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는 오늘도 더러운 택시를 탄다
  • 김한용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4.08.11 13:17
[기자수첩] 나는 오늘도 더러운 택시를 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산주의는 애초부터 성공할 수가 없었다. 공산주의에서라면 매장에는 시원찮은 비누 한두종류에, 맥주는 대동강 맥주 밖에 없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향이나 모양이 좀 다르다고 한들 '전체 인민의 이익'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서다. 경쟁이 없는 상품이라는건 세월이 지난다고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경쟁없이는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화론의 핵심은 종의 분화와 다양성이다. 세상에 공룡만 있었다면 몰라도 조류나 포유류 등 다양한 종이 가득한 세상에선 한두종이 멸종하더라도 멈춰지지 않고 영속성을 이어가며 점차 진화 된 형태로 분화 돼 간다. 진화된 종은 결국 자손에게 DNA를 남기고, 다시 분화되기를 반복하며 진화는 계속돼 간다.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진화론적이다. 수많은 종이 탄생하고 일부는 먹히고, 일부는 멸종하고 어쨌거나 살아남는 종이 DNA를 남겨 계속 이어지게 된다. 피쳐폰이 멸종을 앞둔 점이나 아이폰의 DNA가 스마트폰에 녹아 생태계를 꾸려 나가는게 바로 자본주의고 진화다. 

철저한 자본주의에 몰입된 우리나라에서 의외로 공산주의적인 발상을 만날때가 있다. 찾아보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번에는 택시만 떼놓고 보자.

법적으로 아직은 대중교통에 속하지도 않는 택시. 그런데도 택시의 요금과 운행 방법 등은 오로지 정부가 결정한다. 택시 기본 요금은 불과 3000원. 운전기사 입장에서 보면 사납금과 LPG 가격을 감안했을때 한시간당 최저 임금 5200원은 거의 가져갈 수 없는 구조다. 

이래서야 승차거부 없이 친절 운행을 하라고 요구 하기 어렵다. 택시 기사는 언제나 불만이 가득하고, 그 못지 않게 소비자 불만도 크다. 서비스 질이 최악이라는 것이다. 더러운 차안에선 냄새가 나고, 기사는 불친절하고, 멀미나도록 험한 운전은 예사라고 하소연 한다.

모든 택시가 그런건 아니지만 택시는 브랜드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니 골라탈 방법도 없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했던가. 금액이 정해져 있다면 낡은 택시를 낮은 인건비로 운영하는게 사업자 입장에선 최선이니, 점차 서비스가 낮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택시를 타느니 차라리 돈 좀 더 쓰더라도 내 차를 끌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가용 이용률을 줄이겠다는 정부 시책이 매번 공염불로 끝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 이런 상품이 몇이나 될까. 커피 한잔도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부터 6000원짜리 캬라멜마끼아또까지 골라 마실 수 있는 시대지만, 매일 타는 택시는 돈이 있건 없건 오로지 똑같은 주황 택시를 탈 수 밖에 없다니... 설령 자가용으로 페라리와 벤츠 S클래스를 갖고 있는 사장님이라도 예외가 없다.

▲ 우버 서비스

이런 척박한 땅에 '우버(Uber)'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차는 주로 벤츠 E클래스 같은 수입차거나 최소한 현대 에쿠스다. 운전기사는 말할 수 없이 친절하다.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주고는 말을 시키기 전까지는 입을 떼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의 버튼만 누르면 차는 5분만에 내 앞에 떡하니 대기한다. 미리 등록해놓은 신용카드로 결제 되기 때문에 내릴때 구차하게 지갑을 열 필요도 없다. 마치 정말 기사 딸린 자가용을 탄 느낌이 든다. 한번 경험해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이용할 정도로 훌륭한 서비스 경험이다. 

'그밥의 그나물'식이 돼 버린 모범택시와 이용 요금은 비슷한데, 서비스의 질은 하늘과 땅차이다. 물론 택시비를 아까워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건 아니고, 그 정도쯤이야 하는 사람들만을 상대한다. 

진화론적이나 자본주의 관점에서도 강력한 경쟁상대가 등장한 것이고, 기존 택시 서비스들이 각성하고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자가용 이용을 줄인다는 정부 시책에도 걸맞다. 

▲ 구자철이 우버를 이용한다. 구자철도 불법을 저지르는건가.

그런데 서울시의 반응은 의외다. 서울시는 '우버'를 '불법 택시'로 간주하고 금지 시킬 예정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우버와 유사한 '스마트폰 콜택시' 서비스를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 서비스 핵심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놀라운 기술이나 기교가 아니라 좀 더 비싸고 더 나은 택시 서비스라는 점이다. 새로운 택시를 원하는 층이 존재하는건 사실이다. 만일 아무도 비싼 택시를 원치 않는다면 우버는 논란도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논란이 된다는 것은 수요가 있다는 것이고 수요-공급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택시는 계속 서민의 발로 남아야 한다는 점이나, 고급 서비스에 대한 기대를 죄악시하는건 너무 괴상하다. 정작 택시 운전사를 보호하는 정책은 내놓지 못하고 그저 업계를 구태의연하게 유지하기 위한 정책으로, 택시 운전사와 모든 국민들에게 불편을 참고 견디라는 정책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국민 소득은 3만불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택시 기본 요금은 희한하게도 단 3불에 묶여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말도 못하게 싼 가격이다. 심지어 인건비 싸다는 중국 북경(2400원)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왜 우리 국민은 커피 한잔 값 더 내고 나은 서비스를 받아선 안되나. 돈을 더 내고라도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왜 정부가 나서 불법이라 규정하는가. 우리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조금 비싼 기네스도, 스타벅스도, 공차도 마음껏 마실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런 과정에서 택시 전체의 서비스도 발전할 수 있는게 아닐까. 

제약을 없애자는게 아니라, 조금은 열린 경쟁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좀 더 나은 택시를 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거다. 위정자들은 기사 딸린 세단 뒷좌석에서 정책을 결정하겠지만, 이 글을 쓰는 나는 오늘도 더러운 택시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