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옆 나라 젊은 층의 자동차 결별이 부른 뜻 밖의 성숙함
  • 김준선
  • 좋아요 0
  • 승인 2019.08.28 16:29
[Erin 칼럼] 옆 나라 젊은 층의 자동차 결별이 부른 뜻 밖의 성숙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도에서의 폭주는 우리에게 전혀 낯선 뉴스가 아닙니다. 서킷이 아닌 일반도로에서 고성능차로 속도를 겨루다가 대형사고를 일으킨 소식이 종종 보도됩니다. 또한 폭주와 정반대의 상황도 있습니다. 얼마 전 자동차 동호회원들끼리 어느 터널 안에서 차 여러 대로 길을 막고 기념 촬영한 불법행위가 알려졌습니다. 아무리 통행량 적은 시간대라고 해도 터널 안 도로를 막고 정차한 행위는 위험천만하지요. 폭주든 정차든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로의 암적인 존재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옛날 폭주족에 비하면 약과일지도 모릅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젊은 문화가 꽃피웠던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도 생겨났던 코흘리개 폭주족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공도 폭주의 문제를 심각하게 겪었던 나라가 있습니다. 요즘 여러모로 시끄러운 일본입니다. 이들은 단지 폭주를 즐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쇠파이프와 쇠사슬 같은 각종 무기를 들고 다니며 주변 일반차량들을 위협하거나 파손했습니다. 단순한 젊은이들의 일탈로 치기에는 심각한 폭력범죄가 잇따랐지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에 탔을 뿐, 엄연한 폭력단체였던 겁니다. 80년대 당시 일본의 폭주족은 10대의 젊은이들을 폭력단체 즉, 야쿠자로 인도하는 범죄 창구 역할을 했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경찰은 90년대 초 대대적인 폭주족 말살정책을 시작합니다. 전국 폭주족의 정보를 입수해 그들이 모이는 길목을 급습했고, 달아나는 바이크와 자동차를 붙잡아 세워 전원 연행했습니다. 빠르고 위협적으로 달리는 바이크를 넘어뜨리기 위한 다양한 그물과 에어매트 들도 이 때에 선보였죠. 핵심멤버는 모두 체포했고 면허는 취소되었으며, 압수된 바이크와 자동차는 강제로 경매처리 해버렸습니다. 또한 매 달마다 폭주족 소탕작전 모습을 생중계에 가깝게 방송에 흘려, 이를 통해 전 국민적인 관심과 증오를 유도했습니다. 일상의 길거리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폭주족의 위협에 시달려본 적 있던 터라, 폭주족 소탕작전은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들 뇌리에 폭주 좋아하는 젊은이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이 때만큼 강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이 자동차 좋아하는 문화 자체를 폭주족과 어렴풋이 연관시켜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억지스럽지만, 여론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그렇게 20여 년이 흐른 지금, 일본에 폭주족은 없습니다. 국지적으로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소규모 난폭운전과 소동은 있을지언정 공도에서 폭주를 목적으로 달리는 단체는 씨가 말랐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이 자동차를 좋아하는 문화도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일본은 젊은 층의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무관심 현상이 또 다른 골치거리가 된지 오래됐지요. 면허를 딸 나이가 되어도 자동차에 관심이 없으니 관련산업이 큰 위기를 맞은 상황. 이런 와중에 폭주족 따위가 창궐할 수 없겠죠. 문화적 토대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몇 년 전, 치바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인파 속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친구 두 명을 태운 바이크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곡예운전을 하며 도로를 지나갔습니다. ‘뭐 저런 게 다 있나’는 눈빛으로 바이크를 쳐다보는 젊은이들 사이, 한 아저씨의 발언이 귀에 꽂혔습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 젊을 때나 있었던 폭주족을 오랜만에 보니 뭔가 반갑네”

실제 데이터로도 국민들의 체감상으로도 지금의 일본에 예전과 같은 폭주족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경찰의 대대적이고 집요한 단속 때문이기도 하고, 폭주족에 가담할 만큼 운전을 좋아할 젊은 층이 사라진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때 아시아 최고의 모터스포츠 강국이었던 만큼 일본의 한 구석에는 여전히 흥미로운 자동차 문화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또한 옛날이었다면 튜닝한 스포츠카로 잘못된 폭주에 빠져들었을 젊은이들이 이제는 정해진 법규 안에서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자동차를 즐기고 있지요.

작년 가을 무렵, 드리프트 경기가 열리는 일본 어느 서킷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드리프트계의 살아있는 전설, 츠치야 케이이치 씨가 운영하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드리프트 경기의 최종 우승전이었습니다. 관람객 중 구형 스포츠카를 요란하게 튜닝한 젊은이들 몇몇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터뷰를 시도했죠. 그 내용 중 여러 인터뷰 대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발언을 옮깁니다. 워딩은 달랐지만 정리하자면 이런 내용이었어요.

‘나는 자동차가 좋고 운전할 때가 행복한데, 같은 나이 친구들은 차에 관심이 없다. 자동차나 튜닝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동호회나 이런 대회 관람모임에 나온다. 이런 곳에 나와야만 그나마 자동차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주변 사람들이 차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연비나 친환경 같은 것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스포츠카의 즐거움과 운전의 기쁨 같은 것을 사람들이 더 알아갔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나와 같이 자동차를 좋아하는 소수 마니아들이 자동차에 대해 더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자동차를 즐기는 게 소수이자 사회의 변방이 되어가기 때문에 점점 더 외로운 겁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좋아해 주도록, 자동차인들이 나서서 솔선수범 하자는 것이죠.

고성능차 오너들끼리 공도에서 폭주하거나 자동차 동호회원들끼리 터널을 막고 사진촬영하는 우리나라 일부 자동차인(?)들과 사뭇 비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란하게 튜닝했지만 그래서 더 조심한다는 겁니다. 공도의 일반인들이 자칫 자동차에 나쁜 인상을 갖지 않도록 더 얌전하게 운전하고, 매너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문화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자동차문화는 아직 배부른 것일 지도 모릅니다. 회사든 친목모임이든 한 명 정도는 자동차 이야기 나눌 수 있을 만큼 차 좋아하는 사람이 흔하니까요. 길거리 차에 붙어있는 동호회 스티커를 흔하게 볼 수 있고,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아도 자동차 친목모임 하나쯤은 있으며, 수퍼카가 밀집하는 동네에는 그 차의 사진을 찍으러 오는 어린 친구들도 많을 정도.

그러나 공도 폭주처럼 성숙하지 못한 사건들이 계속된다면 분위기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사회 전반적인 싸늘한 시선과 이로 인한 자동차 이탈현상이 심해진다면, 언젠가는 지금 일본의 카 마니아들처럼 사회의 변방에서 외롭게 자동차를 즐겨야 할 수도 있습니다. 꼭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성숙해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