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기아차 텔루라이드…팰리세이드와 어떤 점이 다른가
  • 미국 캘리포니아=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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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30 14:27
[시승기] 기아차 텔루라이드…팰리세이드와 어떤 점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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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루라이드는 SUV와 트럭의 천국인 미국을 위해 개발됐다. 개발초기부터 철저하게 미국인의 취향에 맞췄다. 텔루라이드에 대한 단서가 담긴 콘셉트카가 처음 공개된 곳도 미국이었다. 그래서 한국에는 판매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는 사이 현대차 팰리세이드가 대박을 쳤다.

경차를 제외하면, 현대차는 기아차보다 더 많은 차종을 선보이고 있다. 벨로스터, i40, 지금은 단종됐지만 아슬란이나 맥스크루즈 등 언제나 현대차의 라인업이 더 촘촘하고 다양하다. 다만 틈새는 틈새였을 뿐, 그들은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기아차가 굳이 부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팰리세이드도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갑자기 대형 SUV 세그먼트가 활성화됐다. 기아차는 모바히의 생명연장 계획을 발표했다. 늙은 모하비를 아무리 최신 디자인으로 버무린다고 한들, 시종일관 부드럽고 때론 탄탄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 달리는 모노코크 SUV의 ‘요즘 감각’을 따라오긴 무리다. 그리고 소비자들도 전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차를 원한다. 그래서 기아차는 텔루라이드가 골치다.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것은 넌센스고, 국내에서 생산하자니 해결할 문제가 많다. 어쨌든 디자인만 조금 바꾼 모하비는 가을 쯤 출시될 것이고, 텔루라이드의 출시 여부는 그후에 더 확실해지겠다.

미국에서 텔루라이드를 직접 몰아보니, 이런 상황이 더 안타깝다. 왜 미국만을 생각했을까. 한국에서 팰리세이드와 맞붙어도 충분히 경쟁력을 내세울 부분이 많았다. 여러가지를 공유하지만 텔루라이드는 그만의 멋과 분위기가 있었다.

현대차는 진취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기아차는 이와 정반대로 큰 거부감 없이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차를 만들고 있다. 최대한 낯설지 않게 만들면서, 기아차만의 포인트로 멋을 낸다. 텔루라이드는 그래서 꽤 익숙한 면도 있다. 곳곳에서 모하비, 쏘렌토 등이 떠오르기도 한다. 박시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지만, 끝단을 전부 부드럽게 매만졌고 텔루라이드에게만 있는 포인트를 만들었다.

구획은 모눈종이처럼 명확하지만, 각 부분에 들어간 요소는 평범하지 않았다. 길게 옆으로 누운 라디에이터 그릴에는 벌집 무늬가 촘촘하게 들어섰고, 그릴의 위와 아랫부분만 테두리로 처리하면서 그릴이 날씬하고 더 길게 차체를 가로지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릴과 주먹 하나만큼의 공간을 두고 헤드램프가 놓였다. 콘셉트카와 가장 다른 부분이고, 텔루라이드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적용된 부분이기도 하다.

LED 주간주행등은 헤드램프를 감싸고 있다. 꼭지점을 둥글린 사각형 모양이다. 심지어 오렌지색이다. 방향지시등을 켜면 그대로 점멸한다. 우리나라보다 램프 색상에 대한 자유도가 높은 미국에서도 사각형 오렌지색의 주간주행등은 확연히 튄다. 물론, 백색으로 들어오는 모델도 있다. 테일램프도 길게 늘어져 있고, 방향지시등은 붉게 들어온다.

텔루라이드는 팰리세이드와 플랫폼, 파워트레인 등을 공유한다. 수치 상으로는 텔루라이드가 조금 더 크다. 실제로도 텔루라이드가 더 거대하고 굵직해 보인다. 한 덩어리란 느낌도 강하다. 멋을 낸 B필러의 사이드 윈도우 라인도 매력적이고, 잘 녹아들었다. 억지스럽지 않다. 자칫 심심하게 보일 수 있는 거대한 보닛이나 문짝도 엠블럼과 단순한 선으로 입체화했다. 웅장하고, 묵직한 느낌을 곳곳에서 잘 살렸다.

