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집을 버려야 산다” 브랜드의 정체성 탈피
  • 제네바=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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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1 18:56
[기자수첩] “고집을 버려야 산다” 브랜드의 정체성 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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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세그먼트는 물론이고, 수십년 혹은 백년 넘게 지켜온 브랜드의 전통과 성격까지 변하고 있다. 명확하게 구분되던 일반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격차도 줄어들었다. 점차 한덩어리로 뭉쳐지고 있다. 이번 제네바 모터쇼는 변화하는 자동차 경향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스포츠카만을 생산하던 포르쉐가 카이엔을 처음 출시했을때, 수많은 자동차 저널리스트들과 마니아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그들이 포르쉐에게 기대했던 것은 새로운 스포츠카였지 SUV가 아니었다. 하지만 포르쉐는 카이엔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했고, 이전까지 있던 911이나 박스터와 비교 안될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카이엔의 수익이 하늘로 치솟을수록 마니아들의 원성도 시나브로 잦아들었다.

카이엔이 출시된지도 십년이 넘었다. 카이엔의 성공이 다른 브랜드에게 좋은 자극이 됐지만, 포르쉐처럼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 브랜드는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BMW는 과감하게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무를 썰듯 네모난 자동차를 만들었다. BMW는 이 차로 인해 숭고했던 정체성을 저멀리 던져버렸다. 

▲ BMW 2시리즈 그란 투어러.

지난해 공개된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와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2시리즈 그란 투어러는 BMW 역사상 유래없는 차다. 전륜구동이며, 해치백도 아닌 미니밴이다. 앞뒤 50:50의 무게배분에서도 벗어나 있다. 심지어 2시리즈 그란 투어러는 7인승이다. 그동안 역동성을 강조하며 경쟁 브랜드의 전륜구동 소형차를 조롱하던 BMW가 스스로 조롱당할 차를 만든 셈이다. 

▲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

메르세데스-벤츠는 브랜드 재정립에 한창이다. 특히 서브 브랜드를 부각시키는 중이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가 그 중심이다. 화려했던 독립 브랜드 생활을 끝낸 마이바흐는 다소 초라해졌다. 풀만(Pullman) 모델은 그 특성이 강하지만 마이바흐 S500은 벤츠 S600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최고급 모델인 마이바흐 S600도 AMG S65의 하위 모델로 자리했다.

새로운 마이바흐로 롤스로이스, 벤틀리와 경쟁하겠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속내가 궁금하다. 여전히 다임러는 마이바흐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대대로 독일 최고의 명차를 만들던 마이바흐 브랜드도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 중이다.

▲ 애스톤마틴 DBX.

포르쉐 카이엔 이후 전통적인 스포츠카 브랜드의 SUV 생산 계획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마세라티와 벤틀리는 이르면 올해 양산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람보르기니는 내년쯤 신차를 공개할 계획이고, 롤스로이스도 최근 SUV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애스톤마틴은 이번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첫번째 크로스오버 모델인 DBX 콘셉트를 공개했다. 이 차는 또 애스톤마틴의 첫번째 사륜구동 모델이기도 하다. 

▲ 코닉세그 레제라.

슈퍼카 브랜드의 변화도 눈여겨 봐야한다. 페라리는 이제 터보 차저 엔진을 주로 사용할 계획이다. 또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보탤 예정이다. 자연흡기의 시대는 지났다고 '자연흡기의 신'이 몸소 털어놓는 셈이다. 트윈터보 차저로 엔진 출력의 끝을 보던 코닉세그는 자체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슈퍼카를 선보였다. 그들의 독특한 시스템은 전기모터와 유압클러치가 엔진의 힘을 곧바로 바퀴에 전달한다. 전통적인 파워트레인 시스템에서 벗어났다. 

확고한 철학과 정체성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주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브랜드 이미지만으로 요즘 소비자들에게 수익을 높이는 여러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신차다. 더욱이 고집 센 브랜드 일수록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은 넓다. 브랜드 정체성까지 벗어던진 시도로 장미빛 미래를 맞이할지, 혹은 이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만 떨어지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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