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 협회 IIHS(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가 새로운 시험 기준을 발표했다. 부분 자동화 안전 등급(Partial automation safeguard ratings)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자동차에 탑재된 ADAS 기능을 평가했다. 지금까지 운전자 보조 시험은 사고를 얼마나 잘 피해주는지를 평가했다면 IIHS의 부분 자동화 안전 등급은 운전자를 얼마나 운전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향후 자동차 안전 기능 개발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자동차는 운전자에게 운전 중 딴짓을 하지 못하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경고할 예정이다

IIHS가 처음 도입한 시험답게 결과는 처참했다. 거의 모든 차종이 최악 점수인 Poor를 받았다. 렉서스 LS가 유일하게 Good 다음 등급인 Acceptable을 받았다. GMC 시에라, 닛산 아리야가 Marginal로 최악 점수는 면했다. BMW X1, 제네시스 G90,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테슬라 모델 3, 볼보 S90 모두 체면을 구겼다.

이와 같은 점수가 나온 이유는 ADAS 시스템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ADAS 테스트는 위험을 얼마나 잘 인식하는지, 운전자를 얼마나 돕는지, 사고를 얼마나 피해주거나 사고 충격을 최소화해 주는지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운전자 보조 기능이 강력할수록 운전자가 딴짓 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사고 책임은 100% 운전자에게 있다.

하지만 IIHS는 ADAS 시스템의 운전 주도권이 강할 경우 오히려 운전자가 딴짓하는 등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데이비드 하키 IIHS 회장은 “자동차의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불행한 현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서 “최근 부분적인 자동화 시스템이 장거리 운전 시 운전자 부담을 덜어주는 것 같지만 운전 자체를 더 안전하게 만든다는 증거는 없다”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시스템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IHS의 새로운 시험은 크게 7가지로 나뉘어 진행했다. 이를 위해 총 15가지 시험을 개발했다.

# 운전자 모니터링

야구모자를 쓰고 무명천으로 얼굴까지 가린 모습. 사람이라는 것은 인지하지만 운전에 집중하는지 확인하는 용도다.

운전자 모니터링 시험은 15종 시험 중 8가지를 진행할 정도로 IIHS에서 공을 들였다. 암막천을 이용해 운전자 모니터링 카메라를 가리는가 하면 야구모자로 얼굴을 가리거나 천으로 얼굴을 덮고 시험까지 진행했다.

이 시험에서 최고 점수인 Good을 받은 모델은 단 한대도 없었다. 그만큼 IIHS의 시험이 까다롭기도 했지만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다.

# 어텐션 리마인더

운전자가 딴짓을 하면 시각, 청각, 촉각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운전에 집중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운전자가 딴짓을 하면 시각, 청각, 촉각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운전에 집중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텐션 리마인더 테스트는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하지 않을 때 어떻게 경고해 주는지를 확인했다. 계기판을 통한 시각적인 경고를 시작으로 스티어링 진동을 통한 촉각, 경고음과 같은 청각 경고를 비롯해 안전벨트를 잡아당기거나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운전자를 놀라게 만들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해제한 후 속도까지 줄여주는 등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모든 과정이 20초 이내로 작동하면 최고 점수인 Good을 받을 수 있다.

이 시험에서 렉서스 LS와 GMC 시에라, 포드 머스탱 마하-E만 Good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 대부분 Poor 점수를 받았는데, 그만큼 제조사에서 운전자 경고를 소극적으로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긴급상황 절차

주행 중 운전자가 어떠한 반응을 하지 않으면 차를 멈춰주고 긴급 연락을 해줘야 한다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자동차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시험했다. 어떠한 경고에도 운전자가 반응하지 않으면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자동차 스스로 속도를 줄여 멈춘 후 긴급 전화나 문자를 응급실이나 제조사에 해야 한다. 혹시 잠든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ADAS 시스템도 잠겨야 한다. 이러한 모든 기능을 완벽히 수행해서 Good 등급을 받은 모델은 GMC 시에라가 유일했다.

# 레인 체인지

차로 변경 기능은 운전자가 확실한 조작을 했을때 도와야 한다. 스스로 차로를 변경하면 안된다.

차로 변경 시험도 진행했다. 자동차 스스로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주위를 확인한 후 직접 조작을 했을 때 도와주는 정도만 작동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자동으로 차로를 바꿔주는 기능 자체가 운전자의 부주의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험에서는 자동으로 차로를 변경해 추월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테슬라 FSD와 지엠 슈퍼 크루즈 탑재 모델이 Poor를 받았고 나머지 모두 Good 등급을 받았다.

#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재출발

정차 및 재출발 기능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제되어야 한다. 졸음 운전을 막기 위해서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재출발 시험도 한다. 가다 서다 반복하는 환경에서 이 기능만 활성화해 놓고 졸음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은 어댑티브 크루즈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정차 후 2분을 기다린 뒤 재출발 여부를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정차 후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지 않을 때 다시 재출발이 가능한지 여부도 확인했다. 모두 자동차 스스로 재출발을 해서는 안된다. 대부분 모델이 Good 점수를 획득했지만, 정차 후 재출발을 무제한으로 지원하는 BMW X1과 테슬라 모델 3는 Poor를 받고 말았다.

# 차로 중앙 유지 조향 보조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은 한쪽 차로로 가까이 붙은 상태를 유지한 후 차량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했다.

차로 중앙 유지 시험도 얼마나 운전의 주도권이 운전자에게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했다. 주행 중 운전자가 인위적으로 오른쪽 차선을 향해 움직인 후 5초 이상 유지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시험이다. 손을 놨을 때 차량이 스스로 다시 차로 중앙으로 부드럽게 복귀하거나 한쪽 차선에 가까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주행해야 한다. 자동차가 운전자에게 주도권을 넘기지 않거나 기능이 해지되면 Poor를 받는다. 거의 모든 모델이 Good 등급을 받았지만, 자동차 스스로 운전하려는 성향이 강한 GM 슈퍼 크루즈나 테슬라의 주행 보조 기능들은 Poor를 받았다.

# 안전 기능

ADAS 기능 설정 후 운전자가 안전벨트를 풀면 모든 기능이 해제 되어야 한다

마지막 테스트는 안전 기능이 얼마나 탑승자 중심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평가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고 달리고 있는데 부분 자동 주행 기능이 활성화되는지, 반대로 부분 자동 주행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안전벨트를 풀어 보기도 했다.

또, 긴급 제동 시스템을 작동하지 않게 만들어두고 부분 자동 주행이 가능한지, 차선이탈 보조 기능을 비활성화 시켜놓고 부분 자동 주행이 가능한지도 봤다. 반대로 부분 자동 주행으로 달리고 있을 때 인위적으로 긴급 제동이나 차선이탈 보조 기능을 비활성화 시켰을 때 작동 여부까지 확인했다.

마지막 시험도 거의 모두가 Poor를 받았다. 렉서스 LS와 GMC 시에라, 닛산 아리야 정도만 Good을 받은 정도다.

이번 IIHS의 시험 결과는 현재 레벨 2 수준의 ADAS 기능이 어디까지나 운전자를 보조해 주는 기능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먼 ADAS 기능이지만 소비자들에게 마치 자율주행 기능처럼 광고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시험으로 모든 사고의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는 레벨 2, 반대로 부분 자율주행 중 사고가 발생하면 제조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 레벨 3의 성격이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IIHS가 도입한 시험은 2022년 ADAS 관련 새로운 평가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지 2년 만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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