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자율주행 쉐어링카의 디자인, 진화에는 퇴화도 뒤따른다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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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25 09:09
[Erin 칼럼] 자율주행 쉐어링카의 디자인, 진화에는 퇴화도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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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4차산업의 물결. 그 거대한 변화 소용돌이 한복판에 자동차산업이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변화의 화두는 인공지능과 공유경제인데 자동차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둘 모두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인공지능기술로 파생되는 자율주행과 공유경제로 인한 쉐어링카.

앞으로 자동차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공공의 공유물이 될 것이고, 우리의 이동환경은 스스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차들 중 하나에 올라타 목적지로 향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찾지 않아도 다가와 주고, 운전하지 않아도 이동시켜주고, 주차하지 않아도 사라져주니, 자동차를 뜨거운 소유물로 대하는 카 마니아적 아쉬움만 빼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미래상이긴 합니다. 기술과 인프라가 인간을 운전과 주차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죠. 그야말로 아무데서나 개인 단위로 탈 수 있는 궁극적 대중교통인 셈입니다.

물론 몇 가지 단계를 밟아가며 변화할 테지요. 여전히 대다수가 차를 소유하고 일부 영역에서 쉐어링카를 쓰는 게 지금이라면, 점점 더 개인소유보다는 쉐어링카의 비율이 올라가는 게 미래일 것입니다. 자율주행 쉐어링카가 모두의 일상이 된다면 그런 시대에는 쓸모 없을 뿐 아니라 관리까지 필요한 개인 차를 소유하는 것이 특별한 취미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그 정도 시대가 되었을 때의 자동차 디자인입니다. 아마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 하니, 우리 생전에 겪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어도 과거 반 세기 정도 동안에 자동차는 늘 멋있어져 왔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의 차가 더 유려하고 자극적이고 멋지게 빛났지요. 그랬던 이유는 차가 곧 소유자를 나타내는 일종의 표현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스타일을 나타내든, 직업을 나타내든, 부의 정도를 나타내든, 개인 소유물인 자동차는 필연적으로 오너가 어떤 사람인지 정보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것이 외관이기 때문에 디자인, 그 중에서도 스타일링은 자동차 개발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다른 차와 선 하나라도 달라야 하고, 아주 조금이라도 더 멋있어야 했던 이유지요.

그러나 자율주행 쉐어링카 시대에는 자동차에 ‘멋’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과거의 촌스러운 개념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대중교통과 같은 차에 기능과 상관 없는 유려함이나 화려함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고, 더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더 오래 쓸 수 있는 디자인 연구에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디자인 개념을 ‘유니버셜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미래의 디자인을 미리 보는 컨셉트카 세계에서는 이미 이런 디자인이 대세입니다. 용적 효율이 가장 좋은 네모난 차체,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는 커다란 정보창, 자율주행으로 인한 사고감소를 감안해 충격 존을 없애고 유리로 뒤덮은 캐빈 등. 멋과 화려함 보다는 도구로서의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뭉친 컨셉트카들이 무대의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진지하게 말할까요?

미래를 내다보고 냉철하게 디자인한 자율주행 유니버셜 디자인의 이동수단들은 경제계와 투자가들의 주목을 받는 반면, 찬란한 선으로 뜨겁게 멋 부린 스포츠카는 이제 자동차매체에서나 반겨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자동차 스타일링 패러다임은 일정부분 한계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근본적인 기반의 변화는 없고, 똑 같은 포멧 안에서 너무 오래도록 모두가 똑같은 방향의 멋을 추구해 왔기 때문입니다.

타사보다 조금 더 유려한 선을 찾아내기 위해 그림 그리는 것이, 조금 더 날카로운 선을 뽑아내기 위해 클레이를 깎는 것이, 좀 더 섹시한 근육질을 만들기 위해 3D 표면을 다듬는 것이, 과연 그렇게까지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1mm의 차이로 좀 더 나은 멋을 추구하던 지금의 사소함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더 멋진 차’에 대한 수요가 있기에 괜찮지만 자율주행 쉐어링카가 일상이 되는 유니버셜 디자인의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세기 전 영혼을 불어넣어 수작업으로 만들었던 풍만한 곡선들의 자동차 디자인은, 이윽고 프레스 기계로 인한 대량생산체제에 접어들게 되며 천편일률적 네모반듯한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진화 소용돌이가 끝난 후에도, 멋에 대해 추구했던 낭만적 디자인의 시대가 사라지고 합리적인 자율주행 쉐어링카만이 남을지 모릅니다. 진화에는 퇴화도 뒤따르는 법이니까요.

다만, 천편일률적 네모반듯한 디자인에서도 새로운 자동차디자인시대를 꽃피웠듯, 합리적인 자율주행 쉐어링카 세상에서도 너무 삭막해지지 않기를, 무언가를 찾아 나서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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