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랠리 찾아 떠난 두바이 [황욱익의 밀레 밀리아 ④]
  • 황욱익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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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29 17:41
꿈의 랠리 찾아 떠난 두바이 [황욱익의 밀레 밀리아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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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밀레 밀리아를 완주한 필자의 이야기를 모터그래프가 독점 연재합니다. 1927년 시작된 밀레 밀리아는 GT(Grand Touring)의 개념을 파생시켰으며 클래식카 마니아들에게 '꿈의 랠리'로 불립니다. [편집자 주] 

레그 2 섹션 1
이동 거리 : 177.75km
시간 : 4시간
평균 속도 : 35.55km/h

정신없이 첫날 일정을 마치고 시작된 둘째 날. 아랍에미리트의 가장 높은 곳이라 불리는 자벨 자이스까지의 오전 일정은 사막지대와 산악도로를 달리는 구간이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내비게이터의 역할은 둘째 날 일정부터 더 복잡해졌다. 8개의 타임 트라이얼 구간과 두 개의 애버리지 스피드 트라이얼 구간을 비롯해 사막 마을을 거쳐 가는 루트까지. 로드북의 한 항목만 놓치거나 길을 잘못 들으면 낭패를 보기 딱 좋은 조건이기도 했다.

주차장은 아침부터 매우 분주했다. 해발 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터라 참가자들 대부분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참가차들이 대부분 카뷰레터 방식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아랍에미리트 자체가 평지에 가까워 해발 고도 1,000m가 넘는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호텔이 있는 하야트 아일랜드부터 첫 기착지인 북쪽 자벨 자이스까지 가장 가까운 루트는 해안도로를 타고 약 70km 정도.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하는 루트는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합하드와 카트를 거쳐 북쪽으로 향하는 루트다. 9시 42분에 출발해 오후 1시 42분에 도착해야 하는 조건이다. 

출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거쳐 지평선까지 탁 트인 평원 지대를 달리고 있으니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중간중간에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그룹 드라이빙을 즐기기도 했고 선두 차들을 따라가다 보니 길을 잃을 확률은 확실히 줄어든다. 하지만 앞쪽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면 여러 대가 함께 길을 잃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는 지형지물과 도로 번호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 그래블과 좌회전, 우회전 구간이 있는 타임 트라이얼 

첫 타임 트라이얼 구간은 출발한 지 약 40km 후의 넓은 평원 지대에서 치러졌다. 고속구간이 많아 타임 트라이얼 계측을 위해 대기하는 참가자들이 꽤 많았다. 평원 지대는 여유롭고 낭만 있어 보였지만, 그늘 한 점 없다. 30도 가까이 오른 날씨에 대기하는 내내 더위와 싸워야 했다. 

이번 타임 트라이얼은 촘촘하게 연속되는 구간이다. 짧게는 20m, 길어봐야 200m 남짓 이어진 계측 구간은 보기보다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연속된 구간이다 보니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아스팔트 직선 도로라고 생각했던 타임 트라이얼 구간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대부분은 전날 밤에 로드북을 보고 숙지했지만 중간중간에 흙먼지 가득한 그래블(비포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타임 트라이얼 구간에 돌입해서 알게 되었다. 당연히 운전자와 내비게이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실시간 기록을 초 단위로 불러줘야 하는 필자는 중간에 흐름을 잃어 계측 끝나는 구간에서는 둘 다 한숨만 내쉬었다. 어찌어찌 타임 트라이얼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도로에 올라 자벨 자이스를 향해 출발했다.       

#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높은 곳 자벨 자이스

마을을 지나고 좁은 국도를 지나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는 구간은 그나마 속력을 낼 수 있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생각보다 고속도로가 잘 발달한 곳인데 도심 구간이 아닌 곳은 교통 체증도 거의 없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산악도로로 진입하는 입구는 아주 작은 표지판만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표지판을 놓치지 않았지만, 앞쪽에서 주행하던 팀 중에는 이 표지판을 지나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본격적인 산악도로에 진입하자 차 안 공기는 급격하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해발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온은 조금씩 낮아지지만,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산악도로를 오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충전기를 물려 놓은 전화기는 80%에서 충전이 멈췄고, 창밖에서는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불어온다. 자벨 자이스로 가는 산악도로는 노면 상태는 좋았지만 경사가 급하고 블라인드코너가 상당히 많고 험한 편이다. 

우리는 중간에 여러 대의 차를 추월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멈춘 차들도 볼 수 있었다. 연속된 힐클라임을 한 시간쯤 했을 때 멀리서 자벨 자이스 레스토랑과 타임 컨트롤이 보였다. 좌우로 굽이지는 코너와 점점 높아지는 해발고도, 높은 기온, 그 안에서 계속 읽어야 하는 작은 글씨의 로드북 덕에 어지러움과 두통이 밀려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벨 자이스의 해발 고도는 대략 2,000m 정도. 로드북을 읽으며 올라오는 과정은 한국에서 강원도 산악도로를 달리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아주아주 힘들었던 오전 일정을 마쳤다. 

