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인을 위한 현대차는 없다…"굿바이 에쿠스"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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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08 12:00
[기자수첩] 노인을 위한 현대차는 없다…"굿바이 에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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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K9은 자동차 업계 기자들의 예상을 빗나가게 한 자동차였다. 우수한 상품성, 디자인, 단단해진 유럽식 승차감에 찬사를 보냈지만 소비자들은 이 차를 선택하지 않았다. 30대에게서야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이 차를 사야 할 대상은 50~60대였기 때문이다. K9은 꽤 훌륭했지만 시장에 비해 너무나 젊었던 셈이다. 

반면 현대차 에쿠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였다. 어지간한 40대가 운전대를 잡았다간 운전기사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에쿠스 뒤통수에 대고 클락션을 울리기는 쉽지 않았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왠지 어르신일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현대차 에쿠스 리무진

비슷한 가격대의 고급 수입차를 놔두고 이렇게 못생긴 차를 산 사람이라면 어쩌면 남의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하는 준재벌이거나 고위 공무원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기아차 K9이 객관적으로 더 나은 기능과 더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상황에서도 에쿠스가 훨씬 많이 팔려 나간건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 젊어진 제네시스 EQ900...해외 시장 노리나

에쿠스 후속으로 새로 나온 제네시스 EQ900은 이전 현대차 에쿠스에 비해 적어도 20살 정도는 어린 소비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S클래스나 7시리즈보다도 훨씬 젊은 느낌이다. 물론 젊어보이는 디자인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독일 브랜드 신차 구입 연령이 평균 50대를 넘는 독일에서도 30대를 겨냥한 듯한 디자인을 내놓곤 한다. 노인들도 젊어보이고자 하고, 젊은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어떤가. '나이가 벼슬'이라는 말이 있듯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은연중 무기로써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회장님'으로 보이는게 더 중요해지기도 한다. 때문에 요즘 중고차 시장을 보면 이상하게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초록색 번호판 고급차'의 중고 가격이 오히려 높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현대차는 아슬란이 최초의 내수 전용 승용 모델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동안 에쿠스도 내수 전용 모델에 가까웠다. 해외 시장에 수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매번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반면 내수에서는 불티난듯 팔려 나갔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이 수출 시장에 비해 턱없이 좁고 고급차에서 수입차와의 경쟁까지 심화되면서 에쿠스의 설자리는 점점 사라져만 갔다. 반면 해외 시장에선 디자인이 지나치게 괴팍하고 낡은 느낌이라는 이유에서 호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 제네시스 EQ900 랜더링

결국 에쿠스의 후속 제네시스 EQ900은 내수 시장에서 안정이 보장되던 보수적 디자인을 포기하고 훨씬 젊은 층을 위한 디자인으로 변화됐다. 결국 K9과 같은, 수요층과 디자인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년층이 바라보는 EQ900은 어쩌면 K9보다 더 젊게 보일지 모른다. 국내 시장에선 일대 혼란이 생길 수도 있지만 수출을 위해선 이 길이 맞는 길임은 분명하다. 

# 50대를 위한 차는 없다?

정작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존 에쿠스가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는 디자인 문제도 있었지만 현대차에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만큼 해외 소비자들의 신뢰감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마진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추구하는건 전 세계 브랜드들 모두의 공통적인 방향이다. 원가가 비슷한 상황에서 차 가격을 수십퍼센트만 올려도 수익성은 수백퍼센트나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만의 시도도 아니고, 새로운건 더더욱 아니다. 누구나 시도 했지만 성공한 브랜드는 몇 안된다. 구체적인 추구점 없이 막연히 '프리미엄'이라고 내세웠다간 백전백패라는걸 자동차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해외의 한 관광객이 촬영한 제네시스 EQ900

이전 에쿠스는 내외관 모두에서 젊은 소비자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고연령 소비자들을 잡는다는 확고한 전략을 갖고 있었다. 해외 고급차 회사들이 갖지 못했던 국내 소비자들만을 겨냥한 강점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새 EQ900의 디자인과 주행감각을 보면 이제 집토끼는 잡았고 산토끼까지 잡겠다는 포석이다. 잡힌 고기는 어차피 또 EQ900를 살 것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내수 시장도 결코 녹녹치 않다. 

젊은 차만 만들겠다는 현대차와 제네시스 브랜드. 우리네 회장님(chairman)들은 대체 어떤 차를 타야 하는가, 그것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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