실내공간의 구성이나 넉넉함은 팰리세이드와 같다. 현대·기아차의 공간 창출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텔루라이드와 팰리세이드 모두 전륜구동 플랫폼을 기반하기 때문에 낭비되는 공간도 적다. 3열 시트를 세워도 골프백 두개 정도는 가로로 쉽게 쌓을 수 있다. 탑승객이 서로서로 양보하면, 3열까지 모두 편안하게 장거리를 갈 수 있을 것 같다. 3열 시트를 접으면 이삿짐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나온다. 미국에는 텔루라이드를 귀엽게 만드는 풀사이즈 SUV가 많지만 실내 공간은 텔루라이드가 그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텔루라이드와 팰리세이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테리어 디자인과 소재다. 팰리세이드는 전자식 기어 버튼을 쓰면서 인테리어 레이아웃을 완전히 새롭게 꾸몄다면 텔루라이드는 기존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텔루라이드의 성격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은 있다. 센터 콘솔 양옆에 마련된 손잡이는 주로 오프로더에서 볼 수 있었던 것. 이런 세부적인 디자인과 각진 외모를 통해 기아차는 정통 SUV의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인테리어 레이아웃은 K9과 흡사하다. 수평적인 디자인을 통해 넓고 시원스럽게 보인다. 다만 소재는 평범하거나 기대에 못 미친다. 나뭇결을 흉내낸 트림은 플라스틱 이상의 가치를 주지 못했다. 시트를 제외하면 크게 고급스러운 부분도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거주성을 높여주는 편의장비는 충분했다.

텔루라이드에는 한개의 파워트레인만 탑재됐다. 일단 디젤은 없다. 3.8리터 V6 자연흡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됐다. 텔루라이드는 쏘렌토, 팰리세이드와 마찬가지로 전륜구동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됐고, 옵션으로 사륜구동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다. 텔루라이드를 위해 특별히 손을 댄 흔적도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주행감각도 비슷했다.

엔진의 반응은 규칙적이었다. 회전은 부드러웠고, 출력도 넉넉했다. 회전수가 높아지면 역동적인 반응도 보였다. 엔진의 사운드도 조금 다듬어 놓은 것 같았다. 회전수가 높아질수록 고조되는 느낌이 스팅어만큼이나 격정적이었다. 변속기의 특징적인 느낌은 없었다. 기아차의 여느 8단 변속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자연흡기 엔진과 궁합이 좋았고, 스포츠 모드에서 회전수를 높이며 달리 땐 적극적으로 힘을 뽑아준다는 느낌도 들었다.

팰리세이드와 달리 텔루라이드는 C-MDPS가 적용됐지만, 스티어링에 대한 어색함은 없었다. 5m에 달하는 덩치가 잽싸게 움직였다. 캘리포니아의 와인딩 성지 중 하나인 앤젤레스 포레스트를 거침없이 달렸다. 긴 차체와 휠베이스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적절한 사륜구동 시스템의 개입과 토크 벡터링을 통해 예쁜 궤적을 그리며 코너를 돌았다. 이제는 국산차의 기본기는 단시간에 흠잡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졌다.

텔루라이드는 미국 판매 가격은 약 3670만원부터 시작된다. 포드 익스플로러보단 저렴하지만, 혼다 파일럿, 닛산 패스파인더에 비해 조금 비싸다. 다소 도발적인 가격 책정이지만, 후발주자인 만큼 텔루라이드가 지닌 상품성이 경쟁 모델보다 앞선다. 미국에서의 반응은 뜨겁다. 지난달 미국에서 5천대 이상이 판매됐다. 아직 국내 출시에 대해 확실히 정해진 바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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