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김상영] 메르세데스-벤츠의 트루먼쇼
  • 독일 임멘딩겐=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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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4 10:30
[주간김상영] 메르세데스-벤츠의 트루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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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스프린터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성지인 슈투트가르트에서 남쪽으로 달렸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수많은 주황색 지붕은 금세 사라졌고, 끝없는 밀밭이 펼쳐졌다. 그 너머에는 수많은 동화를 탄생시킨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가 보였다.

독일 남서부에서 스위스 국경까지 160km 가량 뻗어 있는 이 거대한 숲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Donau)’ 강의 발원지기도 하다. 이 강을 따라가면 인구 6천명의 작은 도시 ‘임멘딩겐(Immendingen)’이 나온다. 특산물조차없는 임멘딩겐이 독일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미래적인 도시로 변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독일 육군 훈련소였습니다.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어요. 탱크를 손보던 곳에서 메르세데스-벤츠를 검사하고 있죠. 건물 뿐만 아니라, 이곳에 살던 동물이나 생물도 계속 지켜갈 겁니다. 도로 위로 사슴이 지나다니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죠.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을 보셨나요? 독일 환경부와 자연보호단체에서 수시로 나와 이곳의 생태계를 조사합니다.”

동물과 곤충, 꽃과 숲에 대한 얘기가 한참 이어졌다. 설명을 들으며 버스 창밖을 보고 있으니, 마치 시티투어 같았다. 물론, 시티투어 버스가 승객을 가득 태운채 경사진 오벌 트랙을 최고속도로 달리진 않겠지만. 임멘딩겐 테스트 & 테크놀로지 센터는 개방성과 투명성을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다임러그룹의 극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곧 공개될 GLB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내년에 출시되는 신형 S클래스의 테스트도 한창이었다.

다임러그룹은 이미 전세계 곳곳에 다양한 ‘프루빙 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지만,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전문 시설이 필요했다. 다임러그룹은 자율주행, 커넥티드, 공유 및 서비스, 전동화 등을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으며, 임멘딩겐 테스트 & 테크놀로지 센터는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신기술을 마음껏 테스트할 수 있는 거대한 세트장이다. 마치 ‘트루먼 쇼’처럼.

임멘딩겐 센터의 전체 면적은 600헥타르가 넘는다. 여의도의 두배 정도 되는 크기다. 센터 안의 총 도로 길이는 68km에 달하며, 30여개의 각기 다른 코스로 구성됐다. 4km에 달하는 오벌 트랙, 4.7km에 달하는 핸들링 서킷, 7.1km에 달하는 비포장 도로, 사륜구동 테스트를 위한 오프로드 등 다양한 도로 환경이 구축됐다. 시멘트 도로와 콘크리트 도로, 터널 조명, 도로 이음새 등도 치밀하게 계산해 코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승용차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의 트럭까지 이곳에서 테스트합니다. 지금 보고 계신 코스는 ‘버사 영역(Bertha Area)’라고 하는데, 자율주행과 관련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합니다. 평평한 아스팔트의 면적은 축구장 10개 만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죠. 까다로운 도로 환경을 만들어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과 자율주행 기술을 세밀하게 검사할 수 있습니다.”

다임러그룹은 바덴뷔르템부르크州에서 약 120개 지역에 대한 검토 과정을 거쳤고, 2011년 부지를 임멘딩겐으로 결정했다. 주민들은 열렬히 환호했다고 하고, 2015년 기공식 때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참석했다. 2016년 9월 ‘비포장 트랙을 처음 공개했고, 그때부터 테스트 모듈을 가동했다. 아직 모든 시설이 완공되진 않았다. 여전히 아스팔트를 깔고 있는 구간도 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한시간 가량 임멘딩겐 테스트 & 테크놀로지 센터의 구석구석을 돌았다. 그럼에도 모든 시설을 둘러보진 못했다. 자율주행에 있어서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보다 도심이 더 난이도가 높은데, 이곳에는 도심을 완벽하게 재현한 시설도 있다. 움직이는 보행자와 차량 더미가 트래픽을 만들고, 신호등, 횡단보도, 거리 주차 상황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

나라 마다 도로 형편이 다르고, 표지판, 신호 체계 등도 다르다. 독일에서 만든 자율주행차가 다른 나라에서도 안전하게 달리기 위해서는 그 지역 도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임러그룹은 미국, 일본,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위스 등의 도로를 임멘딩겐 테스트 & 테크놀로지 센터에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도로 폭, 차선의 형태나 색상, 가드레일 등까지 완벽했다. 다임러그룹은 이런 완벽한 환경 구축을 위해 2억 유로(약 2682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임멘딩겐 테스트 & 테크놀로지 센터 시설 답사를 마치고, 연구진들이 이용하는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커다란 식판에 원하는 샐러드를 담고, 메인 메뉴를 고르고, 후식과 음료수를 차례차례 올렸다. 마치 자율주행차 레벨을 단계별로 높여가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 전날 시승했던 ‘더 뉴 GLC’는 방향지시등 조작만으로도 고속도로에서 스스로 차선을 옮겼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준비된 자의 미래는 슬며시 현재로 시간을 거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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