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아우디는 포뮬러E 철수를 선언하며 다음 도전 종목은 다카르 랠리라고 밝혔다. 깔끔하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가진 아우디는 왜 뜬금없이 '지옥의 경주'라 불리는 다카르 랠리에 도전했을까. 

# 아우디가 스스로 들어간 지옥 '다카르 랠리'

매년 1월 열리는 다카르 랠리는 사막과 계곡, 산길 등 험로 8300km(2022년 기준)를 2주에 걸쳐 달리는 익스트림 오프로드 레이스다. 규칙은 간단하다. 하루 평균 700km가 넘는 10개 이상 스테이지를 가장 빨리 주파하면 된다.

가장 큰 차별점이라면, 드라이버들은 정해진 코스 없이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를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포장도로나 서킷을 달리는 온로드 경주는 물론, 지정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일반적인 랠리 레이스와도 차이가 크다.

일교차가 50도에 달하는 사막,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길을 달린다. 사람에게나 자동차에게나 가혹한 컨디션이 이어진다. 경기 완주율은 50%가 되지 않고, 대회 창시자를 포함 7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죽음의 랠리'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참가자들은 경기 시작 전 '대회 중 사망 시 본인의 책임으로 한다'는 무시무시한 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초기 다카르 랠리는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사하라 사막 등 북아프리카 지역을 달려 세네갈 다카르에 도착하는 경주였다. 그래서 '다카르 랠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프리카 분쟁국 내 테러 위험으로 2009년부터는 남미로 코스가 변경됐고, 2020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고 있다. 이후에도 출발지 및 도착지가 조금씩 바뀌고 있으나 여전히 '다카르 랠리'라 불리고 있다.

# 포뮬러E 졸업한 아우디, 다카르 랠리 선택한 이유는?

자동차 제조사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명성이고, 또 하나는 가혹한 환경에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더 나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함이다. 아우디가 우승 상금도 없는 다카르 랠리에 출전한 가장 큰 이유 역시 전동화 시대를 맞아 남들보다 더 나은 전기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의 자동차는 모터스포츠를 통해 발전해왔다. 이는 전동화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아우디는 전기차 레이스의 최고봉 '포뮬러E'에 참가하며 독자 개발한 전기 파워트레인을 담금질했다. 7년 동안 1회 우승과 3회 준우승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세운 아우디는 2020년 갑작스레 포뮬러E 철수를 선언한 뒤, 다음 행선지로 다카르 랠리를 지목했다.

그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우디는 전동화 파워트레인에 대한 데이터를 더 혹독한 곳에서 확보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아직까지 양산형 전기차는 외부 요인에 따라 주행가능 거리가 크게 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늘 남은 주행거리에 대해 압박을 느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우디의 전기차가 수천km에 달하는 사막을 성공적으로 주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대폭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 아우디의 특별한 전기 랠리카, RS Q e-트론

아우디는 모터스포츠에 독특한 족적을 남겨왔다. 모두가 후륜구동 레이스카를 만들때 전륜구동 레이스카를 만들어 경쟁 팀을 압도했고, 세계 최초로 시속 400km를 돌파하는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다. 광기의 레이스로 불리는 WRC 그룹B에서는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 열풍을 일으키며 전세계 모터스포츠 트렌드를 이끌었다. 레이스와는 거리가 멀었던 디젤 엔진을 탑재하고 르망 24시를 제패한 아우디는 내구 레이스의 전설로 남았다.

이번 다카르 랠리에서도 아우디의 괴짜 기질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사상 첫 전기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랠리카 'RS Q e-트론'을 내세운 것이다. 아우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보고 단번에 구성을 이해할 수 있겠다. 각각 RS(Renn Sport)는 아우디의 초고성능 라인업을, Q는 SUV를, e-트론은 순수전기차를 의미한다. 즉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갖춘 고성능 SUV라는 뜻이다.

전기차 레이스는 지금도 많지만, 랠리에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배터리의 한계 때문이다. 많게는 800km를 사막에서 달려야 하는데, 이같은 거리를 고속으로 계속 달리기엔 현재 기술로는 무리가 있다. 충전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다.

아우디는 엔진을 달아 이를 극복했다. 레인지 익스텐더 전기차와 같은 방식이다. 차량의 구동은 포뮬러E에서 검증한 전기모터와 발전 시스템이 담당하고, DTM 레이스카에서 가져온 2.0리터 4기통 TFSI 엔진은 오직 배터리 충전만을 위해 작동한다.

# 아우디의 야심찬 도전, 첫 대회 성적은?

다카르 랠리는 올해로 44회를 맞았다. 새해 첫날부터 보름 동안 승용차와, 트럭, 모터바이크, 사륜바이크, 사륜 오프로드 자동차(SSV) 등 총 5개 부문에 63개국 300여팀, 1060여명의 선수가 출전해 목숨을 건 질주를 벌였다.

(왼쪽부터) 마티아스 엑스트롬, 에밀 베르크비스트, 슈테판 피터한셀, 에두아르 불랑제, 카를로스 사인스, 루카스 크루스
(왼쪽부터) 마티아스 엑스트롬, 에밀 베르크비스트, 슈테판 피터한셀, 에두아르 불랑제, 카를로스 사인스, 루카스 크루스

'다카르 루키' 아우디는 총 3대의 RS Q e-트론을 투입했다. 각 차량에는 메인 드라이버와 부조종사 등 2명이 탑승하는데, 드라이버 라인업이 매우 돋보인다. 앞으로 이러한 조합을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슈테판 피터한셀은 우승은 커녕 완주조차 어렵다는 다카르 랠리에서 바이크로 6번, 자동차로 8번이나 우승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카를로스 사인스는 WRC 2회 우승, 다카르 랠리 3회 우승 등 20년 랠리 경력을 자랑한다. 마티아스 엑스트롬은 오랜 기간 아우디 소속으로 DTM 우승을 포함해 WRC, 랠리크로스 등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고 달렸다.

아우디는 첫 도전부터 호화 드라이버 라인업을 선보이며 이목을 끌었다. 이는 단순히 마케팅 차원을 넘어서는 아우디의 전략이다. 엄청난 베테랑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만으로도 아우디는 이미 커다란 수확을 얻은 듯하다.

그렇다면 이번 2022 다카르 랠리의 결과는 어땠을까. 자동차 부문 우승은 나세르 알 아티야(토요타 가주레이싱)가 차지했다. 팀 아우디 스포츠의 마티아스 엑스트롬은 최종 9위, 카를로스 사인스는 12위에 올랐다. 아쉽게도 슈테판 피터한셀은 스테이지 2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 내비게이션 문제 등으로 인해 57위에 그쳤다.

우승은 놓쳤지만 아우디 스포츠의 임팩트는 대단했다. 총 12개 스테이지로 구성된 이번 다카르 랠리에서 4개 스테이지를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9개 스테이지에서 3위 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종합 우승을 차지한 토요타 가주레이싱과 2등을 차지한 바레인 레이드 익스트림 팀은 새로운 경쟁자를 견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아우디는 사막 환경에서도 전기차가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입증하며 다카르 랠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아우디는 아직도 배가 고픈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수많은 모터스포츠를 도장깨기 하듯 휩쓴 아우디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성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우디는 내년에도 전기 랠리카를 통해 다카르에 출전할 계획이다. 올해 보여준 성과라면 내년에는 곧바로 우승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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