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자동차 디자인, '지키는 자'와 '도전하는 자'
  • 김준선
  • 좋아요 0
  • 승인 2018.11.14 09:51
[Erin 칼럼] 자동차 디자인, '지키는 자'와 '도전하는 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디자인에서 시장을 선도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후에 따라온 모든 경쟁자들을 아류로 만들어버릴 수 있고, 트렌드를 이끈 선진적 이미지 자체가 큰 자산이 되기도 하지요.

게다가 업데이트 주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여러 규제가 뒤따르며, 안전까지 챙겨야 하는 자동차 디자인에서 ‘멋있고 맛있는’ 디자인요소란 그리 흔하게 널린 게 아닙니다. 매력적인 미네랄이 부족한 상황. 이렇듯 자동차디자인 동네는 다른 분야 디자인과 달리 새로운 유행 요소가 날이면 날 마다 탄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한 번 제대로 찾아내어 선점해 버리면 다음 번 또 다른 유행이 시작될 때까지 비교적 길게 왕좌를 누릴 수 있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새로운 인기 디자인을 찾아내고 유행을 선도하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라서 잘 하던 회사가 계속 잘 하지도 못합니다. 천재적인 디자이너와 그를 충실히 백업해 주는 개발환경을 갖추어 놓아도 디자인유행을 계속해서 선도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요.

디자인 잘 하던 회사가 언젠가부터 망가지기 시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브랜드 뜻밖의 차종에서 반짝이는 디자인트렌드가 싹트기도 합니다. 두 경우 모두 하나쯤은 머리 속에 떠오르는 회사가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자사만의 디자인자산을 이미 확보한 회사들은 그것을 더욱 오래도록 지키고 강화하길 원합니다. 몇 없는 ‘멋있고 맛있는’ 디자인요소를 이미 확보해 놓았으니 이걸 최대한 어필하고 조금씩만 개선해 나가는 것이지요. 몇 없는 ‘멋있고 맛있는’ 디자인요소라서 길게 우려먹어야 하니까요.

전통적인 브랜드일수록 아이덴티티가 강한 이유이자, 디자인 변화가 보수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벤츠, BMW, 아우디가 그렇습니다. 요사이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는 디자인의 비율과 양감, 스텐스와 뉘앙스 등을 크게 바꾸지 않습니다.

부분적인 내용으로도 자사의 그릴, 헤드램프, 휠, 창문의 모양 등을 유지하려 하지요.

신차를 디자인할 때 백지에서 시작하는 게 아닌, 구형의 아쉬운 점을 다듬고 개선하는 방식입니다. 새로운 디자인이 아닌 업그레이드 개념이죠. 또한 성공한 디자인사례가 있다면 자사 내 다른 차종에도 옮겨 심으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구형과도 비슷할 뿐 아니라, 회사 내 다른 라인업과도 닮아갑니다.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강화되는 과정이죠.

이런 방식에 전통적인 팬들은 안심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식상해 합니다.

그렇기에 위와 같은 회사들도 이따금씩 자사의 전통적 디자인을 뒤엎을 때가 있습니다.

크리스 뱅글 시절의 BMW가 그랬고, 와다 사토시 시절의 아우디가 그랬습니다. 기존 미네랄을 더 이상 우려먹기 힘들어질 때 즈음, 또 다른 미네랄을 찾아내어 한 번씩 패러다임을 바꿔주는 것이지요. 물론 전통적 브랜드의 무게만큼, 다음 미네랄을 아주 잘 찾아내야 합니다.

우위를 점한, 지키려는 자들에게 드물게 있는 디자인 패러다임 변화시도가 도전자들에겐 일상입니다.

이 두 브랜드를 묶는 게 조금 어색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렉서스와 제네시스가 그렇습니다.

15년쯤 전, 렉서스는 뜬금없이 듀얼 테일램프 디자인을 들이밀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고급세단들이 잘 하지 않는 디자인 방식이었기에 (멋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신선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10년쯤 전에는 새롭게 바뀐 ‘L-FINESSE’라는 렉서스만의 디자인철학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완전히 새로운 렉서스만의 스핀들그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요.

제네시스도 마찬가지입니다. EQ900과 G80, 그리고 G70시대를 너머 곧 출시될 예정인 G90에는 전혀 다른 디자인언어가 적용될 예정입니다. G90에 적용될 새로운 제네시스의 디자인언어가 시장에서 잘 자리잡으면 또 하나의 성공적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서겠지요.

이러한 회사들의 고군분투를 관람자모드로 지켜보면 재미있기도 합니다.

자동차사업을 빨리 시작한 전통적인 브랜드일수록, 먼저 확보할 수 있었던 멋있고 맛있는 디자인요소들을 길고 안정적으로 활용하며 사업을 이끌어 나가고.

자동차디자인을 비교적 늦게 시작한 후발주자들은 계속 실패하고 변화해 나가면서 선발주자들이 미처 찾지 못한 미네랄을 찾아 자사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지요.

후발주자들이 그것에 성공하면, 멋있고 맛있는 검증된 디자인요소가 세상에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고요.

이것이 지키는 자와, 도전하는 자의 차이겠지요.

그렇기에 아직 찾아내지 못한 ‘멋있고 맛있는’ 디자인요소를 하나라도 더 찾아내고자 고군분투 중인 자동차디자이너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