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가 이른바 '테슬라 충젼 규격'으로 불리는 NACS(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 도입에 나서고 있다. 미국 빅3는 물론, 독일 자동차 업체들과 현대차그룹까지 NACS 규격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 슈퍼차저
테슬라 슈퍼차저

지금까지의 흐름만 봐선 NACS가 대세가 되어가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양상이 테슬라의 충전 방식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거나, 자동차 업계가 테슬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자동차 업계가 NACS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규모'다. 슈퍼차저를 포함한 테슬라의 충전 네트워크는 전 세계적으로 4만8000여개에 달한다(2023년 2분기 기준).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최대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3700여개), 아이오니티(3200여개)를 뛰어넘는다.

급속 충전기만을 놓고 봐도 압도적이다. 미국 에너지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급속충전기 3만1000여개 중 테슬라 슈퍼차저는 2만여개에 육박한다. 테슬라 슈퍼차저가 사실상 미국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테슬라 슈퍼차저를 이용중인 아이오닉5
테슬라 슈퍼차저를 이용중인 아이오닉5

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충전 편의성으로 귀결된다. 테슬라의 충전 네트워크가 선택지에 추가될 경우, 가까운 충전 스테이션 수가 더 많아지는 셈이다. 더욱이 미국이나 중국처럼 땅이 넓고, 충전소 간 거리가 멀 경우 혜택은 더 두드러진다.

접근성 측면에서도 기존 충전소보다 더 유리해진다. 테슬라는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보다 먼저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밖에 없고, 이렇다 보니 대부분은 다중 이용 시설과 같은 접근성이 좋은 곳에 밀집해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전기차 충전소 확충을 위해 5년간 75억달러(한화 9조6000억원)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당초 DC콤보 타입이 주 대상이었지만, 독자 규격을 쓰는 테슬라가 충전기를 개방할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선결 조건도 내걸었다.

아이오닉6와 모델Y가 슈퍼차저에서 나란히 충전 중이다
아이오닉6와 모델Y가 슈퍼차저에서 나란히 충전 중이다

그렇게 테슬라는 자존심 대신 '실리'를 택했다. 2024년 말 까지 7500개 이상의 슈퍼차저를 모든 전기차에 개방하겠다고 밝혔고, NACS 설계 디자인과 사양 등도 전격 공개했다. 그렇게 테슬라는 충전 스테이션을 공유하고 막대한 정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어느 날 갑자기 쓸 수 있는 충전소가 많아지자, 완성차 업체들도 분주해졌다. 슈퍼차저 개방 직후 포드, GM, 스텔란티스, 리비안 등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NACS 합류를 선언했다. 미국을 핵심 시장으로 삼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 브랜드들도 같은 행보를 이어갔고, 다른 충전 사업자들도 NACS 충전 포트를 추가한 새로운 충전기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테슬라 NACS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는 의문이다. 주요 자동차 브랜드들이 NACS 합류와는 별개로, '충전 동맹'을 결성하고 나섰다. 현대차그룹과 GM, 스텔란티스, 메르세데스-벤츠, BMW, 혼다 등이 충전 공동 네트워크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고, 이를 통해 2024년부터 북미 주요 도심과 고속도로에 초고속 충전기 3만기를 보급할 예정이다.

'매직 독'이 적용된 테슬라 슈퍼차저
'매직 독'이 적용된 테슬라 슈퍼차저

미국 외 시장에서도 NACS가 표준화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CCS(DC 콤보)를 채택 중인 국가에서는 NACS를 새로 도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테슬라코리아의 사례처럼 슈퍼차저에 DC콤보 어댑터를 마련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 'NACS 광풍'이 북미에서만 국한될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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