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파일롯 스포츠는 고성능 타이어계의 교과서 같은 존재다. 고출력 자동차를 타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거쳐갈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쉐린의 인기 제품이 전기차 전용 타이어로 태어났다. 고성능 전기차를 위한 타이어는 어떤 느낌일까. 미쉐린코리아가 새롭게 출시한 '파일롯 스포츠 EV'를 체험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를 찾았다.

사진=미쉐린코리아
사진=미쉐린코리아

먼저 전기차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20% 이상 무겁다. 엔진과 변속기가 빠졌지만, 더 무거운 배터리와 전기모터가 들어선다. 무게가 늘어난 만큼 코너링 시 횡력도 증가하며 이는 곧 타이어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초기 반응은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다. 전기모터 특성상 출발부터 100%의 최대토크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타이어의 하중은 커지고 마모는 빨라지게 된다.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EV=미쉐린코리아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EV=미쉐린코리아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쉐린은 다양한 신기술을 선보였다. 내마모성을 높인 고강도 컴파운드를 사용해 내구성을 잡았으며,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구름저항을 최소화한 신규 패턴 디자인을 채택했다. 미쉐린 자체 연구에 따르면 패턴 개선을 통해 일반 타이어보다 주행거리를 10% 이상 향상했다.

전기차는 엔진이 빠지면서 실내 공간이 더 조용하다. 외부 소음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를 위해 '미쉐린 어쿠스틱' 기술도 탑재했다. 특수 설계 폴리우레탄 폼을 장착해 타이어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20% 줄였다.

사진=미쉐린코리아
사진=미쉐린코리아

본격적으로 달려볼 차례다. 체험에는 메르세데스-AMG 전기차가 마련됐다. 먼저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EV를 장착한 메르세데스-AMG EQS 53를 타고 드래그 레이스에 나섰다.

EQS 53은 두 개의 전기모터를 통해 최고출력 660마력, 최대토크 96.8kgf·m의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 가속 시간은 3.8초에 불과한데, 2590kg의 무게를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떨리는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먼저 빠른 가속력을 경험하기 위해 런치 컨트롤 기능을 활용했다. 사용법은 매우 간단하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체결한 뒤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 페달을 동시에 강하게 밟으면 준비가 끝난다.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EV를 장착한 메르세데스-AMG EQS 53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EV를 장착한 메르세데스-AMG EQS 53

초록불이 켜짐과 동시에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빠르게 뗐다. 엄청난 가속력에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아직 시작도 안한 것 같은데 순식간에 감속 지점에 도달한다. 생각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다시금 출발선에 섰다. 이번엔 차보다는 타이어에 집중할 차례다. 다시금 런치 컨트롤을 시도했다.

한 치의 스키드음도 없이 아주 깔끔한 출발이다. 육중한 무게의 전기차는 마치 탄도 미사일처럼 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파일롯 스포츠 EV는 600마력이 넘는 출력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냈다. 제동 능력 역시 수준급이다. 시속 150km/h가 넘는 상황에서 풀 브레이킹을 시도했는데, 좌우 흔들림 없이 아주 깔끔하게 멈춰섰다.

이번엔 EQE 53을 타고 서킷을 달려볼 차례다. EQS 53보다는 약 35마력 낮은 625마력이지만, 정지상태에서 100km/h 가속 시간은 0.3초 더 빠르다. 무게는 살짝 가벼운 2555kg다. 서킷 체험은 스피드웨이 트랙 절반 구간을 인스트럭터의 속도에 맞춰 팔로우 주행하는 방식이다. 페이스가 빠르지 않아 가속 능력보다는 코너에서 파일롯 스포츠 EV의 접지력을 확인하기에 좋다.

꽤나 거칠게 코너에 진입했는데도 그 흔한 스키드음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아직도 타이어의 한계는 한참 멀었다는 뜻이다. 무거운 무게에 분명 언더스티어가 날 법도 한데, 체험 주행의 페이스로는 어림도 없다. 흔히 말하는 '쫀득한' 그립력이 절로 느껴진다. 그저 차와 타이어를 믿고 차를 이리저리 요리하면 된다.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마다 즐겁다.

2.5톤에 달하는 거구를 달래는 데에는 튼튼한 사이드월도 한몫한다. 미쉐린도 "파일롯 스포츠 EV는 무거운 전기차의 퍼포먼스를 받치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은 인스트럭터의 시범 주행이다. 이번엔 EQS 53의 조수석에 올라 스피드웨이 전체 코스를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렸다. 역시나 프로의 주행은 다르다. 매 코너마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직접 달렸던 서킷 주행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다. 엄청난 횡가속력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타이어의 안정적인 그립만큼은 선명하게 와닿았다.

약간의 멀미와 함께 짜릿한 택시 주행이 끝났다. 내리고 보니 EQS 53의 브레이크에서 열이 풀풀 나고 있다. 열정적으로 달렸다는 증거다. 타이어를 만져보니 적당히 열이 올랐다. 인스트럭터는 "타이어는 아직 마진이 남았지만, 이대로 달린다면 브레이크가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태연하게 말했다.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EV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EV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내연기관차에도 전기차용 타이어를 장착하면 좋지 않을까? 답은 '아니오'다. 미쉐린 관계자는 "파일롯 스포츠 EV는 파일롯 스포츠 4S와 유사한 성능을 발휘한다"면서도 "젖은 노면 등 일부 조건에서는 성능 차이를 보일 수 있는 만큼, 내연기관차는 파일럿 스포츠 4S 장착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파일롯 스포츠 EV는 미쉐린의 포뮬러e 8년 참가 노하우가 녹아들었다. 이들만큼 고성능 전기차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곳이 있을까. 스포츠 타이어계 교과서, '파일롯 스포츠' 시리즈를 이을 EV 전용 퍼포먼스 타이어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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