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 에필로그…빛바랜 영광과 빛나는 열정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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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30 16:51
‘포드 V 페라리’ 에필로그…빛바랜 영광과 빛나는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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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드v페라리 포스터
영화 포드v페라리 포스터 (사진=월트디즈니)

영화 ‘포드 V 페라리’가 국내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실화를 담은 영화인 만큼, 그 뒷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졌을지 궁금할 터다. 그러나 영화 속편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영화의 짙은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당신을 위해 ‘포드 V 페라리’의 에필로그를 준비해봤다(해당 기사는 영화의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포드 GT40 MK4 (제공=포드)
포드 GT40 MK4 (사진=포드)

# 켄 마일스의 마지막 차, 다시 르망을 석권하다

포드와 캐롤 쉘비가 1967년 르망24시 내구레이스 출전을 목표로 만든 GT40 마크4는 켄 마일스의 마지막을 함께 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GT40 마크 4는 기존 마크2와 동일한 7.0리터 V8 엔진이 탑재됐지만, 섀시와 차체 전반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했다. 포드는 켄 마일스의 사고 이후, 나스카 레이스카에 적용되는 스틸 튜브 롤 케이지를 적용해 안전성을 한층 보강했다. 다만, 롤 케이지 무게가 더해진 탓에 경쟁차였던 페라리 330 P4보다 270kg이 더 무거웠다.

마크4는 그해 르망24에서 다시 한번 페라리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마크4가 뮬산 직선로에서 기록한 최고속도는 341km/h이다. 제원상 최고속도가 330km/h였던 마크2보다 빠른 속도였다. 

1966년 르망24 첫 우승 장면 (제공=포드)
1966년 르망24 첫 우승 장면 (사진=포드)

# 1966년 르망24, 그 이후

1966년 첫 르망 우승컵을 들어올린 포드는 196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현재까지 미국 자동차 제조사가 르망에서 우승한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비(非)유럽권 제조사의 르망 우승은 포드, 마쓰다, 토요타 등 3곳뿐이다.

포드의 독주는 페라리가 아닌 포르쉐가 막아선다. 1970년 917K로 사상 첫 1위를 기록한 포르쉐는 2017년까지 총 19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르망 최다 우승자로 올라선다. 아우디는 13승으로 뒤를 이었고, 페라리는 르망에서 총 9회 우승을 기록했다. 

포드 머스탱 쉘비 GT500
포드 머스탱 쉘비 GT500 (사진=포드)

# 쉘비, 미국 자동차 업계 전설이 되다

켄 마일스 사망 이듬해인 1967년, 쉘비 머스탱 시리즈의 역작 ‘GT500’이 탄생한다. 이는 머스탱 최초의 7.0리터 V8 엔진이 탑재된 모델이다. GT500은 1968년까지 쉘비가 제작했고, 이후 포드 직접 생산 체계로 전환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1969년 캐롤 쉘비는 포드와의 경영 문제로 파트너십을 중단하고, ‘쉘비 칠리’란 요식업 사업을 꾸린다. 그가 포드와의 관계를 회복한 건 2003년, 포드 출범 100주년에 이르러서다. 이후 그는 포드와 함께 GT40의 오마주 ‘포드 GT’를 선보인다.

캐롤 쉘비는 2012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미국 자동차 업계 전설로 남는다. 포드 짐 헤캣 CEO는 올해 선보여진 신형 GT500을 소개하며 “쉘비가 이 차를 본다면 아주 기뻐할 것”이라고 그를 추모한 바 있다.

영화 포드V페라리 속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 그는 창업자 헨리 포드의 손자다.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 그는 창업자 헨리 포드의 손자다 (사진=월트디즈니)

# 르망 우승 후 포드는...

포드는 1960년대 르망 우승과 머스탱의 성공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성장세를 이어간다. 회사는 북미 지역을 넘어 유럽으로 사세 확장에 나섰다.

1967년 포드는 영국, 독일, 아일랜드 지사를 합병하고, 유럽 현지 생산 체계를 확립한다. 유럽 포드의 탄생이다. 회사는 1970년대 코티나, 그라나다, 피에스타, 에스코트 등을 선보인다. 포드는 유럽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며 유럽 사업의 밑바탕을 마련한다.

포드는 1970~80년대 아시아 지역으로 손을 뻗는다. 1979년 마쓰다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1986년에는 기아자동차(당시 기아산업)의 지분을 사들이며, 아시아 지역 내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포드는 1989년부터 애스턴마틴,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등을 그룹에 합류시키지만, 2007년 금융위기를 맞고 순차적으로 브랜드를 매각했다.

리 아이아코카(좌. 존 번탈)와 엔초 페라리(레모 기론)의 첫 만남.(영화 포드V페라리)
리 아이아코카(존 번탈)와 엔초 페라리(레모 기론)의 첫 만남 (사진=월트디즈니)

# 그리고 페라리는...

영화 속에서는 포드와 페라리 간 협상이 무산됨과 동시에 피아트가 인수에 참여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피아트가 페라리 인수 절차에 나선 건 1969년 포드가 마지막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다. 그해 피아트는 페라리의 지분 50%를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1988년 지분율을 90%로 확대한다. 페라리는 이 기간 피아트의 투자를 바탕으로 생산 시설과 라인업을 확대한다.

프런트 V12 배치 방식이 주력이었던 페라리 엔진 구조도 바뀐다. 1968년 엔초 페라리의 아들 디노 페라리가 미드십 모델를 고안하면서부터다. 엔진라인업도 V8과 V6 등으로 확대한다. 미드십 V8 라인업은 이후 페라리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1989년 공개된 닷지 바이퍼 콘셉트. 1991년 캐롤 쉘비가 양산형의 주행을 처음 공개했다.
1989년 공개된 닷지 바이퍼 콘셉트. 1991년 캐롤 쉘비가 양산형의 주행을 처음 공개했다. (사진=FCA)

#리 아이아코카, 캐롤 쉘비와 다시 만나다.

포드를 르망24로 이끈 리 아이아코카 부사장은 포드 회장직까지 올라가지만, 헨리 포드 주니어와의 갈등으로 1978년 회사에서 해고된다. 

몇 달 후, 그는 크라이슬러 회장직으로 자리를 옮겨 파산 직전에 빠진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킨다. 크라이슬러의 히트작이었던 ‘K카’, ‘퍼시피카’가 선보여진 것도 이 시기며, 1984년에는 24억 달러(한화 약 2조7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다. 1987년 크라이슬러는 지프와 람보르기니를 인수하며 사세도 확장한다.

크라이슬러가 궤도에 오른 1988년 당시 제품담당 부사장이었던 밥 루츠는 캐롤 쉘비를 만나 ‘코브라 부활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당시 그가 제안한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도 생산된 ‘닷지 바이퍼’로, 아이아코카는 관련 계획을 1990년 승인한다. 1991년 캐롤 쉘비는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에 바이퍼를 몰고 등장해 자동차 역사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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