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도시’로 불리는 ‘볼로냐(Bologna)’는 이탈리아 사회주의의 본산이기도 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 볼로네즈 스파게티 등으로 유명하다. 또 로마와 밀라노 사이에 위치한 이탈리아 교통의 요충지다.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농업이 발달했으며, 중세 시대에는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다.    

20세기 들어 공교롭게도 이 평화로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슈퍼카와 모터사이클이 만들어지는 도시가 됐다. 이제는 한솥밥을 먹고 있는 람보르기니와 두가티의 고향 볼로냐를 찾았다. 그리고 람보르기니 본사를 방문해 그들의 역사가 담긴 명차를 살펴봤다.

# 2년만에 다시 찾은 람보르기니 본사

람보르기니 본사 방문은 이번이 두번째다. 2년 전에 왔을때는 관계자와 함께 공장을 둘러봤다. 공장 투어를 마친 후에는 아벤타도르 LP700-4를 시승했다. 관계자 동행도 없었고, 차키만 달랑 던져줬다. 알아서 타고 오면 됐다. 시승에 열중한 나머지 박물관을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 항상 저곳엔 전시차가 한대씩 선다. 전시차는 수시로 바뀐다. 우라칸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않는 점은 의아하다. 우라칸은 박물관에도 전시되지 않았다. 본사 1층 로비에 들어서야 비로소 우라칸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엔 박물관 관람이 주목적이었다. 겸사겸사 우라칸 시승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답변도 오래 걸리는 바람에 비행기표를 다섯번이나 새로 예매했다. 2년전에 혹시 나도 모르는 잘못을 저질렀나 곰곰이 생각했다. 나름 착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어쨌든 오랜만에 찾은 람보르기니 본사는 변한게 없다. 페라리 본사나 박물관 앞에는 관련 상점이 늘었는데, 람보르기니 본사 앞은 있던 상점마저 문을 닫았다. 본사 안에는 종종 굉음을 내는 테스트카도 지나다닌다. 무르시엘라고의 기어봉으로 만든 쓰레기통 뚜껑도 여전하고, 주차장을 가득 메운 아우디도 그대로다. 

▲ 박물관은 주말엔 문을 닫는다. 평일에도 점심 시간엔 들어갈 수 없다. 점심 시간이 긴 것을 감안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그래도 박물관 규모가 작아서 한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1만5천원. 가격은 페라리 박물관의 절반 수준. 볼거리도 딱 그정도. 마라넬로의 페라리 박물관은 랜드마크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으며, 모데나의 엔초 박물관은 매우 고상한 갤러리처럼 꾸며졌다. 이에 비해 람보르기니 박물관은 좁은 공간에 차만 덩그러니 놓였다. 꾸밈이 무슨 필요냐, 우린 타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 람보르기니의 시작

페루치오람보르기니와 엔초페라리 일화의 진실과 상관없이, 람보르기니가 후발 업체였던 것은 자명하다. 알파로메오, 페라리, 마세라티 등 쟁쟁한 브랜드가 이미 자리를 꿰찼고, 유명 코치빌더도 많았다. 그 틈에서 이름을 알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 파격적인 슈퍼카를 만들어야 했다. 어쨌든 람보르기니는 트랙터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으니, 시작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 350 GT. 람보르기니의 첫번째 양산차다.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생산됐다. 총 120대가 만들어졌다. 3.5리터 V12 엔진은 최고출력 280마력의 힘을 냈다. 최고속도는 시속 250km다.

350 GT를 시작으로 람보르기니는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페라리에서 영입한 엔지니어 지오토비자리니가 V12 엔진 제작을 총괄했고, 섀시 제작의 일인자 장파울로달라라, 이탈리아 최고의 코치빌더 ‘투어링 슈퍼레제라’ 등이 참여했다. 350 GT는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자동차 제작진이 만든 결과물이며, 큰 돈을 쏟아부은 차다.

