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젊어진 제네시스 G90, "대한민국 자동차의 현재, 그리고 미래"
  • 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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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3.26 11:00
[시승기] 젊어진 제네시스 G90, "대한민국 자동차의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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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회장님의 차'였던 제네시스 G90이 풀체인지를 거쳐 '젊은 CEO의 차'로 변했다. 사회지도층이 주 고객인 플래그십 세단의 특성상 무난하고 보수적인 디자인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G90은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택했다. 의도적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과한 부분을 덜어내고 최대한 단정하게 꾸미니 오히려 더 젊어진 느낌이 든다.   

제네시스의 '두 줄' 정체성은 신형 G90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다. 완벽하게 두 줄로 통합된 헤드램프와 넓은 오각형 방패 모양 그릴, 그릴부터 휠 아치를 관통해 앞 펜더까지 쭉 뻗은 방향지시등까지 앞서 작년 3월 공개된 콘셉트카 '제네시스 엑스'의 디자인 요소가 대부분 반영됐다.

'두 줄' 헤드램프는 기술적으로도 뛰어나다. 제네시스는 헤드램프를 얇게 구현하기 위해 작고 정밀한 렌즈를 여러 겹 나란히 놓는 '마이크로 렌즈 어레이' 기술을 사용했다. 하향등 기준, 모듈 1개당 200여개의 렌즈를 적용해 밝고 선명한 빛을 쏘면서도 헤드램프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릴 내부는 구릿빛이 도는 살짝 어두운 색으로 해놓았고, 가운데 전방 카메라를 하나 숨겨뒀다. 또한, 그릴 테두리나 범퍼 하단부 크롬은 광을 살짝 죽여 단정함을 극대화했다.

얼굴은 한층 젋어졌지만, 옆에서 바라본 모습은 여전히 중후한 럭셔리 세단 그 자체다. 앞면과 달리 창문 테두리와 도어 하단부에 그대로 들어간 반짝거리는 크롬과 늘씬한 허리, 길쭉한 휠베이스까지. 구형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옆태는 C필러 쪽창을 위로 올라가듯 마무리해 날렵한 느낌을 살짝 더했고, 복잡한 무늬의 20인치 휠로 단조로움을 덜었다. 트렁크 끝 부분도 살짝 에지를 줘 전체적인 측면 라인이 매끈해 보이는 효과를 줬다.  

뒷모습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두 줄 램프가 트렁크를 가로지르며 길게 이어져 디자인 통일감은 줬지만, 과하다는 느낌이다. 두 줄 테일램프에 제네시스 레터링, G90과 AWD 로고, 번호판, 범퍼 좌·우의 빨간 반사판, 배기구까지 너무 많은 요소들이 좌우로 길게 놓여있다. 개인적으로 앞·옆에서 만든 깔끔한 인상이 뒤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실내는 국산차 끝판왕이라 부를 만하다. 널찍한 공간은 기본이고, 각종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둘렀다. 스티어링 휠은 물론 혼 커버와 스포크까지 가죽으로 마감했고, 도어 트림은 물론 천장까지 손 닿는 대부분의 촉감도 좋다. 

운전석에 앉으면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가 가장 먼저 보인다. G80이나 GV80과 달리 흰색 테마로 구성되어 보다 산뜻한 느낌이다. 밝은 갈색 내장과 어우러져 한층 산뜻하다. 대신 차분하고 중후한 맛은 덜하다. 고급 세단의 상징이던 아날로그 시계가 사라진 것도 누군가는 아쉬워할 만한 변화다.

센터 디스플레이도 12.3인치다. 현대차그룹 내 다른 차들과 달리 클러스터와 센터 디스플레이를 한 판에 이어놓지는 않았지만, 운전석과 멀다는 느낌은 없다. 그 아래 위치한 공조 장치 조작부 역시 조그만 터치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졌으며, 기본적으로 흰색 테마를 적용해 산뜻하다. 운전 중 자주 사용하는 온도 조절이나 내기·외기 전환, 성에 제거, 뒷유리 열선 등은 물리 버튼으로 만들어 직관성도 높다.

센터 콘솔 조작부는 유리와 알루미늄 소재로 만들어져 손이 닿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전자식 변속 다이얼은 G80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좀 더 높고 테두리의 굴곡도 크게 설계되어있어 조작하기 편하다. 특히, 후진 기어(R)를 체결할 경우 진동으로 알려줘 안전성도 높였다.

2열은 매우 호화롭다. 대형 세단 답게 1열 시트를 앞으로 당기지 않아도 넉넉해서 편하다. 시승차는 기본 사양인 5인승 시트가 적용된 모델이다. 4인승이 아님에도 좌·우 시트의 기울기를 각각 독립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물론 1열 조수석을 접어 2열 승객이 발을 앞으로 뻗을 수 있는 기능도 마련됐다. 또한, 운전석 헤드레스트에는 별도의 스피커를 마련해 뒷좌석 승객이 차량 경고음이나 방향지시등 소리를 듣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1열 등받이에는 10.2인치 터치스크린이 적용되어 미디어를 이용하거나 지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구형 G90에 탑재된 골프장 홀 및 주변 맛집 안내 기능에 이어 주변 부동산 시세 조회 기능까지 적용되며 '회장님'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모든 기능을 물리 버튼으로 조절하던 구형 모델과 달리 암레스트에 화면이 하나 추가됐다. 벤츠 S클래스처럼 분리할 수 있는 태블릿은 아니지만, 주변 디자인과 멋들어지게 어울리며 선명하고 반응도 빠르다. 여기서는 시트 안마 기능을 비롯해 공조, 열선, 햇빛 가리개, 조명 등을 조절할 수 있다. 

