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비틀에 '푹' 빠지다…'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 독일 뤼벡=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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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20 08:34
폭스바겐 비틀에 '푹' 빠지다…'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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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톱, 스톱!"

아리따운 금발 여성이 급히 차를 멈췄다. 조금 전 촬영할 때 격하게 손을 흔들며 호응해준 여성이었다. 차에서 내리더니 쑥스러운 표정으로 초콜릿이 든 손을 내밀었다. 천성이 대한민국 '차도남'인지라 초콜릿을 받고 쿨하게 돌아서려 했지만, 이 여성은 함께 사진까지 찍자고 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그린라이트'인가. 금발여성에게 대시를 받는건 처음.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딱' 팔짱을 끼고 웃어줬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독일에서 열린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비틀 카브리올레의 루프를 열고 500여대의 비틀의 주행 모습을 촬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유명인이 되어버렸다. 자신들의 축제에 웬 동양 남성이 나타나 힘들게 촬영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나 보다. 행사장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디선가 외국인들이 나타나 '어디서 왔냐. 아까 너 봤다. 함께 사진찍어도 되냐'며 아는 체를 했다. 처음엔 무조건 같이 찍었지만 하도 찍자고 난리여서 나중엔 여성들하고만 찍었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비틀 선샤인 투어'는 2004년 시작해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유럽 최대의 비틀 축제다. 이곳은 낯선 동양인도, 비틀이 없는 구경꾼도, 차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주인에게 끌려온 견공들도 모두 거리낌 없이 즐기는 행사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음이 표정에서 느껴졌다. 

◆ 변덕스런 날씨와 쿨한 비틀 오너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500여대의 비틀이 한데 모였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보자.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가 열린 16일.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독일인들 성격과 이곳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날씨는 마치 중2병 걸린 사춘기 소녀처럼 변덕을 부렸다. 흐리고 비가 오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이 쨍쨍 비추기를 반복했다. 행사가 잘 치러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현장에 모인 비틀 오너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웃고 떠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1차 집결지인 뤼벡 공항. 비틀이 하나 둘씩 모이더니 순식간에 500여대의 비틀이 공항을 가득 메웠다. 종류도 다양했다. 1세대 오리지널 비틀부터 2세대 뉴 비틀, 3세대 더 비틀까지 단 한 대의 똑같은 비틀도 없이 각자의 개성을 살리며 잔뜩 멋을 부렸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에 참가한 오리지널 비틀

대부분의 비틀들이 튜닝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예쁘게 꾸민 모습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에 손을 댔다'고 하면 휘황찬란한 바디킷을 입히고 배기음을 과격하게 키우고 출력을 높이는 것이 보통인데 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말하자면 '남에게 뽐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내 비틀을 꾸며주기 위해 새 옷을 입히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더 아름다운 비틀을 만드는데 신경을 쓴 듯했다.

엠블럼만 꾸며도 차가 확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보여준 모델들이 많았다. 실제로 작년 행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틀'로 선정된 차는 별다른 튜닝 없이 뜨개질로 만든 털옷을 입은 뉴 비틀이었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500여대의 비틀이 한데 모였다

행사 참가자들의 면면도 매우 다양했다. 국내에서 비틀은 20~30대 젊은이들의 전유물인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머리카락이 하얀 어르신들이 더 많이 보일 정도였다. 비단 1세대 비틀뿐 아니라 최근 출시된 더 비틀을 멋지게 꾸며 큰 환호성을 받은 어르신도 있었다. 또, 할로윈 파티에 온 것처럼 한껏 꾸민 사람들,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인 참가자 등 등 다양한 세대가 함께했다.

◆ 500대 비틀, 한 자리에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뤼백 공항에서 주최자의 간략한 설명이 끝나고 행사 장소인 트라베뮌데 해변으로 출발했다. 갑작스레 500대의 차가 도로에 진입하니 도로가 막히는 것은 당연한 일. 500여대의 비틀이 일렬로 쭉 늘어선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지만, 주변 운전자에게는 사실 민폐였다. 그런데도 경적을 울리거나 짜증내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대열에 빠지면 열이 흐트러지니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비틀 운전자 역시 억지로 끼어들거나 과속하지 않고 여유롭게 앞 차를 따랐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비틀들이 단체 주행을 하고 있다

1차 집결지인 뤼벡(Lubeck) 공항에서 행사 장소인 트라베뮌데(Travemünde) 해변까지 약 50km. 비틀 2.0 TSI 카브리오의 지붕을 열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열심히 쫓아갔다. 비틀 선샤인 투어는 매년 열린다지만, 이 장관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차를 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갑자기 옆을 지나가는 비틀이 경적을 울렸다.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 깜짝 놀라 쳐다보니 인상 좋은 외국인 아저씨가 씨익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이 신호에 맞춰 뒤 따르던 비틀들도 경적을 울리고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순식간에 도로가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시청앞 광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달아올랐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비틀들이 단체 주행을 하고 있다

