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15 제네바모터쇼, 아무도 전기차를 앞세우지 않는다
  • 제네바=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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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5 11:34
[기자수첩] 2015 제네바모터쇼, 아무도 전기차를 앞세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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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폭스바겐이 전세계 기자단을 초청해 진행한 e-골프 시승행사에 참가했다. e-골프는 단순히 전기로 가는 것 외에도 MQB 플랫폼을 사용한 원가절감, 생산시간 단축 등의 장점까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폭스바겐 e-모빌리티 총괄 책임자 토마스리버는 “전기차보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더 현실적인 친환경차”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전기차를 먼저 만들었을까?

# 시대를 앞선 전기차

2010년대 들어 전기차 열풍이 불었다. 양산차부터 콘셉트카까지 다양한 전기차가 소개됐고, 모터쇼 무대를 장악했다. BMW는 2011년 i3 및 i8의 콘셉트카를 공개했고, 꾸준하게 이를 다듬어갔다. 결국 짧은 시간 안에 양산차를 선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일렉트릭 드라이브 혹은 E-셀 등으로 불리는 전기차를 공개했다. 아우디는 e-트론이라 불리는 전기차를 선보였다. 

▲ 2011 제네바 모터쇼에서 메르세데스-벤츠가 메인 무대에 올린 SLS AMG e-셀.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경향을 이끄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기차 공개 및 미래 계획이 발표되면서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전문 제조업체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또 F1, WRC, WEC 등을 주관하는 FIA(국제자동차연맹)은 전기차 레이스 포뮬러E를 통해 새로운 레이스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기차는 아주 빠르게 자동차 산업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 2013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전시된 BMW i3.

당연히 너도나도 전기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밀려드는 파도는 여러 브랜드에게 자체적인 전기차 파워트레인 연구 및 개발을 위한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전기차가 없으면 무능력한 회사처럼 인식되는 분위기였다. 또 굳이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전문 회사들은 많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기차 콘셉트나 미래 계획이 쏟아졌다. 그렇게 미래는 금방 도래하는 듯 했다.

# 방전된 배터리

이제 기술 발전이나 동향은 범위를 십년 단위로 나누기도 애매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바뀌고 있다. 우주로 향하던 전기차 풍선의 바람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전기차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별다른 신차도 없었고, 기술의 발전도 없었다. 완성 단계 때보다 기술 발전 단계에서의 수치적인 성과가 더 클텐데, 전기차는 쉽게 자신의 최대거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 2015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아우디 Q7 e-트론 콰트로. 3.0 TDI 엔진과 8단 팁트로닉 변속기, 전기모터와 17.3kWh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결합된 Q7 e-Tron의 경우 시스템출력 373마력, 최대토크 71.4kg.m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6초만에 도달하며 전기모터를 적극 활용할 경우, 1.7리터의 연료로 100km까지 달릴 수 있다.

인프라에 대한 문제도 꾸준하게 제기됐다. 막상 수준 높은 전기차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전기차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부족한 충전소가 주는 불안감, 오랜 충전 시간은 운전자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운전 생활을 강요했다. 

언론 플레이의 대가 엘론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달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애플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현재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270억 달러(약 30조3102억원)이다. 이는 애플 시가총액의 4%에도 못 미친다.

▲ 메르세데스-벤츠의 여러 친환경 모델. S50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연비는 유럽 기준 35.7km/l에 달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17년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10차종을 추가할 계획이다.

엘론머스크는 언제나 자신감에 넘치는 몽상가지만, 막상 테슬라의 상황은 그리 화창하지 못하다. 만들기만 하면 팔린다던 중국 시장에서 유독 테슬라는 ‘차이나 드림’을 이루지 못했다. 테슬라는 판매 부진으로 중국 법인 직원 600명 중 180명을 해고할 계획이다. 또 경영진도 교체했다. 뿐만 아니라, 테슬라의 지분을 갖고 있던 다임러나 도요타는 조금씩 그것을 매각하고 있는 상황이다. 

# 새로운 국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시대

전기차는 마치 반짝 스타 같다. 작년 제네바 모터쇼와 파리 모터쇼, 올해 제네바 모터쇼에서의 주인공은 단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였다. 전기차를 메인 무대에 올린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이제 콘셉트 단계를 완전히 뛰어넘었다. 대부분의 완성차 브랜드는 물론이고, 슈퍼카 브랜드에게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필수면서 기본이 된 셈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통해 차의 성능은 향상시키면서도 기업평균 연비나 환경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 또 가솔린 혹은 디젤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느낄 이질감도 없다.

▲ BMW i8. 최고출력 362마력, 최대토크 58.2kg·m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4.4초다. 전기모터로만 최대 35km 주행이 가능하며, 시속 120km까지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유럽 기준 연비는 47.6km에 달한다.

이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많은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금 늦었다. 이달말 BMW i8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가 판매될 예정이다. 현대차는 상반기 중으로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통해 공개한 쏘나타 PHEV를 선보일 예정이며, 아우디는 A3 e-트론을 내놓을 계획이다. 포르쉐도 e-하이브리드 모델을 국내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도요타도 프리우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판매할 예정이다.

▲ 2015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전시된 포르쉐 파나메라 S e-하이브리드. 전기모터로만 최대 36km를 달릴 수 있으며, 이때의 최고속도는 시속 133km에 달한다. 국내 판매 가격은 1억6080만원부터 시작된다.

정부도 그동안 미뤄왔던 보조금 정책이나 연비측정 방법 등을 발표하고 있다. 먼저 보조금은 기존 하이브리드 수준으로 받게 된다. 개별소비세, 교육세, 취득세 등 총 270만원과 환경부의 지원금 100만원을 받게 된다. 또 본격적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가 출시되면 추가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사항을 논의할 계획이다.

▲ 2015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코닉세그 레게라에는 최고출력 1100마력, 최대토크 130.5kg.m의 힘을 내는 5.0리터 V8리터 트윈터보 엔진과 3개의 전기모터, 620V의 전압을 내는 9.27k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적용됐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외부 전기 공급원을 통해 배터리를 충전하고, 그 힘으로 꽤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일반적인 엔진이 있음에도 기름 한방울 없이 출퇴근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때문에 기존 하이브리드와는 다른 연비 측정 방법이 필요하다. 국토부는 배터리가 완전 충전상태일때의 연비와 완전 방전 상태의 연비를 조합해 하나의 연비기준으로 알기 쉽게 만드는 방식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 2015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폭스바겐 스포츠쿠페 GTE. V6 TSI 엔진과 2개의 전기모터가 결합돼 최고출력 380마력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5.2초다. 전기 모드로는 최대 50km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이제 브랜드 간의 기술력 자랑과도 같았던, 전기차 꿈에서 깨어난 것 같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더이상 현실적인게 아니라 현실이 됐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단순히 일반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의 연계 기술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장점이 무척 뛰어나고, 앞으로 꽤 오랜 시간 주류로 자리잡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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