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논란의 민식이법, '안전에 유의한 운전'은 어떤 기준인가요?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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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2 12:12
[이완 칼럼] 논란의 민식이법, '안전에 유의한 운전'은 어떤 기준인가요?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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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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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으로 잘 알려진 도로교통법 12조 개정안이 3월 25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우선 이 개정안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의 안전시설이 늘어나게 됩니다. 과속 단속용 카메라와 방지턱, 그리고 미끄럼 방지 시설 등이 단계적으로 추가 설치됩니다. 그다음으로는 운전자 처벌이 강화됐습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의 운전자는 스쿨존에서 어린이 안전에 더욱 유의하면서 운행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린이가 사망하게 되면 운전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 상해를 입혔을 때는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개정안으로 스쿨존 내 과속과 사고 위험이 크게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민식이법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와 반대로 악법 논란까지 이어지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숫자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논란이 되는 걸까요?

# ‘안전에 유의하면서…’ 해석 논란

교통사고를 줄이고 보다 안전한 도로 환경을 만들자는 것에 기본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민식이법이 마련됐죠. 그런데 이 민식이법이 다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취지에 반대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반발의 핵심은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행을 해야 한다’라는 대목과 관련이 깊습니다.

시속 30km로 돼 있는 스쿨존(상황에 따라 50km/h로 제한된 곳도 있음)에서 그 이하로 주행하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일단 멈춤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이 두 가지만 지키면 운전자가 가중처벌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명확하게 민식이법 위반이냐 아니냐로 구분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

지난 3월 25일 민식이법이 시행된 첫날이었습니다. 충남 서천의 한 스쿨존에서 중학교 1학년이 무단횡단을 하다 자동차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1톤 트럭이 지나간 뒤 그 학생은 바로 차로를 가로질러 뛰어갔고, 결국 주행 중이던 차와 부딪혔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해당 영상을 올린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사고의 학생이 만 13세 이하, 법적으로 어린이에 해당된다면 민식이법에 따라 운전자는 최소 5백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될 것으로 봤습니다.

시속 30km 이하 구간에서 그에 맞게 주행을 하고 있었고, 횡단보도에서 일단 멈춤 규정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안전에 유의한’ 운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민식이법 위반에 해당 안 된다고 판단되겠죠. 하지만 경찰이나 사법부의 판단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아이가 뛰어나올 때 차의 주행 속도와 거리를 따져 방어운전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충분히 보행자를 인지하고 제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면 운전자는 민식이법을 위반한 게 됩니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기준과 상관없이 말이죠.

# 살인죄에 준하는 처벌 기준 논란

사망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전자가 시속 30km 이하의 스쿨존에서 그에 맞게 주행했고,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멈춤을 했다고 치죠. 하지만 사망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이 경우에도 ‘안전운전 의무 소홀’로 판단하면 민식이법 위반으로 운전자는 구속됩니다. 이로써 보행자의 과실이 어느 정도냐를 따지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이전에 적용되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른다면 부상 정도에 따라, 사고를 당한 어린이와 운전자의 과실 정도에 따라 벌금이 조절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민식이법 위반으로 판결이 나면 최소 5백만 원 벌금, 또는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합니다. 벌금형,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 등이 가능했던 사망사고 또한 3년 이상, 최대 무기징역까지 실형을 살 게 됩니다.

물론 정상 참작이 이뤄지거나 합의를 했을 때 형량이 줄어들 여지가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처벌 규정이 강화된 만큼 합의에 따른 형량이나 벌금 조절 가능성 또한 줄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내용 때문에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혹은 고의의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을 때 수준에 준하는 법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과연 ‘안전에 유의한 운전’의 기준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요구할 수 있고, 행동해야 하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요?