도로 정체가 어느 정도 풀리니 비틀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흰색 차체에 검은색 데칼로 치장한 더 비틀이 신차임을 뽐내듯 빠르게 치고 나갔다. 이에 질세라 오리지널 비틀과 뉴 비틀도 혼신의 힘을 쥐어짜며 바짝 따라붙었다. 이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동안 저 멀리서 엔진과 배기를 튜닝한 더 비틀이 순식간에 나타나더니 굉음을 뿜어내며 사라졌다. 나이 지긋하신 운전자 어르신은 머리에 헬멧까지 쓰고 레이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그래도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천천히 달리며 담소를 나누며 여유있게 즐기는 분위기였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들자 아이들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대부분의 카브리오 모델은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지붕을 열었다. 촬영 카메라를 지나갈 때마다 경적을 울리며 손을 흔드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진짜 동호회 축제

트라베뮌데 해변 인근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수백대의 비틀이 경적을 울리면 시끄러워 짜증이 날만도 한데, 행인들은 일일이 손을 흔들며 환호해줬다. 한 여성은 손키스를 날려주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500여대의 비틀로 가득찬 트라베뮌데 해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행사장 분이기도 독특했다. 특히, 어디를 둘러봐도 소외되거나 심심해 하는 사람 없이 이곳에 모인 4500여명 모두가 자유롭게 즐기는 분위기였다. 

공연 무대가 설치된 곳에서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한 켠에 마련된 라운지에서는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맥주와 소시지, 피자, 와인 등 마셨다. 연인들은 손을 꼭 잡고 해변을 거닐었고, 바닥에 설치된 대형 체스판에서는 고수 할아버지들의 심오한 대결이 펼쳐졌다. 아이들을 위한 '골프 클럽으로 골프(자동차)치기' 대회도 열렸는데, 한 아이의 생일이라는 말에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서로의 비틀이 어떻게 꾸몄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도 이어졌다. 이곳에 모인 비틀 오너들은 대부분 저렴한 재료를 구입해 직접 꾸미기 때문에 상대방의 비틀 꾸미기 노하우는 알아둬야 할 중요한 정보다. 특히, 뿌듯한 표정으로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람과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메모까지 하며 듣는 사람의 조합을 보니 '정말 비틀을 좋아하는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 비틀 선샤인 투어, 그리고 폭스바겐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비틀을 너무 사랑한다는 한 동호회 회장이 시작한 '비틀 선샤인 투어'는 벌써 10주년을 맞았다. 규모는 더욱 커졌고 비틀은 날이 갈 수록 더 화려해졌지만, 비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행사의 본질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행사의 주최자인 개비 크라프트(Gabu Kraft) 역시 “매년 참가자들이 자신의 차를 디자인 하는데 쏟아 붓는 그 엄청난 창의성과 열정은 나를 정말 설레게 한다”고 밝혔다.

특히, 매년 진행되는 '올해의 비틀' 선정 광경은 정말 부러웠다. 3명의 심사위원이 전시된 비틀을 보고 점수를 매겨 선정하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아낌없이 박수를 치며 축하를 해줬기 때문이다. 국내 행사였다면 '왜 저 사람이 탔냐, 심사위원이 짠 것 아니냐, 심사 기준이 무엇이냐'라며 투덜거릴 수도 있는 분위기였는데도 말이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폭스바겐 역시 대단했다. 폭스바겐은 2005년 2회 행사부터 '비틀 선샤인 투어'를 후원했지만, 별다른 마케팅이나 광고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 흔한 튜닝킷이나 용품 부스도 없었고, 폭스바겐 로고가 붙은 현수막 하나 찾아 볼 수 없었다. 오직 일반 사람들이 보기 힘든 비틀 듄과 비틀 GRC 등 콘셉트카를 전시해 보다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을 뿐이다. 눈에 거슬리는 억지스런 광고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비틀을 좋아할 수 있도록 소정의 '편의'를 후원하는 역할만 했다. 

참가자들을 인터뷰 해보니 10명 중 4명은 최근 1년 이내에 비틀을 샀다고 했다. 한 참가자는 "작년 행사에 친구 따라 참가한 후 직접 '비틀 선샤인 투어'에 참가하고 싶어 비틀을 구입했다"면서 "이렇게 즐거운 축제에 비틀 오너로 참가해 무척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출시된 지 수십년이 지난 오리지널 비틀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국산차 현대 포니는 대부분 폐차돼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지만, 오리지널 비틀은 아직 현역으로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수십년이 지나도 망가지지 않은 기술력이나, 수리할 수 있는 부품이 충분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아직까지 깊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독일 사람들이 얼마나 자동차를 아끼는지, 자동차를 위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을 갖췄는지, 왜 독일 자동차가 세계 최고인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유쾌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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