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볼보 신형 V90 CC로 본 '왜건의 생존 전략'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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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19 14:09
[이완 칼럼] 볼보 신형 V90 CC로 본 '왜건의 생존 전략'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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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1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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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자동차의 대명사인 왜건이 SUV의 강력한 인기 앞에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왜건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독일에서도 SUV에 시장의 주도권을 내준 지 꽤 됐지요.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돼 SUV와 왜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선 잊힌 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믿었던 유럽 시장에서까지 이처럼 SUV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을 보면서 왜건을 아끼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자연스럽게 왜건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고, 그래도 꽤 한동안은 왜건과 SUV가 공존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 가운데, 최근 볼보가 공개한 V90 크로스 컨트리(이하 V90 CC)를 통해 아쉬움과 생존 가능성을 함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상고를 높여라

왜건이 SUV에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승용차의 안락함과 주행 안전성입니다. 반대로 SUV의 가장 큰 장점으로 많은 운전자가 넓은 시야 확보를 꼽고 있죠. 그리고 왜건과 SUV 모두 넓은 적재공간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V90 CC 같은 크로스오버 모델은 이런 왜건 장점과 SUV의 장점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V90 CC / 사진=볼보

사실 볼보 V90 CC 외에도 여러 왜건 변형 모델이 있죠. 아우디는 A4와 A6에 올로드 콰트로 라인업을 구축해 놓고 있고, 폭스바겐은 골프와 파사트에 올트랙이란 이름으로, 오펠은 인시그니아에 컨트리 투어러, 푸조는 508 RXH, 그리고 볼보는 크로스 컨트리라는 이름을 붙인 왜건 변형 모델을 생산합니다. 그런데 볼보 V90 CC를 제외하면 모두 최저지상고가 기대만큼 높지 않습니다. 

아우디 A6 올로드 콰트로 : A6 아반트 대비 지상고 31mm ↑
오펠 인시그니아 컨트리 투어러 : 인시그니아 스포츠 투어러 대비 지상고 20mm ↑
파사트 올트랙 : 파사트 바리언트 대비 지상고 27mm ↑
푸조 508 RXH : 푸조 508 SW 대비 지상고 50mm ↑
볼보 V90 CC : V90 대비 최저 지상고 65mm ↑
▲ V90과 V90 CC 높이 비교 / 사진=볼보

V90 CC의 바닥 높이가 V90에 비해 65mm가 높다는 건 일반 왜건보다 넓은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V90 CC의 최저 지상고는 바닥으로부터 218mm가 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푸조가 내놓은 신형 SUV 5008의 최저 지상고 (236mm)와 비교해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입니다.

1979년 처음 소개돼 1987년까지 생산됐으며, 풀타임 사륜 온오프 겸용 왜건 시조로 불리는 AMC ‘이글’은 자그마치 지상고가 세단에 비해 76mm나 높았습니다. ‘이글’은 당시 픽업트럭이나 오프로더의 껑충함이 불편한 이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더불어 세단의 장점도 유지하고 있다는 평도 들으며 나름 선전을 펼쳤습니다.

▲ 1983년형 이글 / 사진=favcars.com

이런 ‘이글’이 보여줬던 경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판매되고 있는 왜건 변형 모델들에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칫 높이만 강조하다 세단의 장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최적의 포인트를 찾는 게 중요할 텐데요. 지상고를 높이면서 주행의 장점을 일정 수준 유지할 수만 있다면 크로스오버 모델로 존재감을 분명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 XC70의 지상고 (세단 S80 대비 60mm ↑)보다 더 차이를 둔 V90 CC는 이글이 보여준 파격에 가장 근접한 모델이 아닐까 합니다.

# 스타일에서 자기 색을 드러내자

V90 CC가 높은 지상고를 통해 V90과 차이를 둬 SUV의 장점을 끌어 왔다면 반대로 스타일에서 확실한 변별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새로운 패밀리룩을 입고 나온 90 시리즈가 이전에 사랑받았던 XC70가 V70와 스타일에서 확연한 차이를 뒀던 전략이 신형 V90 CC에도 잘 적용됐다면 훨씬 더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 V70와 V70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CUV 모델 XC70 / 사진=볼보

볼보의 90 라인업이 세련된 스타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V90 CC가 온오프 겸용이라는, 그리고 크로스오버라는 컨셉트에 맞게 조금만 더 과감함을 발휘했다면 오히려 V90 CC는 보다 독립된 영역을 구축한 채 XC90와 V90 사이에서 새로운 선택지로 훨씬 많은 관심을 받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볼보 이외에 이처럼 지상고를 높이고 스타일에서 차별화를 두려 노력한 브랜드를 꼽자면 푸조도 포함될 수 있을 텐데요. 역시 지상고나 스타일에서 조금 더 변화를 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508 SW와 RXH, 그리고 신형 SUV 5008 스타일 비교 / 사진=푸조

지금까지 볼보가 내놓은 V90 CC를 중심으로 왜건의 생존 전략을 고민해 봤는데요.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두 바퀴 굴림형 온오프 왜건의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현재는 거의 모든 온오프 겸용 왜건이 사륜구동 방식으로만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죠. 여기에 두 바퀴 굴림형이 추가된다면 구매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SUV와의 경쟁을 다각도로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왜건의 시대가 저물어 갑니다. 그리고 현재는 SUV가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오프 겸용 왜건은 왜건 생존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보다는 좀 더 과감해야겠죠. 지상고도 세단의 장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올리고, 스타일도 기본형 왜건과는 선명하게 차이를 두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단의 장점과 SUV의 장점을 잘 믹스한 존재로 거듭난다면 소비자에겐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제조사에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경쟁력 있는 차종을 선보이는 효과가 발생하게 될 겁니다. 지금처럼 왜건의 파생모델이라는 미미한 존재감으로는 맥없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온오프 겸용 왜건들의 과감한 변화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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