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그들은 정말 자동차를 공유하고 싶을까?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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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8 14:00
[Erin 칼럼] 그들은 정말 자동차를 공유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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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현대자동차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공개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도 자동차 면허를 따지 않는다면서, 지금의 젊은층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길 바란다고 말이죠.

오너가문의 자제가 예시로 들기에 적절한 표본인지 여부는 차지하더라도, 공유 이야기는 요 근래 자동차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든 자리에 단골메뉴로 등장해 왔습니다. 젊은 층이 갈수록 자동차에 관심이 없다든지, 필요할 때만 단지 공유하길 원한다든지, 그러니까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반적인 사업변화를 꾀해야 한다든지, 이런 내용들 말입니다. 워딩으로만 보면 지금의 젊은층은 값비싸고 프라이빗한 자동차를 불특정 다수와 함께 나눠 타길 바라는, 본능을 역행하는 취향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자동차를 공유하고 싶어할까요?

시계를 30년 전쯤으로 돌려봅시다. 젊은이가 대학을 졸업하면 큰 어려움 없이 취업이 가능했던 시대 말입니다. 월급을 아껴 쓰며 열심히 돈을 모으면, 혼자 힘으로 서울에 집을 사는 것도 그럭저럭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구매한 집값은 올랐고 재산은 더욱 더 늘어났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노후계획도 세워볼 수 있었지요. 즉, 설계해볼 수 있는 인생계획의 길이가 꽤 길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제법 앞날까지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때, 커다란 지출도 가능해집니다. 자동차는 지출 가능한 품목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했으니, 그만큼 빛나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시 2019년으로 돌아옵니다. 취업이 되지 않아 당장 내년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지금의 젊은 층은 시야의 길이가 다릅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높은 연봉의 대기업에 들어간 극소수라고 해도 바라볼 수 있는 인생시야가 그리 길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 출퇴근 가능한 거리에 집을 사기 위해, 혹은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미래를 바라보고 먼 날의 계획까지 세운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 층이 이미 겪고 있는 문제들이니 더 구체적으로 거론할 필요도 없겠네요. 아무쪼록 지금 젊은 층은 예전만큼 인생의 장기플랜을 세울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바라보고 예측해볼 수 있는 인생시야의 길이가 짧아지면 그만큼 삶의 규모도 줄이게 됩니다.

‘소확행’은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탄생한 개념. 어차피 예측 불가능한 멀고 큰 것들은 잊고, 당장 가능하고 눈에 보이는 시야 안에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긴 여행이 아니라 짧은 나들이, 비싼 레스토랑이 아니라 저렴한 맛집, 묵직한 구매가 아니라 가벼운 대여 등.

자동차를 공유하는 쉐어링카 서비스도 현재는 이 지점에 있습니다.

물론 자동차를 공유한다는 것은 무척 편리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빌려 타고 아무 곳에서나 내려도 상관없는 엄청난 편리함은 ‘주차와 보관’이라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젊은 층이 이러한 편리성 때문에 공유자동차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쉐어링카가 서비스된 적 없기 때문입니다. 겪어보지도 못한 편리성에 매료되어 자동차 공유를 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욕망도 지름신도 시야에 닿는 가능한 선 안에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만일 페라리를 사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손 뻗을 수 있는 거리 아슬아슬한 곳에 페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현실적으로 살 수 없어 구매욕구가 없다 해도, 그게 페라리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지요. 즉, 지금의 젊은 층이 근본적으로 자동차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쉐어하우스에 입주하는 것도, 공유오피스에서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 누군들 나만의 널찍한 집을 사고 싶지 않겠으며, 누군들 사옥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까요.

자동차 소유가 인생시야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공유 선에서 만족하려는 것이죠. 대중교통이나 쉐어링카 등 수 많은 대체제로 충분하다는 이성적 결론을 따르면서 말이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원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는 것’일 뿐입니다.

공유경제는 반드시 다가올 트렌드이고 쉐어링카는 우리가 맞이해야 할 미래 중 일부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그것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마인드를 헤아려야 합니다.

‘원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이 미묘한 차이를 대충 얼버무리고 ‘젊은 층은 공유를 좋아한다’는 잘못된 전제 하에 시대를 맞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차이를 제대로 해석하고 깊게 이해할 수 있을 때에, 쉐어링카 시대의 우리나라 자동차산업도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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