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쏘나타와 K5, 4.9m의 벽을 깨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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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9 08:34
[이완 칼럼] 쏘나타와 K5, 4.9m의 벽을 깨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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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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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전장’이라는 표현을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차의 길이를 뜻하는데요. 이 전장에 따라 일반적으로 중형급 자동차냐 준중형이냐, 또는 준대형(혹은 대형)이냐로 자동차를 분류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자동차관리법의 승용자동차 분류 기준이 있습니다만 요즘처럼 다양한 자동차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 오래되고 허술한 법적 기준은 소비자의 이해를 돕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독일과 같은 곳은 정부 기관과 자동차협회 관계자들이 신차가 나올 때마다 모여 10가지 넘는 세부적 기준을 가지고 흔히 말하는 차급(세그먼트)을 결정하고 있죠. 그에 비하면 우리는 체계적으로 차급을 분류하려는 노력도 없고, 환경도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얘기가 약간 벗어났는데요. 최근 저는 현대와 기아가 내놓은 중형 세단의 전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 준대형만큼 커진 중형

2019년 3월에 나온 8세대 쏘나타(DN8) 전장은 4900mm, 얼마 전 공개된 신형 기아 K5의 전장은 4905mm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중형차 길이 4.9m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기아차 신형 K5 / 사진=기아자동차

- 현대 쏘나타 전장 변화

6세대 YF 쏘나타 : 4820mm
7세대 LF 쏘나타 : 4855mm
8세대 DN8 쏘나타 : 4900mm

- 기아 K5 전장 변화

1세대 TF K5 : 4835mm
2세대 JF k5 : 4855mm
3세대 DL3 K5 : 4905mm

상위급인 준대형(E세그먼트)도 예외는 아닙니다. 2000년 중반에 나온 4세대 TG 그랜저는 부분변경을 거치며  4.9미터 벽(4910mm)을 넘어섰습니다. 이후 HG (4920mm)와 IG (부분변경 전 4930mm) 그랜저로 이어지며 크기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죠. 하지만 이번에 나온 더 뉴 그랜저는 4990mm로 거의 5미터에 육박하는, 쏘나타보다 더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플래그십의 기준점이라는 5m에는 다다르지 않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세대교체 되어 나올 새로운 그랜저는 5m 벽을 깰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고로 같은 급인 기아 K7은 더 뉴 그랜저보다 5mm 더 긴 4995mm로, K5와 K7 모두 현대자동차 동급 모델보다 5mm 더 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와 기아가 내놓는 자동차의 전장은 왜 이렇게 급격한 변화를 맞은 걸까요?

# 경쟁 모델 영향받다

현대차 쏘나타 / 사진=현대자동차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와 기아의 급격한 전장 변화는 경쟁 모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북미와 한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미국 및 일본 세단의 크기가 커지면 현대와 기아의 모델도 커지게 됩니다. 신차를 내놓을 때 무조건 경쟁 모델의 제원을 확인하고 이보다 적어도 전장만큼은 더 길어야 한다는 암묵적 룰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인데요. 물론 이런 전장 키우기는 현대와 기아만의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와 기아가 특히 이 부분에 민감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 북미 주요 중형 세단 전장 비교

토요타 캠리 : 4880mm
혼다 어코드 : 4890mm
폭스바겐 파사트 (북미형) : 4875mm
현대 쏘나타 : 4900mm
기아 K5     : 4905mm
쉐보레 말리부 : 4935mm

- 유럽 주요 C 세그먼트 해치백 전장 비교

현대 i30 : 4340mm
VW 골프 : 4284mm
푸조 308 : 4255mm
포드 포커스 : 4378mm
르노 메간 : 4359mm

한국과 북미에서 판매되는 중형 세단의 경우 말리부를 제외하면 모두 쏘나타와 K5보다 전장이 짧습니다. 가장 긴 편에 속한다는 말리부조차 이전 세대까지 4865mm로 전장은 4.9미터를 넘지 않았죠. 어쨌든 쉐보레와 현대, 기아의 중형 세단 전장이 4.9m를 넘겼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다른 경쟁 모델의 전장 변화도 제법 크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유럽도 비슷합니다. 현재는 현대 i30나 기아 씨드보다 전장이 긴 모델이 몇 개 보이지만 세대 교체가 얼마 안 남은 i30의 경우 경쟁 모델의 크기 변화에 맞춰 더 길고 넓은 모델로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현대차 i30 / 사진=현대자동차

# 모델별 간격도 고려

이처럼 자동차 회사 어느 것 할 것 없이 전장을 늘리는 추세이다 보니 경쟁사와의 신경전만큼이나 자사의 모델별 전장 간격을 유지하는 것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랜저와 쏘나타가 이전 모델과 큰 차이를 보이며 전장을 늘린 만큼, 앞으로 나올 아반떼의 전장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 뉴 그랜저 전장 : 4990mm
쏘나타 신형 전장 : 4900mm
아반떼 전장 : 4620mm, 신형 아반떼(CN7) 전장 : ?

# 과연 어디까지 갈까

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겪고 자동차는 이전의 크고 화려한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작고 연비 효율적인 자동차가 대세가 된 것이죠. 그러다가 경제 성장, 체격의 변화, 기술 발달에 따른 안전성 개선 등, 여러 이유로 다시 자동차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한국 시장의 소비 특성도 현대와 기아의 덩치 키우기 전략을 거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행 성능보다는 안락함을, 큰 공간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을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차의 크기와 신분를 비례해 생각하는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덩치를 키우는 게 배기가스 문제 개선의 속도를 더디게 하고, 차의 가격을 올리는 명분이 된다는 점입니다. 어느 한 브랜드만의 문제가 아닌, 업계 전체의 방향성이기는 하지만, 한 번쯤은 우리의 소비가 과연 적절한지 차의 크기 관점에서 고민해볼 필요는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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