350 GT의 V12 엔진은 프로토타입에서는 400마력을 발휘했는데, 양산차에선 280마력으로 성능이 낮아졌다. 페루치오가 구상한 람보르기니는 극단적인 슈퍼카가 아니라 매력적인 GT였다. 지오토는 페루치오와 목표가 다름을 인지하고 람보르기니를 나오게 된다.

▲ 400 GT 2+2. 400 GT는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생산됐다. 4리터 V12 엔진은 최고출력 320마력의 힘을 냈다. 총 250대가 제작됐는데, 이중 2인승 모델은 23대에 불과했다.

350 GT의 후속인 400 GT도 투어링 슈퍼레제라의 손길을 거쳤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총 250대 생산됐는데 227대가 4인승이었다. 4리터 V12 엔진은 320마력의 힘을 냈다.

▲ 이슬레로(위).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생산됐다. 4.0리터 V12 엔진은 최고출력 320마력, 350마력을 발휘했다. 잘파 350(아래).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생산됐다. 람보르기니의 몇 안되는 8기통 모델이다. 3.5리터 V8 엔진은 255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다.

400 GT는 이슬레로에게 바통을 넘긴다. 람보르기니는 이슬레로 제작 또한 투어링 슈퍼레제라에게 맡겼는데, 투어링 슈퍼레제라가 그만 파산하고 말았다. 대신 그곳의 일원이었던 마리오마라치가 이슬레로의 설계를 맡았다. 이슬레로와 함께 람보르기니의 부흥을 이끈 차는 에스파다다. 무려 10년 동안 생산됐다. 기존 람보르기니에서 유래없는 디자인이었지만, 오히려 대중적인 외모로 큰 사랑을 받았다.

▲ 에스파다. 1968년부터 1978년까지 생산됐다. 4리터 V12 엔진이 탑재돼 최고출력 325마력, 350마력의 힘을 냈다. 총 1226대가 생산됐다.

# 거룩한 미드십의 계보

1966년 모습을 드러낸 미우라는 그간 람보르기니가 내놓은 차와 완전히 달랐다. FR 구조를 고집했던 람보르기니가 거대한 V12 엔진을 차체 중앙에 올렸다. 그것도 세로배치가 아닌 가로배치였다. 마르첼로간디니가 디자인을 맡았고, 달라라, 스탄자니, 웰레이스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제작에 참여했다. 그들은 GT를 벗어난 극단적인 스포츠카를 원했다.

▲ 초기 모델에서 일부 디자인이 바뀌고, 엔진 성능이 개선된 미우라 S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생산됐다. 4리터 V12 엔진은 최고출력 370마력을 발휘했다. 미우라 S는 338대가 만들어졌다.

개선된 V12 엔진과 유선형 디자인 등을 통해 시속 290km를 달리는 슈퍼카로 태어났다. 미우라는 S, SV, 로드스터 등 다양한 세부 모델로 판매됐다. SV에선 미우라 특유의 ‘속눈썹’이 사라졌다. 미우라는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총 764대가 만들어졌다. 

▲ 미우라부터 슈퍼벨로체(SV) 모델이 생겨났다. 1971년부터 1972년까지 생산된 미우라 SV의 4리터 V12 엔진은 최고출력 385마력을 발휘했다. 최고속도는 시속 290km를 넘었다. 150대만 생산됐는데, 가장 큰 특징은 미우라의 속눈썹 헤드램프가 사라진 점이다.

미우라의 대를 이은 것은 쿤타치다. 쿤타치의 인기는 미우라를 뛰어넘었다. 최신 람보르기니의 근간이 되는 모델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람보르기니 특유의 걸윙도어가 최초로 적용됐다. 또 그 성격도 최신 람보르기니가 추구하는 바와 같다. 그간 람보르기니는 4.0리터 V12 엔진을 고수했는데, 쿤타치에는 4.0리터, 5.0리터, 5.2리터 등 다양한 V12 엔진을 탑재했다.

