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젠쿱 엔진' 품은 마쓰다 B200…'날것 그대로의 맛'
  • 황욱익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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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02 09:00
[시승기] '젠쿱 엔진' 품은 마쓰다 B200…'날것 그대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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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튜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자동차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국내 튜닝 시장도 하드코어를 추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카가이들에게 출력을 나타내는 '숫자'와 '날 선 감성'은 매우 중요한 지표였다.

고출력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운전의 재미를 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이 역시 이제는 기계나 전자장비 의존도가 높아졌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빠르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으니, 그 시절의 열정과 무모함, 그리고 순수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에 만난 마쓰다 B200 픽업(이하 마쓰다 픽업)은 1990년대 '그 감성'을 21세기에 맞게 재해석했다. 덕분에 시승하는 동안 마냥 달리는 것을 좋아하던 철없던 시절로 돌아갔다. 연두색 도색과 낮은 자체만 보고 고만고만한 아미고 픽업이라 생각했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니 튜닝에 꽂혀있던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슬리퍼라기엔 완성도가 높더라

오너는 이 차를 슬리퍼라고 부른다. 북미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서도 매우 친숙한 단어인데, 고성능 스포츠카를 잡을 수 있을 만큼 튜닝된 오래된 차를 뜻한다. 슬리퍼는 넷플릭스에서도 소개될 만큼 대중적인 튜닝의 한 갈래로, 오너 취향이 반영된 다양한 개성을 엿볼 수 있다. 랫 로드라는 비슷한 장르도 있지만, 주로 1950년대 차가 주를 이룬다. 슬리퍼는 그 이후 차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베이스 모델은 1990년식 마쓰다 B시리즈 장축 캡 플러스 모델이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1960년대부터 미국과 호주 등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06년까지 4세대가 생산됐다. 보디 형태에 따라 더블캡과 샵밴 등이 제공되며, 엔진 버전도 다양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튜닝도 가능하다. B시리즈의 뒤에 붙는 4자리 숫자는 엔진 배기량을 나타내는데, 그야말로 단순함 그 자체다.

평범한 소형 픽업을 슬리퍼로 바꾸기 위해서는 출력을 높이기 위한 엔진 튜닝과 그에 걸맞은 하체 세팅이 필수다. 허름한 콘셉트를 쓰는 랫 로드와 달리 슬리퍼는 깨끗하고 깔끔한 외관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일상 주행과 드래그 레이스 용도를 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마쓰다 픽업은 슬리퍼라 부르기엔 아까운 부분이 많았다. 람보르기니와 같은 컬러 코드로 마무리한 겉모습부터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 30년이 넘었지만 부식이 전혀 없는 차대까지 말이다. 곱씹어보면 슬리퍼보다 레트로 감성에 초점을 둔 느낌이다.

오리지널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아쉽겠지만 엔진룸에는 제네시스 쿠페에 쓰였던 세타 RS 엔진이 자리잡았다. 짝을 이루는 변속기 역시 제네시스 쿠페에 사용했던 수동 6단이며, 디퍼렌셜 박스를 제외한 드라이브 샤프트까지 파워트레인 대부분 현대차에서 생산한 부품을 가공해 사용했다. 아무래도 오리지널 마쓰다 엔진은 출력도 낮고 국내에서 메인터넌스가 쉽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 이 차에는 2200cc 직렬4기통의 91마력 엔진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인터쿨러는 위쪽에 자리 잡았다. 앞쪽 공간이 애매해 내린 결정인데, 별도로 장착된 상시 작동 팬이 냉각 효율을 높인다. 물론, 팬이 달린 인터쿨러는 기성품이 아닌 커스텀 제작 부품이다. 차주의 말에 따르면, 정체구간에서 냉각이 조금 불안정한 것 빼고는 지금까지 트러블 없이 잘 달린다. 바다 건너온 친구가 한국에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 셈이다. 

30년 세월을 견딘 실내에는 21세기 부품이 눈에 띈다. OMP 스티어링 휠과 붉은색 스티치가 예쁘게 들어간 세미 버킷 시트, 센터 콘솔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기어봉(시프트 노브가 맞지만 왠지 기어봉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끼리릭 소리가 나는 운전석 레그룸의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요즘 차와 비슷한 부분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제네시스 쿠페에서 가져온 계기판 못지 않게 특이했던 건 화물차용 에어컨과 소형 선풍기다. 글로브박스 아래 별도로 장착하는 에어컨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낮은 차체는 마쓰다 픽업의 탄탄한 모습을 만들어준다. 전·후륜에는 란초 조절식 댐퍼를 사용해 차체를 낮추고 주행 안정성을 높였다. 리어는 판스프링 구조인데, 별도의 댐퍼를 달아 구동축의 접지력 확보에 신경을 썼으며 판스프링 너트를 바꿔 차체를 낮췄다. 원래라면 작업 현장이나 오프로드를 달렸겠지만, 이 차는 드래그 레이스와 일상 주행을 양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선 작두 위를 걷는 느낌 

