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기블리 S Q4 '본질이 주는 가치'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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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8 10:30
[시승기] 마세라티 기블리 S Q4 '본질이 주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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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모래 폭풍'을 의미하는 기블리는 마세라티 엔트리 모델이자, 르반떼와 함께 브랜드 판매량을 견인하는 볼륨 차종이다. 기블리는 지난 2013년 국내 출시 당시 '강남 쏘나타' 반열에 오를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마세라티 브랜드를 제대로 각인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경쟁 모델들이 풀 체인지를 거쳤음에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그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기블리를 만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자 자연스레 모델 노후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블리는 과연 2021년에도 충분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번 시승 모델은 국내 판매되는 라인업 중 가장 상위 트림인 '기블리 S Q4 그란스포츠'다.

기블리는 출시 이후 페이스리프트와 마이너체인지 등 소소한 변화를 거쳤지만, 초기형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8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외모만큼은 최근 출시된 신차들과 비교해 크게 밀리지 않는 포스를 풍긴다.

커다란 프론트 그릴 가운데 위치한 포세이돈의 삼지창과 사이드미러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리어 펜더, 여기에 검게 칠한 휠 및 쿼드타입 머플러 등 기블리 S Q4 만의 카리스마 넘치는 디자인은 여전히 완성도가 높다.

이어 멋스럽게 드러나는 프레임리스 도어가 운전자를 반긴다. 도어를 여는 순간부터 여타 세단과 다른 궤를 보여준다.

공격적인 외관에 비해 전반적인 인테리어는 한결 차분하다. 계기판은 두 개의 바늘과 디스플레이가 조화를 이루고, 중앙에는 아날로그 시계와 8.4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자리한다. 모니터는 겉보기엔 다소 투박하지만, 높은 해상도와 빠른 터치 반응 속도로 인해 실사용에 불편함은 없다.

동급 경쟁 모델에서는 보기 힘든 고급 기능을 챙겼다. 프리스톱 힌지를 적용해 각도에 상관없이 도어 개폐가 가능하다. 기본 적용되는 소프트 도어 클로징 기능과 궁합도 좋다. 여기에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의 위치 조절이 가능해 운전자가 원하는 높이로 설정할 수 있다.

차체 크기는 전장과 전폭 전고가 각각 4975x1945x1480mm이며, 휠베이스는 3000mm에 달한다. 전형적인 E세그먼트 사이즈이다. 다만 실제 탑승 시 뒷좌석 공간은 그렇지 못하다. 2열만 놓고 보면 한 체급 아래인 D세그먼트 모델과 유사하다.

뒷좌석 공간과 더불어 부분부분 트렌드에 뒤처진 실내 디자인 포인트도 아쉽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급스러운 소재와 깔끔한 인테리어 구성을 통해 마세라티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스티어링 휠 가운데 큼직하게 위치한 삼지창과 거대한 패들 시프터가 아쉬운 마음을 슬며시 녹인다.

기블리 S Q4는 최고출력 430마력, 최대토크 59.2kgf·m의 3.0리터 V6 트윈 터보 엔진을 탑재했다. 마세라티가 설계한 V6 트윈터보 엔진은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위치한 페라리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에 ZF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최고안전속도는 286km/h이며, 정지상태에서 100km/h에 도달하는 시간은 4.7초다.

시동 버튼은 스티어링 휠 왼편에 있다. 소소한 디테일이 태생부터 모터스포츠 혈통임을 강조한다. 버튼을 누르자 걸걸한 배기음이 터져나온다.

노멀 모드에서 실내는 한결 조용하다. 마세라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사뭇 거리가 있다. 그저 평범한 세단처럼 부드럽게 나아간다. 공차중량은 2070kg으로 꽤 무겁지만, 최대토크가 2500rpm부터 나오는 만큼 답답함은 느낄 수 없다.

스포츠 모드를 체결하면, 가변배기 플랩이 열리며 우렁찬 배기음을 뿜어낸다. 좁은 골목이나 지하주차장에서는 공회전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와 함께 스티어링 휠은 무게감 있게 바뀌고, 가속 페달 반응은 더욱 민감해진다.

기블리는 스포츠 모드에서 가장 마세라티답다. 특히 굽잇길에서 돌리는 맛이 좋다. 전륜 서스펜션은 접지력 확보에 유리한 더블 위시본 타입으로 마감했다. 빠른 속도에서도 좌·우 롤링을 버텨내는 한계점이 높다. 단단한 하체가 주는 움직임이 기블리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 'Q4'는 차량을 제어하는 데 있어 기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커다란 알루미늄 재질의 패들 시프터가 자꾸만 수동 변속을 재촉한다. '철컥'하는 느낌이 마치 기계 장치를 조작하는 듯하다. 패들은 컬럼에 고정됐지만 길쭉하게 뻗어있어 코너에서도 위치를 가늠하기 쉽다. 재질과 크기, 조작감 모두 만족스럽다. 패들을 조작해 의도적으로 rpm을 높여본다. 속도를 높이지 않아도 V6 엔진을 울부짖게 만들 수 있다. 400마력이 넘는 고성능 차량이지만, 발진 가속을 돕는 런치 컨트롤은 빠졌다. 해당 기능은 아직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최상위 라인업 '기블리 트로페오'에게만 허락됐다.

고속도로 정속 주행 연비는 어떨까. 100km/h에서 8단 1500rpm이 채 안된다. 에코 모드에 해당하는 I.C.E 모드를 체결하자 순간 연비는 13km/L를 상회한다. 이어진 정속 주행에서도 12km/L를 넘는 평균 연비를 기록했다.

마세라티 기블리 S Q4를 시승하며 기계식 손목시계가 떠올랐다. 시장에서 판매량으로 절대적 우위를 갖는 스마트 워치는 기계식 손목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더 화려하며, 더 많은 기능을 품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 사람들은 기계식 무브먼트를 지닌 손목시계를 더 가치있게 여긴다.

기계식 손목시계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화려한 기능을 원치 않는다. 그 대신 시계가 가진 본질, 혹은 브랜드가 지닌 가치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소유하기를 원한다. 기블리도 이와 같다. 최첨단 기능보다 스포츠 세단이 주는 본능 혹은 마세라티라는 브랜드가 주는 가치를 보고 기블리를 선택한다면 충분히 선택지가 될 것이다.

아쉽게도 기블리의 후속 모델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마세라티가 공개한 미래전략 로드맵에는 신형 SUV '그리칼레'와 '콰트로포르테' 및 '그란투리스모' 후속 등이 이름을 올렸지만 기블리는 찾아볼 수 없다. 일부 글로벌 시장에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탑재한 '기블리 하이브리드'를 마지막으로, 브랜드 전략과 전동화 시대에 맞춰 이대로 단종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순수 내연기관을 지닌 기블리는 이번이 마지막일 지도 모르겠다.

마세라티 기블리 가격은 엔진 및 트림에 따라 1억2057만원~1억5057만원 등이다.

※ 해당 차량은 브랜드 및 제작사에서 제공한 시승용 차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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