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⑲ [황욱익의 로드 트립]
  • 황욱익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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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16 10:00
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⑲ [황욱익의 로드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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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광활한 대륙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자동차 놀거리다. 특히 모터스포츠 관련 시설은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넓은 땅덩어리와 낮은 인구밀도, 미개척 지역은 자동차 마니아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얼바인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폰타나다. 이곳에는 과거 캘리포니아 스피드웨이라 불리던 오토스피드웨이 폰타나(이하 폰타나 서킷)가 있다. 모터 프레스 길드(Motor Press Guild, 이하 MPG)의 도움으로 초대 받은 이곳에는 하루에 무려 6가지 경기가 각 코스에서 열린다. 

#벤츠의 고향에서 온 스테판을 만나다

MPG의 소개로 알게 된 스테판은 독일 출신 엔지니어다. 스테판은 우리가 방문했을 2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하나는 폭스바겐 TDI 엔진을 이용한 항공기 엔진 개발이었고, 나머지는 로터스 원메이크 레이스의 엔지니어 서포트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스테판은 TDI 엔진을 사용한 항공기 시험 비행을 마친 후였다. 그는 첫 만남에서 항공기 비행을 영상으로 보여 주며 이것저것을 신나게 설명했다. 스스로 메르세데스-벤츠의 고향 출신이라 소개한 스테판은 로터스 원메이크 레이스를 준비하는 리스토어 전문 숍인 '프랑크 챔프 오브 아메리카'에서 경주차 관리를 담당하며 레이스도 지원했다.

#역사와 전통의 폰타나 서킷

폰타나는 사실 카이저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미국 사업가인 헨리 카이저의 이름을 딴 지역으로, 서킷 부지는 헨리 카이저가 세운 제철소가 있던 자리다.

그는 미국 산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후버댐을 건설하기도 했으며,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중요 전쟁물자였던 리버티 함과 구축함을 납품하기도 했었다. 전쟁 후에는 자동차 회사인 카이저 프레이저를 설립하고 윌리스 오버랜드를 인수해 현재 FCA 산하 지프를 만들기도 했으며, 알루미늄 사업과 부동산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숙소가 있는 얼바인에서 폰타나까지는 약 1시간 거리로, 영화에서 볼법한 황량한 들판이 대부분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폰타나 서킷은 나스카가 열리는 거대한 오벌 서킷을 비롯해 다양한 복합 코스와 카트 서킷 등을 갖추고 있으며 매주 다양한 자동차 이벤트가 열린다. 

폰타나 서킷의 역사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유명 레이서인 로저 펜스키와 카이저 스틸은 폰타나의 버려진 제철소 부지를 서킷으로 바꾸는 계획을 발표한다. 캘리포니아 스피드웨이로 명명된 이 곳은 미국의 대표 모터스포츠인 카트 시리즈와 나스카 윈스턴컵 등 개최를 확정지으면서 공사에 들어갔다.

건설은 순조로웠다. 근처 주민이나 폰타나 당국, 로저 펜스키 등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제철소 철거에서 나온 폐기물 처리까지 완벽하게 끝내면서 캘리포니아 스피드웨이는 1997년 화려하게 개장했다. 트랙 중간에 있는 스코어보드는 제철소 시절 사용하던 30미터짜리 물탱크를 개조한 것으로 이전에는 카이저 제철소의 랜드마크였다.

오토클럽 스피드웨이 폰타나라는 이름은 남부 캘리포니아 자동차 클럽(ACSC)이 서킷 스폰서가 되면서 2008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 자동차 클럽은 10년 동안 약 7500만 달러에 스폰서십을 채결했으며 각종 미디어와 소비자 테스트 용도로 사용할 것을 명시했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모두 서킷 관리에 투자된다고 한다.

#웅장한 규모의 오벌 서킷

폰타나 서킷 규모는 지금까지 방문 했던 서킷 중에 가장 컸다. 2차선 진입로를 따라 간판이 보이는 입구부터 패독까지 거리만 2km에 달한다. 폰타나 서킷은 총 4개의 구간으로 운영된다. 나스카와 인디카 경기가 열리는 완전 오벌 코스를(2마일, 3.22km) 비롯해 일반적인 투어링카 레이스가 열리는 스포츠카 코스, 바이크 코스(2.36마일, 3.79km), 안쪽의 테스트 코스(1.45마일, 2.3km) 등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가장 긴 스포츠카 코스와 오벌 코스를 섞은 구간에서 경기가 열렸다. 1랩 길이는 2.88마일로 약 4.63km 정도다. 이 코스는 약 절반이 오벌 코스이며 나머지는 고속 코너로 구성됐다. 오벌 코스를 제외한 고속 코너 구간은 대부분 고저차가 거의 없어 높은 속력을 낼 수 있으며, 전체적인 구성은 널찍널찍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전체 관람석은 12만2200석이다.

폰타나 서킷은 여러 매체에도 다양하게 등장했다. 캘리포니아 자동차 마니아들의 랜드마크인 만큼 서킷이 등장하는 유명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미녀 삼총사'와 '허비'가 있고,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빈티지 머스탱과 닷지 챌린저를 타고 나오는 '더 버킷 리스트'에도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기 애니메이션 '카'다. 카의 메인 배경이 되는 래디에이터 스프링필드가 바로 이곳이다. 생각보다 카에는 래디에이터 스프링필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섞여 있는 미국 자동차 문화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명 영화에 나왔던 장소를 비교적 쉽게 볼 수 있고 영화 배경지만 찾아다니는 여행 프로그램도 인기다. 워낙에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지나칠 수도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 생각보다 많고 가까이 있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카의 메인 배경인 래디에이터 스프링필드에 실제로 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다른 영화의 배경지를 방문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폰타나 서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카에 자동차 모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 같다.

#신기하고 부러운 문화

운 좋게도 우리는 이날 서킷에서 열리는 경기를 메인 그랜드스탠드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관람객이 거의 없긴 했지만 가장 비싼 좌석에서 여유롭게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루 종일 펼쳐지는 경기는 관람했다. 오벌 서킷의 시각적 중압감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경쟁을 펼치는 차들의 천정이 정확하게 보일 정도로 코스의 경사도가 크며, 선수들은 오벌 코스에서 더 높은 속력을 낼 수 있다.

속도를 많이 낼 수 있는 만큼 앞차에 바짝 붙어 슬립스트림을 이용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반면 사운드는 조금 아쉽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서킷 규모가 워낙 커 사운드가 충돌하거나 갇혀 있을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 무려 6개 카테고리의 레이스가 열렸다. 스테판의 팀이 출전하는 로터스 원메이크를 필두로 유노스 로드스터 원메이크, 투어링카 레이스가 예선부터 2히트로 치러지는 레이스까지 쉴 새 없이 열린다. 참가 대수가 많은 만큼 각 팀의 피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굉장히 다양한 차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만 해도 눈이 호강할 정도다.

이날 아쉽게도 스테판의 팀은 2대 모두 엔진 트러블로 리타이어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경기장을 빠져 나오는데 한쪽에서는 짐카나와 주니어 카트 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카트와 짐카나부터 원메이크 레이스, 투어링카 레이스까지 한 공간에서 펼쳐진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글 황욱익·사진 류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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