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독일 3사 전기차로 살펴본 이들의 EV 디자인 방향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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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8 09:53
[Erin 칼럼] 독일 3사 전기차로 살펴본 이들의 EV 디자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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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의 애마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우디’ 하면 뭔가 전자적이고 디지털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느낌으로만 보면 전기차와 무척 잘 어울리는 브랜드죠. 그러나 의외로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시판한 적이 없습니다. 불과 몇 주 전, 독일 프리미엄 3사 중 가장 늦게 전기차시장에 뛰어들었지요. 바로 이 차로 말입니다.

지난 9월17일 아우디 최초의 대중 판매용 전기차 e-tron이 공개됐습니다. 시속 100km 도달시간 5.5초는 전기차로서 그리 놀라운 성능이 아니고, 최대 주행거리 400km도 요즘 나오는 전기차들과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스펙에서 뾰족한 특징이 없다는 것은, 숫자가 아닌 자동차 자체로서의 완성도를 보라는 뜻이죠. 경쟁사보다 전기차시장에 늦게 뛰어든 만큼 (타보지 않았기에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들만의 어떤 무기를 더 숙성시켜 출시했을 듯 합니다.

그러나 도드라지지 않는 것은 숫자뿐만이 아닙니다. 디자인 또한 새롭거나 낯설지 않지요. 동력계통이 엔진차와 송두리째 다른 전기차 치고는 상당히 기존 엔진차 같은(?) 외형으로 출시됐습니다. 저 안에 디젤 기름통과 TDI 엔진이 들어있다고 해도 믿었을,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그냥 Q5 신형으로 출시했어도 그러려니 했을 디자인입니다.

물론 전기차임을 암시하는 몇 가지 데코레이션은 있습니다. 사이드 스커트 상단과 후면 범퍼, 휠 등에 새겨진 다수의 은색 가로라인은 IC 회로도 같은 느낌을 내서, 이 차는 전기 먹는다는 힌트를 줍니다. 어떤 힌트를 주기 위한 그리 깊은 방법은 아닙니다만, 그만큼 전기차다움을 심도 있게 내세울 의도가 애초에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기차다움을 굳이 내세우지 않은 전기차는 독일3사 중 하나가 더 있습니다. e-tron보다 조금 앞서 출시한 벤츠의 EQC입니다.

전장에서 차지하는 보닛과 캐빈의 비율, 휠베이스의 비율, 전폭 대비 전고 등, 모든 밸런스가 기존 엔진차의 것을 그대로 따르지요. e-tron이 신형 Q5로 나왔어도 그랬을 것처럼, EQC 또한 신형 GLC로 나왔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입니다. EQC는 심지어 e-tron에서 ‘시늉’이라도 했던 전기차다운 데코레이션마저 거의 없습니다. 사전정보 없이 생김새만 봐서는 전기차라는 걸 알아채기 힘들 정도지요.

계속 데코레이션 이야기를 하니, 혹여 전기차다운 디자인은 데코레이션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오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결코 아닙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디자인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작동하기 위한 부품 등 내부요소를 가장 이상적으로 배치/설계한 후, 그것에 외장을 씌워 디자인하는 방법입니다. 하늘을 날기 위해 구성요소를 설계하고 배치한 후 완성된 몸통을 보니,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디자인이 된 비행기가 좋은 사례겠지요.

둘째로는 이미 존재하는 몸통에 내부 부품을 배치하고 설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빌더들이 마차에서 쓰던 차체를 가져와 엔진과 기름통 붙여 만든 자동차가 이런 방법으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기차라는 새로운 존재도 위의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부 부품의 최적화 위에 스타일을 더할 것이냐, 기존 스타일에 내부 부품을 맞출 것이냐.

앞선 아우디와 벤츠의 두 전기차는 후자의 방법으로 디자인됐습니다. 기존 엔진차에서 쓰던 뼈대와 구조에 전기차 부품을 넣어서 만들었지요. 물론 e-tron의 MQB 플랫폼처럼 요즘 자동차에 쓰이는 뼈대는 처음부터 전기차도 고려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전기차’도’ 고려한 설계와, 전기차’만’ 고려한 설계는 다를 수 밖에 없지요. e-tron과 EQC는 엔진차에서 쓰던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었기에 각종 비율과 프로포션이 기존 엔진차의 그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엔진차처럼 생겼죠.

반면, ‘0’부터 전기차 전용설계로 태어난 BMW i3는 누가 봐도 기존 자동차와 많이 다릅니다. 심지어 이 글에서 언급한 3대의 전기차 중 홀로 4년이나 먼저 등장했는데도 여전히 가장 낯선 생김새입니다. 극단적으로 짧은 프론트 보닛과, 전장대비 껑충한 전고, 직경이 매우 크면서 폭은 아주 얇은 타이어 등, 보이는 모든 곳의 모양이 기존 엔진차와 많이 다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엔진차와 똑같은 기본형상 위에 데코레이션으로 차별을 둔 e-tron과 달리, i3는 기본형상부터 엔진차와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보는 즉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죠.

