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뛰어난 국물’과 ‘낯선 건더기’로 디자인된 팰리세이드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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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11 10:42
[Erin 칼럼] ‘뛰어난 국물’과 ‘낯선 건더기’로 디자인된 팰리세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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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찌개 류에는 국물과 건더기가 있습니다. 물론 건더기의 중요성도 무시 못하지만 찌개의 맛을 좌지우지 하는 건 결국 국물이지요. 잘 끓여낸 육수와 균형 잡힌 조리법으로 국물의 깊이와 간을 맞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국물이 끝내준다면, 거기에 양파를 넣든 파프리카를 넣든 어지간한 건더기를 넣어도 맛있을 것입니다.

자동차 디자인도 얼핏 요리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요리에서의 국물에 해당하는 작업과, 건더기의 역할을 맡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물론 엄연히 따지자면 이 둘이 무 자르듯 나뉘어있지 않고 서로의 완성도에 영향을 주는 유기적인 관계입니다만, 오늘은 디자인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소 인위적으로 국물과 건더기를 나누어 표현하겠습니다.

국물이 엉망인데 건더기로 맛을 내보려는 디자인이 있는 반면, 국물과 건더기 모두 훌륭한 디자인이 있지요. 또한 당연한 이야기지만 요리에서나 디자인에서나 국물 즉, 기초를 잘 만들어 놓는 것이 어려운 법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자동차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 모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 말입니다. 차체 크기나 포지션에 비해 비싸지 않은 가격도 호평의 큰 이유이지만 이 차의 디자인 또한 ‘불호’ 보다는 ‘호’쪽의 여론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팰리세이드는 분명 매우 낯선 디자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이 낯선 자동차의 경우 대부분 출시초기 평판이 좋지 않은 법입니다. 낯설기 때문에 충분히 보아서 눈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편안하지 않게 느껴지니까요. 그러다가 많이 보아 나의 뇌에 적응이 되어 편안해지면, 비로소 평판이 바뀌는 것이죠.

아반떼 MD도 출시초기 너무 나갔다며 비판 받다가 나중에는 호평으로 바뀌었고, 이번 스포티지도 여론의 흐름이 비슷했으며 수입차로는 렉서스가 초창기의 강한 비판을 뛰어넘고 점차 사람들의 눈에 익숙해지며 평판이 괜찮아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낯설고 새로운 디자인이라고 무조건 이들과 같은 흐름을 타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처음에는 비판 받다가 익숙해지면 호평 받게 되는 것이 아니지요. 끝까지 낯설고 이질적인 차로 비판만 받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좌=쌍용 로디우스, 우=폰티악 아즈텍

그런 사례로는 국내외에서 대략 이정도 차가 떠오릅니다. 아직까지도 희대의 못생긴 디자인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안타까운 차들입니다. 그렇다면, 낯설고 이질적인데도 결국에는 칭찬받는 디자인과, 끝까지 외면 받는 디자인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여기서 다시 서두에 언급했던 국물과 건더기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요리에서 국물이 깊고 균형감 있어 맛이 있다면 조금 특이한 건더기를 넣어도 맛있는 법입니다. 자동차 디자인에서의 국물은 보디 자체의 기본형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 길이에서 보닛과 탑승공간의 비율, 앞 뒤 바퀴 사이 위치의 균형감, 각종 굴곡에서 오목볼록의 정도, 벨트라인(창문과 보디 사이 경계선) 하단과 상단 간의 밸런스 등등 기본형상은 각종 비율과 양감으로 완성됩니다. 이러한 기본형상의 조형미가 아주 뛰어나다면 그 위에 얹혀지는 헤드램프나 테일램프, 그릴과 캐릭터라인 등의 건더기가 다소 도발적이어도 수긍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안타까운 디자인의 대명사, 로디우스의 경우 오히려 보디에 얹혀져 있는 건더기적 요소들은 크게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그릴은 지금 봐도 다소 특이합니다만) 헤드램프, 테일램프, 차체의 캐릭터라인 자체는 그리 낯설거나 이상한 모양이 아니지요. 그런데 이 차의 경우 국물이 문제였습니다. 기본형상에서 각종 균형감이나 조형미가 너무 엉망이었습니다. 미니밴이기 때문에 실내공간 최우선으로 설계하다 보면 시각적 조형미는 다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만, 실내공간과 상관 없는 부분에서의 균형미와 라인들도 모두 하나같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굉장히 떨어지는 밸런스와 부자연스러운 곡선들로 기본형상의 조형미가 엉성하기 때문에 이미 출발부터 멋 없게 시작한 것이죠. 이 위에 그 어떤 아름다운 건더기를 올려도 살려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팰리세이드의 건더기는 우리가 악평을 퍼붓는 로디우스나 심지어 아즈텍보다도 더 낯섭니다. 각자의 헤드램프들만 떼어놓고 보면 팰리세이드의 것이 더 기괴해 보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자동차디자인에서는 처음 보는 헤드램프 생김새지요. 이런 헤드램프가 이상한 조형미 위에 얹혀진다면 악평이 쏟아지기 딱 좋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팰리세이드는 국물이 매우 좋습니다. 기본형상의 기초적인 조형미가 아주 뛰어나지요. 큰 차임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하나의 덩어리감이 돋보이고 균형감이 훌륭합니다. 기본국물의 육수가 맛있기 때문에 헤드램프나 테일램프 등의 건더기를 처음 보는 매우 낯선 것으로 얹어 넣어도 만족스럽게 느껴진 것입니다.

점잖은 기본형상과 익숙한 요소들로만 채워 비슷해 보이는 차가 많았던 NF쏘나타

물론 국물 격인 기본형상과 그곳에 얹을 건더기적 디자인 요소들 모두를 익숙한 완성도와 모양으로 채운다면 가장 안정적인 결과물을 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디자인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비슷해진다는 것이죠. 그렇게 안정적인 조건들로만 채우는 것은 이미 수 많은 회사의 수 많은 제품에서 시도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요즘 ‘다른 차와 비슷하지 않고 완성도도 높은 디자인’으로 출시된 차들을 보면 하나같이 이런 방법으로 디자인된 경우가 많습니다. ‘뛰어난 국물, 낯선 건더기’로 말이죠.

조형미가 뛰어난 기본형상으로 완성도를 뽐내고, 그곳에 얹혀놓은 낯선 건더기로 누구와도 닮지 않은 정체성을 내세우는 것이죠.

특히나 한동안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제가 보기에는 다소 황당한) 표절논란에 휩싸여왔기 때문에 다른 차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에 노이로제를 가지고 있을 법한 현대자동차가 이런 방법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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