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디자인 방향성이 극적으로 바뀐 자동차들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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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28 11:22
[Erin 칼럼] 디자인 방향성이 극적으로 바뀐 자동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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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의 방향성은 낯설고 도전적인 디자인과 익숙하고 안정적인 디자인 사이에서 오갑니다. 편의상 전자를 진보적인 디자인, 후자를 보수적인 디자인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성이 있는 것입니다.

진보적인 디자인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비율과 모양으로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낯설 수 있고, 보수적인 디자인은 익숙하고 안정적인 형상이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있죠.

그런데, 똑같은 회사의 한 가지 모델에서도 구형과 신형에서 디자인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형이 나올 때마다 중간영역을 건너 뛰고 양 끝을 오갈 정도로 디자인 방향성이 바뀐 경우입니다. 자동차가 개발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의 분위기, 최고디자이너의 취향과 회사의 정치적 여건 등에 따라 진보적인 디자인과 보수적인 디자인 사이를 오갈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성장과 도전을 이어가야 할 브랜드는 디자인에서도 진보적인 적극성이 드러나고, 이미 다져놓은 위치를 지켜야 하는 제조사의 경우 디자인 또한 돌다리 두드리는 보수적 심정으로 안정적이고 얌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쏘나타를 예로 들어보죠.

그 이전 세대에도 나름의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쏘나타 중 디자인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던 모델은 1998년 출시된 EF쏘나타인 것 같습니다. 풍부한 곡면과, 생겼다가 사라지는 엣지 등 그 전까지 보지 못한 형상을 아름다운 철판가공으로 실현했던 꽤나 모험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EF의 실험적인 디자인은 후기형으로도 이어져서 당시 C-클래스 표절이라 불렸던 표주박형 헤드램프는 지금 보아도 이질적이고 낯섭니다.

그러나 쏘나타의 실험적이고 도전정신 가득한 디자인은 다음 세대에서 완전히 깨집니다.

NF 쏘나타가 지극히 안정적이고 익숙한 모양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헤드램프 테일램프, 각종 에어인테이크와 전체적인 조형, 하다못해 라인 하나까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모양들이 가득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디자인이죠.

너무나도 상식적이어서 비슷한 형상의 차들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독일의 어떤 차와, 또 다르게 보면 일본의 어떤 차와 닮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표절시비가 가장 많이 일었던 모델이기도 하죠. 예상컨대 현대는 NF시절을 거치며 ‘표절’관련 이야기에 진절머리가 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후기형을 거친 후 풀모델 체인지 모델에서 상당한 파격을 감행했으니까요.

YF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금까지도 쏘나타 역사상 가장 모험적이고 진보적이며 낯선 디자인으로 거론되는 모델이죠. 생김새가 너무 이질적이라 삼엽충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판매성적이 뛰어났던 것을 보면 성공적인 디자인이기도 합니다. 그 이전까지 회사의 핵심 패밀리세단을 이렇게 파격적으로 디자인해서 성공한 사례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YF쏘나타의 성공으로 세계의 다양한 패밀리세단들이 좀 더 강한 생김새를 추구하기 시작했죠. 실로 이 차가 자동차 디자인업계에 미친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러나 YF가 이미 너무 극단적이어서 였을까요? 현대는 YF와 같은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더 나아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LF쏘나타에서는 또 다시 지극히 상식적이고 얌전한 디자인으로 돌아왔습니다. YF때 그토록 자극적인 디자인으로도 성공적인 판매대수를 뽑아냈으니, 더 무난하고 안정적인 생김새의 LF는 더 많은 고객층을 확보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LF는 현대 중형차 역사상 처음으로 상승세가 완전히 꺾이고 하강국면으로 접어든 모델입니다. 그랜저는 물론 싼타페에도 오랜기간 추월당했지요. 물론 패밀리카가 중형세단에서 SUV로 옮겨가는 시대 탓이기도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그런 현상을 더욱 앞당겨버린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택시모델 판매대수마저 제외하면 더욱 초라해지지요.

이로서 예상컨대, 아마도 쏘나타의 다음 풀체인지모델은 좀 더 강한 개성과 색깔을 집어 넣어 다시 한 번 도전적인 디자인으로 출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자인 방향성이 급변한 사례는 해외에도 많습니다.

