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살 때 1000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이는 3000~5000만원짜리 국산차뿐 아니라 1억원이 넘는 고급 수입차에서도 마찬가지죠.

EQC를 판매하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전기차를 살 때 소비자들이 받는 보조금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어차피 소비자가 내야 하는 돈, 자신들의 이익과는 상관없다 생각했던 걸까요?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소비자들에게 1000만원에 달하는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이 기회를 너무도 허무하게 외면해버린것 같습니다. 

벤츠코리아는 최근 순수 전기차인 EQC에 대해 환경부 재인증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주행거리를 재조정하기 위함으로 보이는데요. 이번 재인증을 통해 그간 논란이 됐던 ‘저온 주행거리’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가지 기준으로 측정됩니다. 일상적인 상온 환경에서 측정된 주행 거리와 -7℃의 저온에서 측정된 주행거리입니다.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저온에서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의 주행 거리를 추가로 측정하는 것이죠.

이 저온 주행거리는 전기차 보조금과도 밀접하게 관계가 있습니다. 국내 ‘전기자동차 보급대상 평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으려면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120km(초소형전기차 60km)를 넘어야 하고, 저온 주행거리가 상온 주행거리의 60% 이상을 넘어야 합니다. 상온에서 300km를 달리는 전기차라면 저온에서도 180km 이상 달려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벤츠 EQC는 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작년 10월 출시 당시 EQC의 저온 주행거리는 171.7km로, 상온 주행거리(308.9km)의 55.6%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덕분에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도 제외된 것이죠.   

이번 재인증을 통해 EQC의 저온 주행거리는 대폭 늘었습니다. 정부 및 지자체의 전기차 보조금 기준도 거뜬히 넘어섰습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상온 주행거리는 308.7km로 기존보다 0.2km 줄었지만, 저온 주행거리는 270.7km로 99km나 증가했습니다. 상온 대비 주행거리는 87.7%에 달합니다. 다른 전기차와 비교해도 손실률이 꽤 낮은, 매우 좋은 수치입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의문이 들었습니다. 벤츠코리아에서 밝힌 저온 주행거리 향상 비결은 고작 ‘ECU 소프트웨어 개선’이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간단한 작업을 왜 하지 않고 출시해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했을까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벤츠코리아는 전기차 보조금 신청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듯했습니다. 소비자들이 훨씬 더 저렴하게 차량을 구매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실제로 벤츠코리아는 작년 10월 EQC 출시 당시 전기차 보조금을 아예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번 재인증 후에도 “전기차 보조금 신청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내부 논의가 확정된 후 공개하겠다”는 미온적 대답을 하는데 그쳤습니다. 

왜 이렇게 소극적일까요. 제가 담당자였다면 재인증을 받자마자 전기차 보조금부터 신청했을 것 같은데, 벤츠코리아는 그러지 않더군요. 머릿속으로 이런 시나리오가 그려졌습니다. 

벤츠코리아에서 EQC 국내 출시를 준비합니다. 당연히 정부에게 주행거리 및 효율 인증을 받아야겠죠. 아, 그런데 저온 주행거리가 낮게 나와 정부 및 지자체의 보조금을 못 받게 됩니다. 어차피 못 받는것, 아예 신청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체 조사에 들어갔고, 조사 결과 이 문제는 ECU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재인증을 받습니다. 저온 주행거리가 늘어났습니다. 전기차 보조금을 다시 신청할지 말지 고민이 됩니다.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왜 진작 ECU 소프트웨어를 개선해서 내놓지 않았냐고 비판받을게 뻔하거든요. 게다가 보조금을 못 받은 소비자들에게는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할까요?

EQC가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경우, 액수는 약 1055만원 정도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주행거리 및 에너지소비효율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는데요. EQC의 성능(주행거리 308.7km, 연비 3.2km/kWh)이 재규어 I-페이스(306.5km, 연비 3.22km/kWh)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죠. I-페이스의 보조금은 정부 605만원과 지자체 450만원(서울 기준)을 포함해 총 1055만원으로, EQC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이백만원도 아니고 무려 1055만원입니다. 1억360~1억960만원인 EQC 가격이 1억원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죠. 고작 ‘ECU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저온 주행거리가 대폭 늘어난게 사실이고, 진작에 이를 적용하지 않고 출시해 소비자들이 1055만원가량의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벤츠코리아에 있을 겁니다. 자신들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해 소비자에게 1000만원이 넘는 손해를 끼친 셈이니까요. 

처음부터 ECU 소프트웨어 개선 버전으로 출시하는게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듭니다. 첫 번째 인증에서 저온 주행거리가 상온의 55.6% 수준밖에 안 나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벤츠코리아 역시 뭔가 잘못됐다 생각해 재인증을 받은 거겠죠. 1000만원이나 되는 전기차 보조금을 못 받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시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재인증을 통해 저온 주행거리가 개선됐다면 서둘러 보조금을 신청해 소비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죠. 물론, 벤츠코리아가 지금 당장 EQC 전기차 보조금 신청을 하더라도 100% 승인받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 승인을 받더라도 하반기부터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더 늦춰서는 안됩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더라도 보조금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줘야겠습니다.     

기존 소비자에 대한 보상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EQC는 작년 11월 출시 이후 국내에서 50대밖에 안 팔렸지만, 어쨌든 메르세데스-벤츠를 믿고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의 신뢰를 져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뭐, 보조금을 못 받아서 판매량이 저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사실, 보조금 문제보다 더 궁금했던 점은 '어떻게 ECU 소프트웨어 개선만으로 저온 주행거리가 100km나 늘어날까?' 였습니다.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 벤츠코리아에 문의했는데, ECU 소프트웨어 개선 이외에 다른 추가 조처는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ECU 소프트웨어의 어떤 부분을 개선했는지, 기존 모델도 ECU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면 저온 주행거리가 늘어나는지 등의 추가 질문을 보낸 상태입니다. 답변이 오면 후속 기사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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