조수석만 쏙 뺀 안마 기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운전석과 뒷좌석에만 적용됐다. 물론 조수석에 비서가 타는 고위직이면 상관 없겠지만, 온 가족이 탈 용도로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뒷좌석도 3명이 앉을 수 있지만, 센터 터널이 너무 높게 솟아있어 사실상 2명 밖에 못 앉을 듯하다. 회장님 옆에 앉을 생각도 말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형 G90에는 이지 클로즈 기능이 적용됐다. 브레이크를 밟거나 센터 콘솔·2열 암레스트, 각 도어 안·팎의 스위치를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또한, 문을 열 때는 도어 트림의 버튼을 누르면 문을 한 뼘 정도 자동으로 열어주기 때문에 가볍게 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장애물이 있어도 인지하지 못하고 문을 여는 탓에 연석이나 볼스터 등의 장애물은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문이 열리는 범위가 사이드미러보다 좁기 때문에 주차장에서 옆 차를 파손할 우려는 거의 없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차체가 잠시 떨리며 V6 엔진이 깨어난다. 그것도 잠시, 방음·방진이 뛰어나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면 시동이 걸려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그제서야 엔진이 존재감을 살짝 드러내며 커다란 차체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신기할 정도로 조용한데, 시내 주행 중에는 엔진음은 물론 노면 소음이나 풍절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정숙함보다 놀라운 것은 승차감이다. 구형 G90도 승차감이 좋다고 느꼈지만, 신형 G90은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되며 더욱 부드럽다. 승차감만 놓고 보자면 독일 럭셔리 세단 부럽지 않을 정도다. 

특히, 전방 카메라 및 내비게이션 정보를 이용해 스스로 서스펜션의 감쇠력을 조절해 운전자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과속방지턱 앞에서는 앞바퀴를 1cm 정도 들어 올려 충격을 줄이고, 험로를 달릴 때는 차고를 높여 승차감을 향상시킨다. 방지턱이나 경사로가 많은 국내 도로에서는 독일 명차보다 G90이 더 대처를 잘 하는 느낌이다.

약 5.3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차체를 가지고 있지만, 후륜 조향 시스템이 더해지며 시내 주행에도 부담이 크지 않다. 저속에서는 뒷바퀴가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약 4도 돌아가기 때문에 유턴 시에도 사뿐하게 돌아나간다.

고속도로에 올라 속도를 높이자 차량이 스스로 높이를 낮춰 공기 저항을 줄였다. 주행 모드는 일반 현대차와 동일하게 컴포트, 에코, 스포츠, 커스텀 등 4가지를 지원한다. 이외 변속 모드로 뒷좌석 승객의 편안함을 고려한 '쇼퍼 모드'가 있다. 솔직히 에코와 컴포트 모드, 그리고 쇼퍼 변속 모드 간 차이는 크지 않다.

스포츠 모드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체결 즉시 스티어링 휠이 묵직해지고 사이드 볼스터가 조여지며 몸을 단단하게 붙잡는다. 스포츠 모드에서 G90은 변속 타이밍을 늦춰 RPM을 최대한 높게 유지해 2톤에 달하는 5.3미터 장신을 부지런히 밀어낸다.

신형 G90에는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54.0kg·m를 발휘하는 3.5리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 변속기가 맞물린다. 시내에서는 그 힘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고속도로에 오르니 강한 힘이 확실히 느껴진다. 최대토크가 1300rpm에서부터 발휘되기 때문에 엔진 회전수를 높이지 않더라도 금세 제한 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 

시내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던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은 고속도로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패인 구간을 지나도 차체가 잠시 흔들릴 뿐 금방 안정을 되찾으며, 고속도로 진·출입로나 급커브 구간에도 차량이 기울어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도록 탄탄하게 지지한다는 느낌이다.

현대차그룹의 최상위 모델 답게 각종 주행 보조 시스템도 빠짐 없이 갖췄다. 고속도로에서도 차로 중앙을 부드럽게 유지하며, HDA를 작동하면 제한 속도나 곡선 구간에 맞춰 스스로 속도를 조절한다. 터널에 들어가기 전 내기 순환 모드로 바꾸고 창문을 닫아주며, 터널을 통과하면 창문을 다시 원래만큼 열어준다.

물론 좋아진 만큼 가격도 올랐다. 시승차 기준 프레스티지 컬렉션에 파노라마 선루프, 뱅앤올룹슨 사운드 패키지, 빌트인 캠까지 대부분의 옵션이 들어가며 가격은 1억3000만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럭셔리 시장에서 역사가 길지 않다. G90도 에쿠스에서 시작해 EQ900을 거쳐 2018년에서야 제 이름을 찾았다. 역사는 짧지만 G90은 어느덧 국내 시장에서 수입 럭셔리 세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발전했다. 후발 주자인 만큼 오히려 과감한 변신을 선택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전략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사전계약 1만8000대라는 기록이 이를 증명해준다.

제네시스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기록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이번 G90은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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