점심시간에는 매우 혼잡했다. 주차장과 산악도로에 주차된 참가자들의 차에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있었다. 덕분에 미구엘도 바빠졌다. 미구엘은 여기저기에 문제가 있는 차에 항상 먼저 다가가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묻곤 했다. '정비는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도 좀 쉬는 게 좋아'라고 이야기했더니 '이게 클래식카를 타는 사람들의 의무이자 프라이드야. 여기 온 사람들은 승부 이전에 모두가 친구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방법을 같이 찾아보는 게 보통이야. 아랍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구' 미구엘의 이런 얘기를 들으니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레그 2 섹션 2 
이동 거리 : 166.14km
시간 : 3시간 
평균 속도 55.38km/h

올라온 길을 생각하니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오후 2시 42분에 출발했다. 로드북을 살펴보니 라스 알 카이마를 거쳐 내륙으로 들어갔다가 푸자이라의 바닷가까지 가는 일정이다. 푸자이라까지 가면 아랍에미리트 내 7개 토호국 중에 두바이, 샤르자, 움 알쿠와인, 라스 알 카이마 등 5개를 거치게 된다. 남은 일정은 알 아인을 거쳐 다시 두바이로 들어갔다 아부다비에서 골인하는 일정이다. 

자벨 자이스의 경치는 지금까지 거쳐 온 곳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올라갈 때도 멋졌지만 내려올 때의 경치도 그에 못지않다. 래그 2 섹션 2 구간은 산악도로를 빠져나와 대부분 고속도로 연결된 구간이다. 그만큼 평균 속도도 높고 비교적 경기 운영이 쉬운 일정이다. 아랍의 오후 햇살은 그 따갑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음 만큼 강렬하며 기온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랍의 겨울 날씨는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긴 하지만 습도 때문에 끈적끈적하다. 우리의 알파 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제대로 된 성능을 내지 못한다. 그래도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나은 조건이다. 클래식 아이콘즈와 밀레 밀리아 클래스 출전차들은 천정이 없는 차도 있고 에어컨이 갖춰진 차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푸자이라 왕국의 호텔까지는 무난하고 순조로웠다. 다른 참가자들도 대낮의 더위에 지쳐 속도를 내기보다 주변 경관을 보며 크루징을 즐기는 듯했다. 푸자이라는 아름다운 왕국이다.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첨단을 달리는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데 반해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유목민 마을을 지날 때 아이들의 환영을 받기도 하고 가는 지역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순박한 미소가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레그 2 섹션 2에서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타임 컨트롤을 앞두고 도착 예정 시간보다 15분쯤 일찍 도착해 멀찌감치 차를 세워두고 다른 참가자들이 지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절반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경험치가 쌓였다. 

해 질 무렵은 온종일 로드북과 씨름하다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필자뿐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저녁 만찬에 가면 다들 다시 활기찬 모습이다. 낮에 고생했던 참가자, 경기를 포기한 참가자, 운영 스탭, 동행 중인 두바이 슈퍼카 경찰 등 모두가 어울리며 늦은 시간까지 함께 보냈다. 이들과 어울리는 데 전혀 문제는 없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나름의 프리미엄(K-팝 덕이다)에 현대차에서 정식 교육받은 드라이버, 카트 레이서, 자동차 기자 출신이라는 점은 이들과 어울리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고 차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질 때가 많았다.

레그2 최종 기록은 전체 47위.    

레그 2 주행거리 343.89km
총 주행거리 752.88km

# 덧붙여 

람보르기니의 전설적인 테스트 드라이버인 발렌티노 발보니와 보낸 시간은 매우 즐거웠다. 매일 밤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 같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발렌티노 발보니는 1968년 동네 신부님의 소개로 람보르기니에 입사해 40년 넘게 근무하면서 람보르기니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인물이다. 70세가 넘는 나이에도 V12 자연흡기 엔진과 수동변속기, 미드십 후륜구동을 사랑하는 남자다. 그는 람보르기니가 여러 회사에 인수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느낀 점들도 함께 얘기해 주었다(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다뤄보려고 한다).

필자가 무엇보다 궁금했던 점은 간디니와 함께 작업하던 시절이다. 원래 이 내용은 나중에 다루려고 했는데 지난 3월 13일 사망한 거장 마르첼로 간디니의 사망으로 이번에 다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디니와 작업은 어땠습니까?'하고 물으니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이며, 열정적이야. 우리가 함께 일했던 70년대 80년대는 정말 즐거운 시절이었어. 자라마, 이슬레로, 에스파다도 같이 했고 그중 최고는 쿤타치였지'라고 회상했다.

쿤타치 얘기가 나오자 최근의 신형 쿤타치(쿤타치 LPI 800-4)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왔고 간디니가 이 차는 자신과 관련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일화도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사실 우리는 이때까지도 간디니가 사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필자의 마지막 질문은 쿤타치의(한 시대를 풍미했던) 개발자에게 직접 듣고 싶은 것이었다. 그에게 '간디니와 함께 작업한 자동차 역사의 역작인 쿤타치는 내 세대 남자아이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세대 중에 쿤타치에 관련된 물건 하나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저는 책상 옆에 쿤타치의 저화질 포스터를 항상 붙여 놨었어요'라고 얘기했다. 그가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 시절에는 그런 남자들이 많았지. 그만큼 쿤타치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쿤타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 '간디니와 나에게 쿤타치는 단 하나뿐이야(only one)' 그의 대답은 내가 듣고 싶었던 내용의 답보다 훨씬 직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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