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주행거리와 관련해 업계의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인증 방식 및 절차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데, 그 결과가 일관적이지 않아 소비자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전기차를 출시하기 전 시험 중인 모습. 사진은 BMW i5.
전기차를 출시하기 전 시험 중인 모습. 사진은 BMW i5.

한국의 주행거리 인증이 보수적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럽(이하 WLTP)에서는 500km 넘게 인증받은 모델이 국내에서는 300km대로 떨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충전이 불편한 전기차의 특성상, 실제 운전 환경에 가깝게 주행거리를 보수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감소 폭이 각 브랜드와 차종에 따라 들쭉날쭉하다는 점이다. 당장 BMW i5와 벤츠 EQE를 비교해보면 이런 점은 명확히 드러난다. 최근 i5 eDrive40는 399km로 국내 인증을 마쳤다. WLTP 기준인 582km와 비교해 무려 31.4% 하락한 수치다. 반면 경쟁 모델인 EQE 350+은 WLTP(545km)보다 18% 줄어든 471km를 받았다. 유럽에서는 i5가, 국내에서는 EQE의 주행거리가 더 긴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
현대차 아이오닉5

수입차에 유독 가혹하다는 주장도 있다. 유럽차는 WLTP보다 20~30%가량 줄어드는데, 한국차는 겨우 10~15%만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 아이오닉5 롱레인지 2WD는 WLTP 507km, 국내 458km로 9.7% 낮을 뿐이다. 아이오닉6 롱레인지 2WD도 614km에서 524km로 하락 폭은 14.7%에 불과하다. 

업계 한 전문가는 "국내 인증이 까다로운 것은 십분 이해되지만, 일관성 없는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각각의 브랜드뿐 아니라,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차종별로 천차만별인 것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WLTP가 정답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전기차의 특성상 우리나라 인증 방식이 소비자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관성 부족의 헛점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최근 출시된 수입 전기차 연식변경 모델들의 주행거리가 크게 증가했다. 모터와 배터리 등 핵심 기술의 변화 없이,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선 만으로 주행거리가 대폭 늘어나는 사례가 나타났다. 

폭스바겐 ID.4
폭스바겐 ID.4

2023년형 폭스바겐 ID.4의 주행거리는 405km에서 440km로 35km 늘었다. 특히, 저온 주행거리는 288km에서 389km로 35%나 길어졌다. 아우디 Q4 e-트론 역시 연식 변경을 통해 368km에서 411km로 11.7% 늘렸고, 볼보 C40 리차지도 356km에서 407km로 10% 넘게 증가했다. 소프트웨어 수정 만으로 10%가량 향상된 효과를 본 것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측정 결과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일종의 '맞춤형 꼼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면서 "난방 방식을 변경해 저온 주행거리를 늘린 사례가 있는 만큼, 보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21년 메르세데스-벤츠는 EQC의 친환경차 인증을 위해 히터 최고 온도를 32도에서 28도로 낮췄다. 국내 저온 주행거리는 영하 6.7도에서 난방 장치를 최대한 가동한 상태로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엔진의 열을 활용할 수 없어 난방 시 전력 소모가 심하다. 즉, 난방 성능을 낮추면 전력 소모가 적어 주행거리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메르세데스-벤츠 EQC
메르세데스-벤츠 EQC

당시 EQC의 저온 주행거리는 171km로, 상온(309km)의 55%에 불과했다. '저온 주행거리가 상온의 60%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하지 못해 친환경차 인증에 실패했고 보조금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2021년에는 전기차 보조금이 1000만원을 넘었던 만큼(서울시 기준), 판매량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6개월 뒤, EQC의 저온 주행거리는 271km로 재인증을 받으며 보조금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벤츠코리아는 "ECU 소프트웨어 개선 덕분"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은 최대 난방 온도를 낮춘 '편법' 덕분이었다.

결국 제대로 된 주행거리를 측정하지 못하는 기준이 문제다. 업계에서 측정 방식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주행거리를 넘치게 퍼주는 것보다 실제 상황에 맞게 정확히 표시되는 게 좋다. 다만, 지금보다는 더 일관적인 기준과 그에 따른 결과가 제시될 필요는 있겠다. 나쁜 성적을 받더라도 '왜?'라는 의문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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