든다. 다만 해상도가 조금 아쉽다. 스피커 갯수가 조금 더 많았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그랜드 체로키 L은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35.1kgf·m를 발휘하는 3.6리터 V6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돼 네 바퀴를 굴린다.

사실, 시승하기 전에는 286마력은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5m가 훌쩍 넘는 커다란 덩치와 2.3톤에 달하는 육중한 무게를 감당하기에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복잡한 서울 도심부터 탁 트인 고속도로와 굽이진 고갯길 등 다양한 도로를 달렸는데, 어떤 답답함도 없이 시원하게 차체를 밀고 나간다. 묵직하게 나아가는 움직임에 오히려 안정감이 느껴졌다. 

정숙성도 돋보인다. 고속에서 풍절음과 노면 소음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8단 자동변속기도 부지런히 단수를 낮추며 엔진 부담을 줄여준다. 시속 100km 고속 주행 시 엔진회전수는 1500rpm을 유지했다.

급가속을 위해 페달을 깊게 밟으면 예상 밖의 거친 엔진음이 귓가를 울린다. 회전수를 높이면 흡사 스포츠카와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들려준다.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인 만큼 높은 회전수를 마음껏 요리할 수 있다. 키가 크고 무거워서 날렵한 거동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불안함도 없었다. 

제동력도 만족스럽다. 급격한 감속 상황에도 자세 흐트러짐 없이 안정적으로 차체를 멈춰세운다. 여기에는 피렐리 P제로 타이어도 한몫한다. 온로드용 타이어가 적용돼 접지력을 한층 높였다. 지프와 피렐리라니, 다소 생소하지만 의외로 궁합이 잘 맞는다. 

물론, 아쉬움 있다. 먼저 승차감이다. 가끔 변속기가 저속에서 종종 제자리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다. 불필요한 움직임이 발생하는 요인이다.

기대치가 높았을까. 에어 서스펜션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전반적인 승차감은 만족스럽지만, 에어 서스펜션 특유의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다. 오롯이 차체 높이 조절에만 충실한 모습이다.

훌쩍 올라버린 가격도 발목을 잡는다. 작년 말, 국내에 처음 출시할 당시만 해도 7980만~8980만원으로, 경쟁 모델과 비교해 꽤 매력적인 가격이었다. 그런데 이달 갑자기 8780만~9780만원으로 무려 800만원이 올랐다.

지프 측은 원자재값 상승 및 공급망 문제로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지만, 1억원 가까운 가격은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고민에 빠트릴 듯하다. 과연 지프의 가격 정책이 그랜드 체로키 L의 신차 효과 및 판매량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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