엔진보다 작은 모터의 이점을 살려 차체 대부분을 실내공간에 할애했기에, 여기서부터 디자인 비율이 엔진차와 달라졌습니다. 또한 배터리 위에 높은 실내공간을 얹어 차체가 껑충하지만, 가장 무거운 부품이 정중앙 바닥에 깔려있어 무게중심은 상당히 낮습니다. 무거운 배터리무게를 상쇄하기 위해 차의 대부분을 알루미늄과 카본으로 만들어, 문을 여닫을 때마다 철판이 아닌 카본 물결이 보입니다. 이렇듯 전기차의 부품이 가진 이점을 철저하게 살리고 단점을 철저하게 줄인 후, 거기에 껍데기를 입힌 방식으로 디자인된 것이 i3입니다.

그러니까 내부 부품의 최적화 위에 스타일을 더한 방식이 i3라면, 기존 스타일에 내부 부품을 맞춘 방식이 e-tron과 EQC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이렇게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영역도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왜 벤츠와 아우디는 전기차를 엔진차에 가깝게 만들었고, 왜 BMW는 기존 엔진차와 할 수 있는 한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이것이 오늘의 포인트입니다.

i3가 나왔던 2014년은 본격적인 전기차 시판의 극 초기였습니다. 아니 극 초기보다도 빠른, ‘시기상조시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네요. 아무도 전기차를 몰랐고, 그걸 일반인이 산다는 건 더더욱 생각조차 못했을 시기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장이 생길까 말까 한 ‘시기상조시기’에 소비를 이끄는 건 언제나 얼리어답터들입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신기한 물건을 남들보다 먼저 구매하기 좋아하는 성향이죠.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자극적이어야 합니다. 기존에 없었고, 새롭고, 이질적이고, 낯선 물건이어야 하죠. 디자인도 다르고, 성능도 다르고, 운전방법도 달라야 했습니다.

또한 세상에 없던 전기차를 팔려면, 이 차가 가진 모든 장점을 최대한 내세워야 합니다. 기존 엔진차보다 조용하고 강력하며, 그러면서도 기계장비에 필요한 공간이 작아 차 크기의 대부분을 실내공간으로 채울 수 있으며, 무게중심이 낮으며… 등등의 어필포인트를 모두 끌어와 구매할 이유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줘야 합니다.

i3는 이런 관점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전기차로만 가능한 만듦새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한 더 많이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18년이 되자, 전기차가 좀 더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종류도 늘어났습니다. 일반인이 엄두도 못 냈던 4년 전과 달리, 이제는 누구나 ‘전기차 한 번 사볼까?’라고 생각은 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또한 강하고 조용하고 저렴한 전기차의 이점도 많은 사람들이 이제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를 팔아야 할 대상은 ‘시기상조시기’에 노렸던 얼리어답터 성향의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더 크고 일반적인 시장을 노려야 하지요. 즉, 기존에 엔진차를 타던 일반 사람들에게 전기차로 갈아타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질감을 줄여야 합니다. 큰 모험 하지 않아도 전기차를 탈 수 있다고 어필해야 합니다. 지금 타던 차에서 그대로 넘어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 말해야 합니다. 만약 엔진차 시절 브랜드 인지도까지 좋았다면,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끌고 와야 합니다. 전기차의 장점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과도한 장점어필로의 집중 보다는 단점을 줄이고 브랜드를 어필하는 등 리스크가 적은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더 큰 불특정다수 대중시장을 노릴 때의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한 자동차처럼 보이도록, 벤츠는 기존 벤츠처럼 보이도록, 아우디는 기존 아우디처럼 보이도록, EQC와 e-tron을 디자인했습니다. 그 속은 엔진차와 전혀 다르지만, 그 겉은 전형적인 기존 차의 모습을 취한 것이죠. 엔진차를 버리고 EQC와 e-tron으로 넘어와도, 익숙해지기까지의 노력이 거의 들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엔진차를 타던 일반 사람들에게 손짓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e-tron과 EQC는 전용설계한 i3보다 적은 개발비로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경영학적으로 보면 벤츠와 아우디의 행보가 더 이치에 맞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상황이 넉넉한 벤츠와 아우디 같은 회사들이 BMW i시리즈가 그랬듯 전기차로 큰 모험을 걸어주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자동차를 세상에 내보내주길 바랐지만 말입니다..

자동차 디자이너 지망생이었던 학창시절. 근본 부품부터 다른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자동차의 스타일링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거라 배웠습니다. 모두가 전기차에 최적화된 구성과 설계를 찾아 나서면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들이 줄줄 나올 것이라 예측했던 것이죠.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좀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전기차만의 새로운 디자인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또 한쪽에서는 기존 엔진차 구성을 그대로 이어가는 ‘엔진차 같은 전기차’가 시장을 선도할 것 같으니까요.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낯선 디자인만 도배되는 것보다 현재 디자인과 미래 디자인의 혼재가 거리를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자동차 디자인 이야기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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