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손가락 하나로 자동차 사진을 완성하는 시대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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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25 19:03
[Erin 칼럼] 손가락 하나로 자동차 사진을 완성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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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현대자동차그룹과, 기아자동차 공식 SNS에 이런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3세대 쏘울의 티저이미지였죠.

SNS계정에도 적혀있듯 ‘쪼금만 봐도’ 벌써 예쁩니다. 언뜻 보기에 뭔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가 나지요. 그래서 더 예뻐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차체의 그 어떤 곳에도 파팅라인이 없는 것이죠. 파팅라인이란 부품과 부품 사이의 이음새를 뜻합니다. 자동차의 경우 범퍼와 보닛, 펜더 사이사이에 파팅라인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위 사진처럼 파팅라인이 없을 경우, 엔진룸에 접근하기 위해서 앞바퀴 펜더 부근까지 차체를 통째로 드러내야 합니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구조죠.

그러니 현대차그룹 공식SNS계정에 올라온 위의 사진은 실제 3세대 쏘울의 모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같은 계정에 올라온 다른 사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 이미지에는 주간등 위에 보닛과 범퍼 사이 이음새인 파팅라인이 굵게 지나갑니다. 하지만 오른쪽 이미지에는 파팅라인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간등도 좌/우를 구분지어주는 파팅라인 없이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쭉 한 덩어리로 이어지고 있지요. 양산차를 저렇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양산차에는 필수불가결한 파팅라인이 여기저기 지나가는 것이고, 이걸 지우는 것 만으로도 평범한 차를 미래지향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헤시테그에도 컨셉트카가 아닌 #신형_쏘울 #티저이미지 혹은 #렌더링 이라고 적혀 있으니 분명 3세대 쏘울 양산형의 미리보기 사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산형 모델과 생김새가 다른 사진이 올라간 것입니다. 티저란 출시 전 호기심 자극을 위한 미리보기 사진이기 때문에 잘 안 보이도록 (예컨대 어둡게) 처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안 보이게 처리한 것’과, ‘실제와 다르게 처리한 것’은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있어야 할 파팅라인을 없앴다면 디자인을 수정한 것이고, 이건 거짓말에 해당하니까요.

사소하지만 중대한 쏘울 티저이미지의 오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만,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 아닙니다. 저렇게 실차 이미지를 마음껏 변경하고 편집할 수 있는 3D 렌더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자동차는 깔끔하게 촬영하기 매우 어려운 제품입니다. 차체 표면이 빛을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차체에 주변 경치가 비춰지기 때문에 사방이 막힌 자동차 전용 스튜디오에서 찍어야 하고,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조명을 쓰기도 무척 까다롭습니다.

옆면이 잘 나오도록 조명을 치면 앞 면이 이상하게 나오고, 앞면이 아름답도록 반사판을 대면 옆면이 어두워지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완벽한 사진을 ‘한 방’에 찍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앞, 옆, 위, 각각을 가장 이상적인 조명으로 세팅해 제각각 촬영한 뒤 모두를 합성해서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해 냅니다.

대학생 시절, 자동차 카탈로그 촬영 보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 카탈로그는 그 차가 출시되기 전에 미리 찍어놓지요. 세상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차를 먼저 본다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만,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내구력이 필요한 아주 힘든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위에 언급한 ‘자동차촬영의 까다로움’ 때문입니다. 단 한 장의 사진을 완성하기 위해 적게는 반나절에서 많게는 며칠이 소요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며칠씩 밤낮없이 작업해 겨우 한 장을 완성해 놓으면, 자동차 회사 담당자에게 부랴부랴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 차의 그릴 색깔이 생산과정에서 변경됐어요! 수정해서 만든 차 다시 보내드릴게요!”

신차는 정말이지 시판 직전까지 사양이 계속 조정됩니다. 그러니 시판 2~3달 전부터 촬영하고 있는 카탈로그 제작팀은 차가 수정될 때마다 다시 찍고 또 다시 찍어야 하지요.

