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켄보 600, “패러다임의 변화, 또는 시기상조”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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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2.07 22:26
[시승기] 켄보 600, “패러다임의 변화, 또는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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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웠다. 별다를게 없었다. 나름 잘 나가고, 잘 돌고, 잘 섰다. ‘머리’로는 중국차의 발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걸까, 난 이런 당연한 것에 놀라기 시작했다. 바퀴라도 하나 빠지길 기대했지만, 그런 ‘특종’은 없었다. 긴박함의 연속일 것 같았던 시승이 너무 평탄하게 진행되다 보니, 김이 푹 빠졌다. 

강변북로를 달리는 켄보 600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도로를 달렸던 차처럼 익숙하게 대열에 합류했다. 교통 흐름이 빨라질 때도 뒤처지지 않았고 함께 피치를 높였으며, 굽이진 구간도 능숙하게 통과했다. 과속단속 카메라를 앞두고 속도가 급격히 줄어드는 구간에서도 켄보 600은 흔들림이 없었다.

1.5리터 터보 엔진은 기대보다 더 경쾌했다. 사실 중국은 환경을 위한 엔진 다운사이징이라기 보단, 금전적인 문제가 더 크다. 배기량이 1.6리터 이하인 차에 대해 기존 10%에서 5%로 취득세를 줄였다. 결국 반강제적인 다운사이징 정책으로 가솔린 엔진의 배기량을 낮추고, 터보 차저를 달았지만 허술한 느낌은 크지 않았다. CVT 변속기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지만, 엔진은 쌩쌩했다. 실내를 울리는 소음과 느린 반응을 꾹 참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게 되면 -신속한 편은 아니지만- 속도는 꾸준하게 올랐다. 딱 147마력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변속기였다. 베이징자동차(BAIC)는 CVT 변속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상용차 최초로 CVT 변속기를 도입한 네덜란드 ‘DAF’의 자회사 ‘펀치 파워트레인(Punch Powertrain)’의 CVT 변속기가 탑재됐다. 

펀치 파워트레인은 벨기에 회사다. 2000년대 중반, 현대차와 기아차에 변속기를 납품하기도 했다. 현재는 중국에 집중하고 있다. 베이징자동차 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국 브랜드가 CVT를 사용하고 있는데, 펀치 파워트레인은 중국의 20여개 브랜드에 변속기를 납품하고 있다.

중국에 시선이 집중되다 보니, 경쟁력이 조금 떨어진 것은 아닐까. 닛산, 혼다 등이 사용하고 있는 최신 CVT 변속기와는 차이가 컸다. CVT 변속기에 대한 연구가 거듭되면서 일본 브랜드는 마치 자동변속기와 유사한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엔진회전수를 고정시키고 속도를 높여가던 오래전 CVT 변속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기어가 없는 변속기인데, 마치 기어가 있는 것처럼 직결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에 반해 켄보 600의 변속기는 원초적인 CVT의 모습이었다. 반응도 무디고, 엔진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옛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속 충격이 없어 전반적인 주행이 부드럽긴 했지만, 순간적인 가속이 필요할땐 답답함이 생겼고, 꾸준한 가속에서는 높은 엔진회전수 탓에 음악의 볼륨을 크게 높여야 했다. 효율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덩치는 현대차 투싼보다 크지만, 파워트레인은 한등급 낮은 B세그먼트 SUV에 적합한 수준이었다. 1.6리터 터보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조합된 투싼 1.6T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고, 티볼리 1.6과 얼추 비슷한 수준이었다. 

기대치가 ‘제로’였기 때문이었을까,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대로 정직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놀랍기까지 했다. 속도에 따라 점차 무거워지는 것도 이질감이 적었고, 무엇보다 직진을 잘했다. 안정감이 꽤 높았고, 나중엔 신뢰감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코너에서 무리하게 속도를 높여도 전자장비가 비교적 매끈하게 자세를 되잡아줬다.

대책없이 물렁할 것만 같았던 서스펜션은 오히려 단단했다. ‘미국’이 아닌 ‘유럽’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아직 숙성이 부족했다. 단단하기만 할 뿐, 탄력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불필요한 노면 정보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아이들링 상태에서의 높은 엔진회전수와 여과 없이 실내로 침입하는 엔진 소음, 언덕에서만 작동되는 오토홀드 등 여러 불편이나 이해하기 힘든 일도 일부 있었지만, 전반적인 주행성능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외부 철판 금형, 실내 소재 및 마감, 플라스틱 사출성형 등에 대한 개선은 더 필요해 보였다. 수입차라고 생각하면, 2099만원의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국산차와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중국은 여전히 폐쇄적이다.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도 -예전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그대로다. 10억명이 넘는 인구, 굳이 전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아쉬웠던 것은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들.

중국의 토종 브랜드와 짝을 짓지 않으면 광활한 대륙에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중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배짱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택도 없을 일이지만, 콧대 높고, 고상한 유럽의 오랜 자동차 브랜드들은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중국에 입성했다.

합작사를 통해 습득한 기술이 중국차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중국차의 차체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안전장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유로 NCAP에서 ‘가장 안전한 소형차’로 중국차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켄보 600만 해도 차체의 60% 가량이 고장력 강판으로 제작됐고, 6개의 에어백과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 등이 탑재됐다. 중국 신차안전도 평가에서 현대·기아차와 동등한 수준의 안전성을 기록하기도 했다. 

‘가짜 계란’도 만드는 중국이지만, 중국 현지에서도 빠르게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고, 의식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의 대도시만 가도 그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 생명에 대한 존귀함 등 부족했던 인식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

중국도 세계적인 안전 기준을 무시할 순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자동차 안전은 중요한 홍보 수단- 켄보 600의 안전을 크게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설계나 생산 등의 숙련도, 수많은 현지 부품 업체의 실력과 성실함, 양심 등은 아직 쉽게 믿음이 가질 않는다.

알게 모르게 국산차의 완성도가 우리들의 눈높이를 크게 높였고, 독일차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켄보 600이 한없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차는 이미 장족의 발전을 거뒀고, 누구보다 빠르게 더욱 완성도를 높일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중국차가 ‘시기상조’로 느껴질 수 있지만, 막을 수 없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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