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자동차 브랜드가 '구독'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차량을 판매한 이후에도 비용을 추가하면 특정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유료 옵션이다. 소비자들은 썩 달가와하지 않는 눈치다. 이미 충분한 돈을 주고 산 자동차에 또다시 돈을 내야 하는게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기아도 EV9을 통해 구독 옵션을 적용하기로 했다. '기아 커넥트 스토어'란 이름으로,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를 비롯해 라이팅 패턴과 스트리밍 플러스 등을 소비자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기아 EV9 GT라인
기아 EV9 GT라인

일부 소비자들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라이팅 패턴'은 그릴에 장착된 LED 조명의 점등 방식을 다양하게 바꿔주는 기능이고,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는 차량에 내장된 전·후방 센서를 활용해 작동한다. 한 소비자는 "신차를 살 때 LED 조명과 센서 가격이 반영됐을 텐데, 왜 이미 있는 기능에 돈을 더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이전에도 모젠과 블루링크, 기아커넥트(UVO) 같은 유료 서비스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구독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5~10년가량의 무료 사용 후 유료로 전환됐다. 차량을 매각하거나 폐차할 때까지 돈을 내고 쓴 소비자가 드물다는 뜻이다. 본격적인 옵션 구독 시대가 온다면 반발이 꽤 거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브랜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테슬라의 풀 셀프 드라이빙(FSD)이나, 메르세데스-벤츠 EQS의 후륜 조향 시스템, BMW의 열선 시트 및 M 서스펜션 구독도 마찬가지다. 이미 하드웨어를 갖춘 상태에서 소프트웨어만 업데이트하면 되는데, 월 단위로 추가 비용을 받는다고 하자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기아 EV9 실내
기아 EV9 실내

문제는 앞으로 구독형으로 판매될 옵션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기능이 제공될 테고, 자동차 회사가 팔 수 있는 구독 옵션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안전과 관련된 옵션마저 구독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물론, 구독은 어디까지나 소비자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렸던 기능들이 언제 '추가 비용을 내야 할' 옵션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자동차는 점점 비싸지는 상황에서 구독해야 할 옵션까지 늘어난다면 소비자 부담을 더욱 커지게 된다. 가랑비에 옷 젖듯 더욱 큰 비용을 지출하게 될 수 있다. 

특히, 전기차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휘발유나 경유보다 저렴한 연료비가 강점인데, 구독료로 지불하는 돈이 많아진다면 유지비에 큰 차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조금을 쏟아붓고, 학계와 기업이 배터리의 원가를 낮추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는 등 전기차에 대한 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과도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자율주행 시험중인 테슬라. 레벨2 자율주행 '풀 셀프 드라이빙(FSD)'은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구독형 서비스다.
자율주행 시험중인 테슬라. 레벨2 자율주행 '풀 셀프 드라이빙(FSD)'은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구독형 서비스다.

자동차 브랜드가 구독 서비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어마어마한 마진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의 연간 영업이익률은 통상 4~8% 내외다. 반면 구독경제의 아이콘인 넷플릭스의 연간 이익률은 18~20%대다. 자동차 회사들은 성수기나 신차출시 여부에 따라 실적이 갈리는 반면, 구독 플랫폼들은 안정적인 현금 확보가 가능하다.  

업계에서도 구독 서비스가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구독 옵션 채택률이 30%일 경우, 제조사들이 여기에서 얻는 영업이익만 1180억 달러(한화 153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자동차 내부로 침투하는 구독경제' 보고서 중). 지난해 현대차 영업이익이 9조원대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신규 이익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 지갑이 얇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수익 창출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입법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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