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폭스바겐 투아렉...모든 것이 가능한 SUV
  • 모로코=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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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25 16:24
[시승기] 폭스바겐 투아렉...모든 것이 가능한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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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투아렉은 확고한 목표를 품고 태어났다. 그당시 폭스바겐그룹을 이끌던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은 최고속도 270km/h, 뛰어난 오프로드 주파 능력, 럭셔리 세단의 승차감 등을 갖춘 SUV 생산을 지시했다. 폭스바겐은 포르쉐와 공동개발을 통해 2002년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족의 이름을 딴 투아렉(Touareg)을 선보였다. 3세대로 진화한 신형 투아렉은 최초의 투아렉이 목표했던 방향성이 더 짙어졌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까지 담겼다. 모로코에서 신형 투아렉을 시승했다.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신형 투아렉을 타고 모로코를 달렸다. 모로코는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포장 상태가 엉망이었다. 마치 지하철 공사 때문에 임시로 포장한 도로 같았다. 승용차의 통행은 드물었고, 화물트럭이 간간히 보였다. 그래서 도로는 더 거칠었다. 차선도, 표지판도, 신호등도 없는 황무지의 도로에서 투아렉은 홀로 평온했다.

편안함은 이번 투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3박 4일 동안 험난한 모로코의 도로를 쉬지 않고 달리고, 하루 종일 수만년된 돌덩이를 밟으며 협곡을 넘어야 했다. 운전의 피로가 누적됐다면 사하라까지 가지도 못했으리라. 새로운 4코너 에어 서스펜션과 전자식 댐핑 컨트롤 등은 투아렉이 언제나 최상의 승차감을 발휘하도록 애썼다. 사막 주행을 위해 임의로 달아놓은 오프로드 타이어도 투아렉에게 해를 끼치지 못했다.

빠르게 달릴 때도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에어 서스펜션은 시속 120km 이상에서 스스로 15~25mm 차체를 낮췄다. 노면에 바짝 붙어서 공기저항을 줄였다. 센터 콘솔의 다이얼을 돌려 별도로 높낮이를 설정할 수 있고, 높낮이를 고정시킬 수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박차고 나가는 투아렉에게서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며 쉴새없이 운전대를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투아렉의 안정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전 세대와 가장 달라진 부분은 연속된 코너에서의 몸놀림이었다. 승차감과 운동성능이 더 조화롭게 균형을 이뤘다. 48V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액티브 안티롤바는 무게중심이 높은 SUV의 운동성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전기 모터가 연결된 안티롤바는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반대편 바퀴를 끊임없이 누른다. 코너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이 크게 줄었고, 네바퀴의 저항이 더 균일해져 코너에서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여기에 뒷바퀴의 각도를 조절하는 올 휠 스티어링까지 추가돼 구불구불한 낭떠러지도 편히 달릴 수 있었다.

람보르기니 우루스, 포르쉐 카이엔, 벤틀리 벤테이가 등 폭스바겐그룹의 덩치 큰 SUV는 전부 이 기술을 공유한다. 무게 중심을 바로 잡고 큰 차의 회전반경을 줄이는 것, 운동 방향의 부하를 줄이는 것 등은 SUV에게 축복과 같은 기술이다. 해발 2460m에 달하는 산맥의 능선은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난했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서스펜션을 한껏 낮춘 투아렉은 물방울처럼 생긴 헤어핀도 손쉽게 돌았다. 위화감을 주는 기울어짐은 신기할 정도로 생략됐다. 예전 투아렉들도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날렵했는데, 신형 투아렉은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마치 골프R처럼 단단한 서스펜션을 지닌 소형차처럼 움직였다.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서사하라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 폭스바겐 인스트럭터들은 일부러 더 험난한 루트를 선택했다. 트렁크에 괜히 예비용 타이어를 실어놓은게 아니었다. 황야에 펼쳐진 끝없는 도로를 달리다 예고없이 도로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우리에게는 오프로드 모드 설정을 통해 지상고를 높이는 짧은 시간만이 허락됐다.

투아렉의 생김새는 점차 도시적이고, 세련미 넘치게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투아렉의 본질적인 성격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길이 아닌 곳에서의 주행능력은 더 완숙해졌다. 온로드에서 보탬이 됐던 여러 전자장비는 오프로드에서도 유용함을 뽐냈다.

오프로드 모드에서 에어 서스펜션은 두단계로 높아진다. 25mm가 높아진 기본 오프로드 모드가 있고, 여기서 한단계 더 높이를 높여 총 70mm까지 상승하는 스페셜 오프로드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스페셜 오프로드 모드를 사용했다. 접근각과 이탈각이 31도, 최대 도강 깊이가 570mm까지 높아졌지만, 인스트럭터의 계속되는 코칭이 필요한 바위산을 넘었다. 신형 투아렉에는 5개의 기본적인 주행모드가 있고, 오프로드을 위한 스노우, 오프로드 오토, 모래밭, 자갈길, 오프로드 익스퍼트 등 5개의 주행 모드가 있다.

오프로드는 재미를 넘어서, 과도한 긴장과 공포심까지 안겨줬다. 산맥을 넘어 평지를 만나면 비포장도로라도 몹시 반가웠다. 그럴때면 6기통 디젤 엔진의 온힘을 쏟아냈다. 286마력, 61.2kg.m의 토크를 내는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는 3명의 승객, 3개의 캐리어, 예비용 오프로드 타이어가 실린 투아렉을 마치 골프처럼 경쾌하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엔진의 회전질감, 주행모드에 따라 성격을 달리는 변속 감각, 땅을 박차고 나아가는 느낌 등은 더 흠잡을 곳이 없어졌다. 기본기에 충실한 SUV의 올바른 발전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새벽부터 12시간 가량을 달리니 구글 맵을 사용하는 거대한 15인치 터치스크린에 갈색 사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사지 시트의 공기주머니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심장의 쿵쾅거림이 더 빨라졌다. 수많은 오프로드를 달려봤지만 걷기만 해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사막은 처음이었다. 2톤에 달하는 투아렉이 이곳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전혀 짐작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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