마쓰다 픽업은 일상에서 사용하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겉보기에는 예쁘고 관리가 잘 된 소형 픽업인데 드래그 레이스를 위한 가속 세팅과 일상 주행 세팅이 공존한다. 낮춘 차체와 출력대비 효율을 고려한 15인치 휠(요즘 경차보다도 작은 사이즈) 덕에 일상에서도 바닥에 붙는 느낌이 강하다.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 휠은 조작하는 대로 잘 움직이고, 토크도 부족하지 않다. 이 정도면 드레스 업 튜닝만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좀 더 용기를 내면 차의 움직임은 완전히 달라진다. 엔진회전수를 올려 출발하면 쉽게 번 아웃을 할 수 있고, 가속하면 도로 위에서 적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엔진 출력은 약 250마력. 부스트(출고 상태는 0.6바 정도)를 1바까지 올려 응답성을 높였고, 3000rpm이 넘으면 요즘 유행하는 팝콘도 터진다. 고만고만한 승용 픽업이라고 얕봤다고 큰 코 다치기 쉽다. 고회전 구간에서는 영락없는 머슬카다. ECU 세팅으로 유명한 BTR에서 다듬은 맵핑 프로그램은 출력은 그대로 두고 부스트를 올려 어느 영역이든 운전자 의도대로 빠른 가속이 가능하다. 2000rpm 아래에서 부스트가 차기 시작하고, 5000rpm까지 꾸준하고 빠르게 밀어주는 토크가 일품이다.

고속 주행 중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작동하는 블로우오프밸브 소리와 팝콘 사운드는 운전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여기에 MGP에서 라인을 수정한 중저음 배기 사운드까지 합쳐지면,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거 없는 카가이의 파트너이자 장난감으로 변한다.

민첩한 움직임의 비밀은 가벼운 차체에 있다. 한때 튜닝 위 튜닝이라 불리던 경량화는 마쓰다 픽업에 딱 어울리는 단어다. 적재함이 있지만 별 다른 구조물이 없고 약 900kg 공차 중량은 200마력 중반의 출력을 매우 효율적으로 소화한다. 승용차와 달리 튼튼하고 견고한 구조를 가진 프레임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으며, 뒤에서 밀어주는 후륜구동 스포츠카 느낌도 매우 강하다. 휠베이스가 긴 편이라 요철만 없으면 장거리 고속 크루징에도 적합하다.

반면 1990년에 생산된 차인만큼 ABS나 ESP 같은 전자제어 장치는 전혀 없다. 가속 페달 조작이 조금만 서투르면 곧장 토크스티어가 발생해 차체 거동이 불안해진다. 하드 브레이킹을 사용하려면 배짱도 두둑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고속 주행 후 감속인데, 펌핑 브레이크를 활용해 브레이크가 잠기는 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더욱이 힐 앤 토와 카운터스티어 사용에 익숙하지 않으면, 이 차의 성능을 온전히 활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요즘 차들에 비해 훨씬 원초적이며, 운전자 드라이빙 테크닉이 충분히 뒷받침돼야 이 차를 즐길 수 있겠다.

마쓰다 픽업은 스피드와 퍼포먼스, 개성을 추구하는 자동차 마니아에게 딱 어울리는 보기 드문 차다. 효율적인 엔진과 가벼운 자체, 딱 필요한 것만 갖춰진 구조는 운전자와 자동차가 얼마만큼 호흡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극과 극으로 바뀐다. 날것 그대로 순수함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차다.

이제는 빛바랜 추억이 되었지만, 15년 전만해도 전국 각 튜닝숍에서 제작하는 차들은 이런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자동차 성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개성은 흐려지고, 누구나 쉽게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차들이 등장하면서 개성 강한 튜닝카는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고출력 파워트레인과 운전자보다 먼저 반응하는 다양한 편의 장비가 넘치는 시대다. 편리하고 안전한 차들이 대세로 잡은 요즘, 마쓰다 픽업처럼 순수한 퍼포먼스에 집중한 차를 만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이 꼰대 소리같고 보는 이에 따라 불필요한 자극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아주 오랜만에 좌충우돌하며 마냥 달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갈 수 있는 경험이다.

글 황욱익, 사진 맹범수·박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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