# 기준 구체화하고, 운전면허 교육도 바꿔야

시동을 켠 순간부터 자동차는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를 무조건 보호해야 합니다. 이는 운전의 기본입니다. 성인과 달리 판단 능력,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 보호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따라서 제도 역시 보행 안전, 어린이 보호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처벌 기준 마련이 중요합니다. ‘안전운전 소홀’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아닌, 누가 봐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훨씬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혼란과 반발을 줄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운전면허 교육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합니다. 보행자 및 자전거 이용자 등, 교통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되고 테스트가 이뤄져야 합니다. 등하교 시간을 피해 반드시 몇 회 이상 어린이보호구역 주행 실습 교육이 있어야 하고, 실제 시험 때도 어린이보호구역 통과는 의무적으로 코스에 넣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운전학원 내 스쿨존 구역을 만들어 그곳에서 연습을 우선 하게 하거나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안전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도 동원할 수 있습니다.

# 학교와 학무보 역할 강화, 등하교 시 안전조끼 착용 의무화

다음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안전 교육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일부 교육청이 민식이법 시행에 맞춰 학교 차원의 교통안전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다행이죠. 이왕 교육하는 거, 초등학교 저학년 중심으로 교통안전 교육을 정규 과목으로 편성하는 것도 고려했으면 합니다. 독일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도 있겠는데요.

독일의 어린이들은 정규 과목으로 편성된 자전거 교육을 받고 4학년이 되면 경찰관 입회하에 시험을 봅니다. 마치 어른들이 자동차 면허시험을 보듯 이론과 실기 시험이 진행되죠.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교통표지판을 이해하고 어떻게 자전거를 타야 안전한지를 포괄적으로 배웁니다. 우리도 자전거가 됐든 아니면 교통안전 교육이 됐든, 어떤 형태로든 관련 교육이 강화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부모님들의 관심입니다. 법이 강화됐으니, 안전 시설물이 들어선다니 ‘이제 나아지겠지’ ‘우리 아이 안전하겠지’ 이렇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아이와 함께 횡단보도 이용법을 현장에서 학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킥보드를 타고 불쑥 차로로 튀어나오거나, 굴러가는 축구공을 잡겠다고 차로로 뛰어드는 것, 시야를 가린 주정차 된 차량 주변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을 부모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꼭 실천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안전조끼 의무 착용입니다. 등하교 시 안전조끼를 아이들이 입고 있는 게 보행 안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독일의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 자료에 따르면 시속 50km로 달리던 자동차의 제동 거리는 약 28m입니다. 그런데 어두운 옷을 입은 어린이가 도로를 횡단하는 것을 운전자가 발견하는 건 약 25m입니다. 사고를 피하기 어렵죠. 반면 안전조끼를 입은 어린이의 경우 140m 거리에서도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안전조끼만큼 가격 부담 없이 아이들 안전을 돕는 것도 없습니다.

# 함께 노력해야 더 많이 더 빨리 안전해진다

우리나라 어린이보호구역은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약 1만 7천 개 정도가 있습니다. 이 모두에 과속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를 마련하고, 방지턱과 미끄럼 방지 장치, 통행로 개선 작업, 불법 주정차 차량 단속 등이 모두 설치되고 실행되기까지는 약 3년이 필요합니다.

또 요즘 자동차에 달려 나오는 긴급자동제동장치의 의무장착을 기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분명 좋은 안전 시스템이긴 합니다만 우리나라는 2021년부터 의무 장착 예정이고, 보행자까지 대상으로 한 긴급제동장치 의무화는 이보다 늦은 2023년부터 이뤄질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자동차에 이 장치가 달리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러니 안전장치에 의존할 생각보다는 운전자와 보행자 스스로 안전한 도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뭔지, 그것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 합니다. 그와 함께 정책 당국도 민식이법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없는지 다시 짚어보고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겠습니다. 합리적 제도, 좋은 교육 등이 먼저 마련되는 것, 그것이 갖춰졌을 때 예방 및 처벌의 효과도 크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민식이법 논란 속에서 지금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함께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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