▲ 쿤타치 25주년 기념 모델. 쿤타치는 1974년부터 1990년까지 2049대가 생산됐고, 박물관에 전시된 25주년 기념 모델은 658대가 제작됐다. 이 모델은 당시 람보르기니 수석 디자이너를 지냈던 호라치오파가니가 디자인을 담당했다. 5.2리터 V12 엔진이 탑재됐고, 최고출력 455마력에 달했다.

쿤타치는 16년 동안 2049대가 만들어졌다. 미우라에 이어 쿤타치까지 연이은 성공을 거둔 마르첼로간디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고 람보르기니와 더욱 돈독해졌다. 람보르기니는 그에게 후속 모델 제작도 맡긴다.

람보르기니는 ‘악마의 슈퍼카’ 디아블로로 20세기를 마무리했다. 디아블로는 팝업 헤드램프가 적용된 1세대와 그렇지 않은 2세대로 나뉜다. 람보르기니 최초의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 2001년 제작된 디아블로 6.0 SE는 6.0리터 V12 엔진이 탑재돼 최고출력 575마력의 성능을 발휘했다. 6.0 SE는 총 42대만 만들어졌다.

람보르기니의 V12 엔진 제작 기술은 꾸준하게 발전했다. 비록 결과는 처참했지만, F1팀에 V12 엔진을 공급하기도 했다. 디아블로는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총 2884대가 만들어졌고, 무르시엘라고에게 자리를 내줬다.

# 희귀한 람보르기니를 만나다

박물관 2층에는 최신 람보르기니가 전시됐다. 독특한 콘셉트카부터 한정판 모델까지 람보르기니를 정상의 슈퍼카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하게 만든 명차가 전시됐다. 

▲ P140. 1988년 단 4대만 만들어진 람보르기니 최초의 V10 모델이다. 가야르도의 직계 조상이라고 볼 수 있다.

람보르기니는 V8 엔진이 장착된 몇몇 차종을 내놓았지만, 페라리의 인기를 따라가진 못했다. 그래서 V12 모델에 비해 값이 저렴한 V10 모델을 구상했다. P140은 람보르기니 V10의 시작을 알리는 모델이지만,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V10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회사 사정은 어려워졌고, 당시 람보르기니를 소유하고 있던 크라이슬러 그룹은 이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그래서 P140은 단 4대만 만들어졌고, 십여년이 지난 후 칼라 콘셉트로 다시금 V10 엔진이 등장하게 됐다. 칼라 콘셉트는 또 가야르도로 발전했다.

▲ 2005년 제작된 콘셉트 S는 단 두대만 만들어졌다. 5.0리터 V10 엔진은 최고출력 500마력의 성능을 발휘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분리된 구조다. 룸미러는 필요시 윗패널 속에서 자동으로 내려온다.

콘셉트 S는 극단적인 로드스터다. 현재 벤틀리 디자인 센터장을 맡고 있는 루크동커볼케가 람보르기니 수석 디자이너였을 때 만들었던 모델이다. 지붕은 아예 없고, 앞좌석은 분리된 형태다. 람보르기니는 이를 소량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안전과 비용 등의 이유로 단 2대만 만들었다. 

▲ 미우라 콘셉트. 미우라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콘셉트카다. 발터드실바가 손수 디자인을 맡았다. 헌정의 의미지, 람보르기니의 차세대 모델에 대한 콘셉트카는 아니다.

람보르기니 미드십 역사의 시작을 알린 미우라도 21세기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람보르기는 2006년 미우라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미우라 콘셉트를 제작했다. 발터드실바가 디자인을 맡았다. 미우라 특유의 유려한 실루엣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가미됐다. 단 한대만 제작됐으며,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를 다시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 람보르기니는 확실히 남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세스토 엘레멘토와 레벤톤은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20대만 제작된 한정 모델은 곧바로 매진됐다. 세스토 엘레멘토의 가격은 약 30억원, 레벤톤의 가격은 약 15억원 정도다.

