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테슬라 운전자는 왜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뺏겨 사고가 났나?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 좋아요 0
  • 승인 2020.08.10 09:21
[이완 칼럼] 테슬라 운전자는 왜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뺏겨 사고가 났나?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 댓글 0
  • 승인 2020.08.10 09: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주 독일에서는 주목할 만한 자동차 사고 관련 재판 결과 하나가 공개됐습니다. 한 테슬라 운전자가 빗길을 달리다 사고를 냈고, 그로 인해 200유로(한화 약 27만원) 벌금과 운전금지 1달 처분을 받게 됐다는 내용이었죠. 얼핏 특별할 게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기사에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테슬라 모델 3 실내 / 사진=테슬라

#와이퍼 버튼 디스플레이 속으로

독일 자동차 경제지 아우토모빌보헤가 전한 사고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2019년 3월, 테슬라 오너는 운전 중 비가 내리자 와이퍼를 작동하기 위해 중앙의 대형 디스플레이 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리고 와이퍼 표시를 터치했죠. 그는 다시 와이퍼의 속도를 조절해야 했고, 속도 조절 표시를 찾아 누르려던 순간 차는 차로를 이탈해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구조물 및 여러 나무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테슬라 모델 3 중앙 디스플레이 안내도. 화살표로 가리키는 곳이 와이퍼 버튼 / 출처=테슬라 모델 3 사용설명서
테슬라 모델 3 중앙 디스플레이 안내도. 화살표로 가리키는 곳이 와이퍼 버튼 / 출처=테슬라 모델 3 사용설명서

내용의 이해를 조금 더 돕기 위해 테슬라 모델 3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테슬라 모델 3의 사용 설명서에는 와이퍼 및 와이퍼 작동과 관련한 설명이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선 전면 와이퍼를 한 번만 작동하려면 운전대 왼쪽에 달린 레버 끝 버튼을 눌렀다 떼면 됩니다.

 

 테슬라 모델 3 와이퍼 1회 작동용 버튼 / 출처=모델 3 시용설명서
테슬라 모델 3 와이퍼 1회 작동용 버튼 / 출처=모델 3 시용설명서

만약 와이퍼를 계속 작동시켜야 한다면 이번에는 레버가 아닌 중앙 디스플레이에 있는 와이퍼 표시를 눌려야 합니다. 그리고 와이퍼의 속도를 올리거나 내리고자 할 때는 다시 하단의 4단계 표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해놓았습니다. 센서로 작동하는 '자동(auto)' 모드도 있긴 합니다만 '자동 설정은 베타 단계이며 자동 설정을 사용할지 확신할 수 없을 경우 와이퍼 속도를 앞에서부터 네 위치 중 하나로 설정할 것을 권장'한다는 설명처럼 아직 온전히 이용하기엔 조금 불안한 면이 있습니다.

테슬라 모델 3 와이퍼 속도 조절 표시 / 출처=모델 3 사용설명서 
테슬라 모델 3 와이퍼 속도 조절 표시 / 출처=모델 3 사용설명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폭우를 만났고, 그래서 와이퍼를 작동하고 움직이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할 때 확실히 모델 3는 운전자가 전방 도로 상황으로부터 디스플레이 장치에 시선을 더 빼앗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1심 재판부는 해당 운전자의 행동을 '운전 중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통화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어긴 것과 동일한 위험 행위로 간주했고, 벌금과 1달 운전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결정에 반발한 운전자가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나 인포테인먼트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와이퍼 작동을 위한) 운전에 필요한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 역시 운전자의 잘못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어떤 이유로 전자 장비를 사용했든, '전방주시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해당 재판부는 결과를 설명하며 도로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터치스크린 사용이 증가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대형 디스플레이 시대, 안전한가

자동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첨단 기술, 첨단의 전자 장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버튼으로 많은 기능을 다루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터치 기능이 들어간 대형 디스플레이 장착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복잡한 운전석 주변을 대형 화면으로 단순화시켰습니다. 심지어 테슬라는 동반석 앞에 있는 수납공간(글로브 박스)을 열 때조차 디스플레이 화면을 터치하도록 해놓았습니다.

'굳이 이것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은 조작 버튼, 장치가 거대 화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덕에 차량 내부는 이전보다 깨끗해졌습니다. 하지만 스크린에 너무 많은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물론, 많은 기능이 화면을 터치해야지만 이용할 수 있게끔 되면서 운전자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화면 쪽으로 자주 빼앗길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만큼 전방주시의무를 소홀히 할 확률이 높아진 겁니다.

사진=다임러
사진=다임러

주행 중 DMB 시청을 금지시킨 것은 운전자가 영상에 시선을 빼앗기고 운전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운전 중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처럼 디스플레이 속 작동 버튼을 찾고 누르기 위해 시선을 빼앗기는 것 역시 위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디스플레이 구성은 안전을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디스플레이 장치 구성은 주행 안전 우선 고려

테슬라가 와이퍼 속도 조절 버튼을 화면 속에서 찾게 하는 게 아니라 와이퍼 레버에 다이얼을 만들어 이를 돌리는 방식으로 했다면 운전자는 더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기능을 디지털화하는 것도 좋지만 이 구성이 정말 안전을 위한 최선이었는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따져봤어야 합니다.

사진=다임러
사진=다임러

자동차는 멋과 성능의 결합체이자 동시에 탑승자를 안전하게 이동시켜야 하는 이동수단입니다. 이 핵심 가치들이 균형을 잡고 손상되지 않은 채 발전되었을 때 좋은 자동차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더 우선 순위에 올려 놓아야 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안전입니다. 첨단 기술 경쟁, 디자인 경쟁, 다 좋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경쟁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좋은 길이라 생각합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