얼마 후, 색깔 바뀐 그릴이 적용된 ‘수정된 버전의 차’가 (물론 커버로 꽁꽁 숨겨서) 트럭에 실려 스튜디오로 배달됩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 촬영한 것들 중, 그릴이 찍혀있던 사진은 모두 폐기해야 합니다. 새로 온 차로 다시 찍어야 하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운전석 등 인테리어 촬영 시에는 배송 온 차의 필러와 지붕을 직접 뜯어내야 합니다. 이제 막 생산되어 배달된, 출시되지도 않은 신차의 천장을 전동드릴로 잘라내고, 벗겨내고, 튀어나온 각종 전선과 배관을 처리한 후, 실내촬영에 돌입하지요. 스튜디오 한 구석에는 여기저기 잘려진 차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실내 곳곳의 촬영을 마치면 또다시 자동차 회사 담당자에게 전화가 옵니다.

“그 차의 시트 색상이 변경됐어요! 수정해서 만든 차 다시 보내드릴게요!”

이렇듯 자동차를 카탈로그수준의 고품질로 촬영한다는 것은 정말로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촬영 알바생 중, 야반도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자동차 사진을 완성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 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대학교 졸업 후 들어간 자동차 디자인회사에서 자동차 사진을 만드는 전혀 다른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렌더링 프로그램 KeyShot으로 렌더링한 이미지

몇 십 명이 몇 달 동안 달라붙어 완성해야 했던 카탈로그 수준의 자동차 이미지를 단 한 사람이 PC 앞에 앉아 뚝딱 완성하는 것이었죠. 바로 3D 렌더링 프로그램으로 말입니다. 이미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의 일인데도, 그 결과물이 실사인지 렌더링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품평회의 상당수는 3D 이미지로 진행했었고, 소비자가 직접 보는 카탈로그 사진에도 렌더링 이미지를 도입하기 시작했던 때였습니다.

ALIAS 작업 모습

모든 자동차는 3D 프로그램으로 설계됩니다. 표면을 정교하게 다듬는 ALIAS 같은 프로그램부터, 그 내부의 구조물을 설계하는 CATIA같은 프로그램까지 여러 종류를 사용하지요. 이렇게 완성된 3D파일은 기본적으로 디자인 개발과 생산을 위한 것이지만, 이것을 약간 가공해서 렌더링 프로그램에 집어넣으면 실사와 같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렌더링 프로그램 KeyShot으로 렌더링한 이미지

그 렌더링 프로그램은 자동차의 3D파일과, 입체화된 배경 이미지로 구성됩니다. 3차원 공간에 자동차의 3D파일을 올려놓고, 입체화된 배경을 추가한 후에 각종 세부사항을 설정합니다. 자동차의 색깔, 차체 표면과 도장의 종류, 광택(클리어층)의 정도, 태양 혹은 달의 위치, 날씨 등을 세팅하고 렌더링 버튼을 누르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사진이 완성됩니다.

입체화된 배경은 요즘 우리에게도 익숙한 360도 VR을 뜻합니다. 일반인들은 요사이 접하고 있는 VR 파일이 렌더링 업계에서는 십여 년쯤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지요. 그 VR 배경 또한 당시에 이미 전세계 웬만한 도시와 유명스팟의 파일을 전문업체가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렌더링 프로그램 KeyShot 작업 모습

촬영팀 수십 명이 몇 달 동안 촬영하는 것에 비해, 3D 렌더링의 이점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한 명이 PC앞에 앉아 전세계 원하는 배경 어디든 마음껏 바꿔가며 사진 한 장을 순식간에 뽑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양산직전까지 바뀌는 각종 사양도 실제 자동차를 다시 만들 필요 없이 3D파일만 수정한 후 다시 렌더링하면 쉽게 해결 되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3D 렌더링의 퀄리티가 실사와 구분할 수 없을 수준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자동차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은 사라지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디자이너를 관두고 자동차잡지 에디터가 되었을 때에도 더위나 추위와 싸워가며 자동차를 찍을 때마다 ‘이 차의 3D파일과 렌더링 프로그램만 있으면 이런 고생 하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자동차 포토그래퍼가 사라지지는 않았으니 결론적으로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보고 계신 자동차 이미지 중 상당수는 이제 실제가 아닌 렌더링 이미지일 만큼 이것이 흔하게 쓰이는 시대가 된 것이죠. 자동차 사진들이 더 극적이고 멋있어진 것도 렌더링 기술의 발달 덕분일 겁니다. 자동차의 디자인이 더 화려해진 만큼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도 더욱 찬란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신형 쏘울 티저 렌더링의 파팅라인은 누가 없앤 것일까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의문점은 미스터리로 남겨두고 오늘의 칼럼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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