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지금 현대차에 필요한 것? ‘SUV 이후의 시대’ 준비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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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9 15:57
[Erin 칼럼] 지금 현대차에 필요한 것? ‘SUV 이후의 시대’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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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0년 전이었군요. YF쏘나타가 막 나왔을 무렵 이런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대, 중, 소 크기의 똑 같은 티셔츠 같은 현재의 현대차 라인업으로는 점차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질 것이다. 크기만 다른 세단인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또한 크기만 다른 SUV인 베라크루즈 싼타페 투싼. 이들을 그저 조금씩 업그레이드하며 신형을 위한 신형을 내 놓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 차종’을 개발해야 한다 -

이 글로 인해 현대차에 여러 번 불려갔고 연락도 많이 받았지요.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의견을 묻기 위한 연락이었습니다.

이후 쏘나타와 아반떼 등 세단의 몰락, 그리고 대안으로 성장한 SUV의 인기 상한가는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입니다. 현대차도 그 사이 자동차 개발을 단순한 ‘구형의 신형’이 아닌 ‘신 차종’ 쪽으로 확장했습니다. 베뉴, 코나, 팰리세이드, 벨로스터 모두 원래 현대에 없던 라인업이지요.

그러나 10년 전 얘기했던 첫 문단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저 글의 마무리는 이랬습니다.

- 진정한 의미의 ‘신차종’을 개발해야 한다. 세단도 SUV도 미니밴도 아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그 어떤 차 말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철저하게 분석해야 하고, 그 결과 도출된 값에 따라 ‘0’부터 기획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미래시장 개척용으로도 좋고, 현대차만의 아이덴티티를 얻는 것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신 차종이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차’라고 정의한다면 현대차는 아직까지 한 번도 신 차종을 개발해본 적이 없습니다. 즉, 발명 말입니다. 예컨대 전쟁시 험로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처음 만들었던 지프, 혹은 스즈키에서 만든 최초의 경형 톨보이 박스카 왜건R 같은 차들 말이지요. 작은 차체에 7명을 넉넉하게 태우기 위해 탄생한 최초의 미니밴 크라이슬러 캐러밴이나, 왜건에 스포츠카를 섞어 만든 아우디 RS6 아반트 같은 차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2019년인 지금은 SUV가 인기 절정입니다. 그저 더 좋은 SUV를 더 많이 만들어 팔면 만사 형통할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겁니다. SUV의 인기는 우연히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었고,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건 SUV가 아닐 수 있기에 언제 어떻게 또 변화를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SUV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시대의 소비자가 원하는 조건을 SUV가 세단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을 뿐이죠.

세단보다 실내공간이 넓고, 세단보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으며, 세단보다 강인하고 넉넉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그게 미니밴도 왜건도 아닌 SUV였을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누구나 구매하는 대중적인 차가 세단에서 SUV로 한 차례 변경된 것입니다. 이 말은 즉, 주력 구매차종이 세단에서 SUV로 이동했듯 SUV에서 또 다른 차종으로도 언제든 옮겨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게다가 SUV는 그만큼의 단점도 존재합니다. 높은 차고로 인한 승하차의 불편함과 무거운 차체로 인한 연비 저하는 물론이고, 주행안정성이나 연비 그리고 주행소음 면에서도 불리한 구조입니다. 도시로의 밀집화가 점점 더 진행되는 현대사회에서 SUV를 자동차 구매의 정답이라고 부르기에는 꺼림칙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즉, 소비자가 원하는 조건을 갖추되, SUV가 가진 단점을 줄일 수 있는 ‘SUV이후 시대’의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눈 앞에 보여줄 때, 비로소 내가 원하던 게 그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을 뿐이죠.

지금 현대차가 해야할 일, 개발해야 할 차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현재의 선택지 중에 최선일 뿐이었던 SUV를 타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SUV보다 더 나을 뿐 아니라 그들도 몰랐던 매력적인 ‘신 차종’을 대령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차종의 개발을 위해서는 그 동안 해왔던 업무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나와있는 차종을 리스트업하고, 그 중 참고할 만한 경쟁사 모델을 벤치마킹하던 기존의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자동차가 아닌 소비자를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아침부터 밤까지를 1분 단위로 체크하고,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연구하며, 그렇게 모아진 방대한 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해야 합니다. 자동차 먼저 만들어놓고 유행과 대충 맞는 마케팅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행의 주체인 소비자 생활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의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매우 디테일하게 들어맞는 신 차종을 ‘발명’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와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소비자 스스로도 몰랐던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차를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동차업계는 현재 브랜드의 양극화니, 공유경제니 하는 암울한 이슈들로 인해 큰 소용돌이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뛰어난 제품력과 확고한 브랜드 정체성이 빠질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제품력과 정체성의 근본이 철저한 소비자 연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가 그리 잘 하지 못했던 ‘사람 연구’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두를 장식했던 10년 전 글을 다시 한 번 인용해 끝맺음 하고자 합니다.

- 진정한 의미의 ‘신차종’을 개발해야 한다. 세단도 SUV도 미니밴도 아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그 어떤 차 말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철저하게 분석해야 하고, 그 결과 도출된 값에 따라 ‘0’부터 기획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미래시장 개척용으로도 좋고, 현대차만의 아이덴티티를 얻는 것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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