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한국 연비 못믿겠고, 유럽 연비 알려드립니다"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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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01 14:11
[데스크] "한국 연비 못믿겠고, 유럽 연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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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복합 연비는 24.4km/l 입니다. 유럽 기준은 28개국이 모여서 동일한 연비 측정기준을 만들어서 아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만든 기준입니다” 

"유럽 기준도 말씀드리고 국내 기준도 말씀 드립니다만… 그…우리나라 연비 측정과 기준과 방법엔 이견이 있을수 있기 때문에 참고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30일 신형 푸조 308의 출시행사장에서 한불모터스 동근태 이사의 말은 귀를 의심케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내놓은 연비 측정에 ‘이견’이 있다는 말이고, 다시 말하면 ‘한국 연비 못믿겠다'는 의미다. 

▲ 국내연비와 함께 적은 유럽 연비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쳐놨다.

우려했던 일이 결국 현실에서 일어난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조만간 이런 일이 일어날거라 예상해왔다. 제조사와 소비자가 정부가 발표하는 ‘표시연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차는 일본 연비를, 미국차는 미국 연비를 내놓는다면 소비자는 연비라는 중요한 차량 선택의 기준을 잃을게 뻔하다. 

사실 그럴만도 하다. 정부 기관 중 한곳은 현대차 싼타페와 쌍용차 코란도스포츠가 ‘뻥연비’라고 발표했는데, 다른 기관은 "해당 차종은 문제가 없고 다른 수입 차종들에만 문제가 있다”고까지 발표했기 때문이다. 배경에는 정부 부처간의 밥그릇 싸움이 있었다. 깎아 내려야만 일을 빼앗아 올 명분이 생기는 상황에서 국토부는 그동안 산업부가 해온 일이 뭔가 잘못 됐다고 주장 할 수 밖에 없을게다. 산업부는 자신들이 설령 틀린게 발견됐다 한들 인정할 수 없는 이유다.

사실 연비 측정 과정은 여러 거창한 장비를 동원하긴 하지만, 인간의 의지나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꽤 있다. 연비를 측정하는 사람이 가속페달을 밟고 떼는 기술만으로도 연비 3% 가량은 쉽게 오르내리게 할 수 있다는게 정부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물론 산업부에선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그간 너무 제조사 편익을 위했던 측면이 있던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이 있었을지언정 정부 기관이 이렇게까지 난폭하게 다른 부처의 업적을 비판하는 행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정부라는 존재는 비록 내부에선 알력 다툼이 있을지언정 밖으로 내보이는 모습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록 조율 돼 왔기 때문이다. 

이번엔 국무총리실까지 나서 다툼을 정리하려 했지만 진전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중재가 유야무야되자 오히려 기고만장해진 정부부처들은 각기 언론을 상대로 ‘내 말좀 들어보소’하며 상대 부처를 비하하는 내용의 하소연만 늘어놓고 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다는 태도다. 

심지어 현대차는 이례적으로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는 내용의 자료까지 내보냈다. 그동안 산업부와 협조해 왔는데, 갑자기 국토부가 나서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조사들은 요즘 무서울게 없는가보다. 기술을 선도하는 자동차 제조사라면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할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이고 오차가 적은 연비 측정 기준을 정부측에 제시할 필요가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점잖게 훈수를 두듯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적어도 행정부가 앞장서는 수직적 분위기는 좀 벗어난 듯 하다. 각 부처와 기업들이 각기 제 목소리로 불협화음을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걸 수평적 조직화의 신호로 해석해야 하나, 아니면 윗사람 눈치 안보는 ‘레임덕'이 벌써 시작된 걸로 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 법무법인은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소비자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부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데 누가 제조사에게 ‘틀렸다’고 말하거나 '배상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정부가 스스로 신뢰도를 깎아 먹은 결과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제조사들은 한국의 '표시연비'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며, 과태료는 또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희희낙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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