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중고차는 연식과 주행거리로 대략적인 수명과 잔존가치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중고 전기차는 배터리 수명이 더 중요하다. 이미 해외에서는 배터리 수명을 기반으로 한 시세가 형성되고 있다.

애플 등 일부 스마트폰은 소비자가 배터리 수명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판매되는 전기차는 그 어떤 제조사도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저 '보증기간 동안은 출고 당시 성능의 70% 이상을 발휘할 수 있다'라며 두루뭉실하게 설명하는게 전부다.

중고 전기차는 주행거리보다 배터리 수명이 가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중고 전기차는 주행거리보다 배터리 수명이 가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사가 아닌 스타트업이 나섰다. 이들은 배터리 수명을 알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중고 전기차 업체에서 배터리 수명을 테스트 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얼텔리움'은 배터리 상태를 테스트한 후 인증서까지 발행해주는 스타트업이다. 올해 미국에서만 7천여명 이상의 중고차 딜러에게 해당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영국에서도 5천여명 이상의 딜러가 해당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는 중국 중고차 업체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렉스 존스 얼텔리움 매니저는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한다"면서 "급속충전을 자주하거나, 완충된 상태로 장시간 방치하는 행동을 반복하면 배터리 성능이 빨리 저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비루의 배터리 수명 진단 결과 예시
아비루의 배터리 수명 진단 결과 예시

오스트리아의 전기차 배터리 진단 스타트업 '아비루'는 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마르쿠스 버거 CEO는 "관리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10만km를 주행한 전기차의 배터리 수명이 90%가 될 수도 있고, 70%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일 차종이라도 중고차 가격이 수천유로(약 수백만원) 이상 벌어질 수 있다"면서 "중고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주행거리와 연식은 아무 의미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부터 전기차 소유주에게 배터리 수명과 상태를 알려주는 'B-라이프케어'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배터리 수명 점수는 97점으로 상위 4%'라는 구체적인 확인이 가능하며, 현재의 배터리 성능 및 사용자의 운전 습관을 분석해 향후 20년의 성능 변화 예상 그래프도 보여준다.

SK온도 2022년 전기차 배터리 진단 서비스를 도입했다. 중고차 업체 케이카가 사들인 중고 전기차 배터리의 남은 수명과 잔존 가치도 인증해 주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B-라이프케어 화면 예시
LG에너지솔루션의 B-라이프케어 화면 예시

업계 한 전문가는 "자동차 제조사가 제공하는 전기차의 배터리 수명이 과장된 경우가 많다"면서 "독립적인 배터리 테스트가 동반되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 성능이 불확실하면 중고차 가격을 형성하는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9월 미국 중고 전기차 가격은 전년 대비 32% 하락했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은 7% 내렸을 뿐이다. 영국 역시 지난 8월 내연기관 중고차가 4% 하락하는 동안, 전기차는 23%가 빠졌다. 업계에서는 중고 전기차 배터리 수명에 대한 소비자 우려를 하락 원인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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