수십억원에 달한다는 세스토 엘레멘토와 레벤톤도 만날 수 있다. 세스토 엘레멘토는 가야르도를 기반으로 제작됐고, 20대가 만들어졌다. 경량화를 위해 실내는 무척 간소해졌다. 레벤톤은 무르시엘라고보다 아벤타도르에 더 가깝다. 쿠페가 20대, 로드스터가 15대 만들어졌다. 2008년에 출시된 차가 여전히 압도적인 것은 놀랍다.

▲ 에스토크 콘셉트. 2008년 파리모터쇼를 통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5.2리터 V10 엔진,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적용됐다.

초기 람보르기니는 4인승 모델이 많았지만, 세단을 만든 적은 없다. 2008년 공개된 에스토크 콘셉트는 람보르기니 최초의 세단이다. 당장 양산될 계획은 없다. 람보르기니는 세단보단 SUV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수익성을 위해 둘다 만들고 싶겠지만, 이미 람보르기니 공장은 포화상태다. SUV는 투아렉, Q7, 카이엔 등과 함께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 또 세단은 이미 쟁쟁 브랜드가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고급 SUV 시장은 아직은 블루오션이다.

# 계륵과도 같은 모터스포츠

람보르기니에게 레이싱은 그야말로 계륵이다. 따지고 보면, 스포츠카 브랜드 중에서 변변한 트로피 하나 없는 곳은 람보르기니 뿐이다. 그럼에도 페라리의 비교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한편으론 놀랍기도 하다. 

F1은 예나 지금이나 페라리의 무대였다. 람보르기니는 반강제적으로 F1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람보르기니를 소유하고 있던 크라이슬러 리아이아코카 회장은 1987년 람보르기니에게 F1에서 사용할 엔진을 제작하라고 지시했다.  

▲ 람보르기니 최초의 F1 레이스카와 3.5리터 V12 엔진 F1 엔진(위). 이 엔진을 썼던 미나르디팀의 F1 레이스카도 전시됐다(아래 좌측). 람보르기니가 꿈꾸는 미래의 레이스카 에고이스타(아래 우측). 5.2리터 V10 엔진이 탑재돼 최고출력 600마력의 성능을 발휘한다.

이와 함께 람보르기니는 1991년 팩토리팀을 만들고 F1에 참가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우승이나 포디움은 고사하고 완주조차 쉽지 않았다. 경험 부족이 실패의 원인으로 분석되지만, 비슷한 시기 람보르기니의 엔진을 공급받던 팀 모두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람보르기니는 1993년 크라이슬러에서 인도네시아 메가테크에게 인수되면서 F1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현재 람보르기니는 FIA GT3 등에서 사용되는 레이스카를 제작하고 있다. 또 별도의 원메이크 레이스를 진행하고 있다.

# 람보르기니의 미래

21세기 들어서 람보르기니 라인업은 간결해졌다. 엔트리와 플래그십, 두 차종만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차들이 십년 가까이 장수했기 때문에 박물관 2층은 휑한 느낌도 들었다. 2층 가장 깊숙한 곳엔 아스테리온이 전시됐다.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차단벨트가 둘러쳐진 차다.

▲ 아스테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를 뜻한다. 이 차는 한마디로 하이브리드라는 얘기다. 5.2리터 V10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 3개의 전기모터와 리튬이온 배터리가 결합돼 최고출력 910마력의 힘을 낸다. 그러면서 연비는 유럽 기준 약 24.2km/l에 달한다.

이미 지난해 파리모터쇼에서 봤기 때문에 새로움은 없었지만, 이 차의 미래는 사뭇 궁금하다. 스포츠카 브랜드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 적용이 대세다. 페라리, 포르쉐, 맥라렌 심지어 코닉세그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를 선보였다. 람보르기니 스테판윙켈만 CEO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를 양산할 계획은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910마력의 힘과 경차의 연비를 능가하는 효율성을 갖춘 슈퍼카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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