프리우스는 최초의 대량생산 하이브리드카입니다. 1세대는 뭔가 미래적인 느낌을 풍기기 위해 다소 어색한 비율이 이질적입니다만 2세대부터는 매우 얌전하고 착한 이미지의 익숙한 디자인입니다.

공기저항을 낮추기 위한 굴곡 없는 실루엣이 다소 신선해 보이기도 하지만 2~3세대 프리우스는 지극히 무난한 생김새가 특징입니다. 이 차는 ‘하이브리드의 대표모델’ ‘최고의 연비’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어, 굳이 디자인까지 강하게 주장할 필요가 없었지요. 불특정 다수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만한 무난한 디자인을 추구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유일무이한 위치가 오래가는 법은 없습니다. 세상에 하이브리드가 흔해지고, 이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자 프리우스 또한 단순히 ‘하이브리드카 대명사’라는 타이틀 만으로는 어필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 외에 다른 특징이 필요해진 것이죠.

토요타는 그것을 디자인으로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4세대 프리우스는 지금 시대에 할 수 있는 가장 튀는 디자인이라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튀는 것이 과해, 생김새에 저항감이 있었나 봅니다.

미국에서 연간 20만대 이상 팔렸던 전 세대 프리우스와 달리 괴상한 생김새의 신형 판매대수는 전 모댈 대비 절반 수준인 10만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디자인 탓 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 세대와의 가장 큰 변화는 디자인이었기에 토요타는 이것을 손봐야만 했죠. 또한 신형에 대한 시장조사에서 미국 중년~노년층이 이 차의 디자인에 매우 부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오며 디자인 대폭수정의 필요성은 더욱 확실해 졌습니다.

그렇게 4세대 프리우스 후기모델이 나왔습니다. 역대 프리우스 중 마이너체인지에서 가장 크게 바뀐 사례로 기록될 만큼 디자인을 바꿨습니다. 마이너체인지를 통해 모난 부분을 모두 잘라내어 버렸지요. 풀모델체인지가 아니기 때문에 변화에 한계는 있지만 전 모델에서 과했던 부분들을 삭제하고 다소(?) 평범한 영역에 들어온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디자인의 극적인 변화는 고급 브랜드의 역사 깊은 모델에서도 나타납니다.

7시리즈는 BMW 안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비율로만 디자인되는 플래그십 모델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이 황금비율 만으로 이뤄진 것처럼 균형 잡히고 침착한 모습이죠. 그러나 마치 로봇이 줄 대고 디자인한 듯한 7시리즈의 외관은 크리스뱅글에 의해 ‘0’부터 재구성되고 맙니다.

2002년 출시한 4세대 7시리즈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전통적인 BMW의 팬들은 BMW만의 중후하면서도 날렵한 모습이 사라졌다며 불만 가득했죠. 그러나 중동과 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젊은 부자들에게는 큰 인기를 끌어 결과적으로 BMW 판매의 지경을 넓힌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 모델부터 BMW의 세계판매대수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회사의 좀 더 사소한 사례로는 현행 1시리즈가 있습니다. 2011년 발매된 2세대 1시리즈는 BMW의 막내모델답게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출시됐습니다. 골목대장 같은 당돌한 얼굴과 야무진 엉덩이는 귀여움과 당당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BMW에 불어 닥친 디자인 보수화 바람은 야무졌던 1시리즈의 모습을 평범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살짝 다듬어 BMW의 더 큰 모델들과의 패밀리룩을 강화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1시리즈만의 개성있던 모습이 조금 희석되었습니다. 하지만 1시리즈의 ‘개성’을 ‘불편’하게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개성이 줄고 익숙한 얼굴이 된 후기형 1시리즈 디자인을 더 좋아하니 어느쪽이 낫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자동차 회사들의 디자인 방향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오락가락 합니다. 개성을 뽐냈다가 무난해졌다가, 도전적이었다가 다시 보수화되기도 하죠. 결론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팔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판매량과 상관 없이 그 회사만의 강한 개성과 디자이너의 욕심을 더 많이 담아낸 차가 역사적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2019년 자동차 디자인계에는 어떤 바람이 불까요? 올해 이랬던 차가 내년에는 어떻게 바뀔까요?

바뀌어나갈 자동차 디자인을 기대하며,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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