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도요타 아발론 하이브리드, 캠리 너머의 '플래그십'
  • 전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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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12 13:11
[시승기] 도요타 아발론 하이브리드, 캠리 너머의 '플래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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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아발론은 실패한 모델이었다. 2014년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가격대가 꽤 높았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캠리 3.5 가솔린도 팔던 시기여서 브랜드 내에서의 간섭도 있었다. 국산 경쟁 모델인 그랜저와 제네시스(DH)를 노리기에는 뭔가 부족했고, 수입 경쟁 모델인 토러스나 300C는 잡는다는 표현이 미안할 정도로 존재감이 떨어지는 모델이었다. 그렇게 아발론은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잊혀졌고, 슬그머니 국내 시장에서 사라졌다. 마치 비운의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현대차 아슬란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도요타에게 캠리 너머의 플래그십은 여전히 필요한 존재였다. 전체적인 볼륨은 캠리가 책임진다고는 하지만, 브랜드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캠리 다음을 책임질 더 큰 차가 있어야만 했다. 

고심 끝에 한국도요타는 아발론을 다시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예전처럼 고배기량-고사양의 가솔린 모델 대신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신형 아발론을 출시하며 국내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낸 것이다.

#도요타 변화의 힘 ‘TNGA'가 대체 뭐야 

신형 프리우스부터 적용된 TNGA는 많은 것을 바꿔놨다. 얌전하고 심심하던 도요타가 이제는 다이내믹과 퍼포먼스를 논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기술은 이미 업계 최고 수준. 여기에 강력한 주행 능력이 더해지니 연비와 성능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새로운 도요타 하이브리드로'로 진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TNGA는 ‘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로 다른 브랜드의 플랫폼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여러 복잡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도요타의 모든 변화’란 표현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TNGA는 플랫폼뿐 아니라 각종 부품의 유기적인 연결과 작업자의 효율적인 움직임 등 차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TNGA를 통해 본 가장 큰 혜택은 기존 모델과는 다른 저중심 설계다. 새로운 아발론은 개발 초기부터 주행 성능 개선에 중점을 두고 무게 중심을 최대한 낮췄다. 또, 핫스템핑 공법, 레이저 스크루 용접, 구조용 접착제 사용 등을 통해 차체 강성을 높였다. 효율만 강조했던 이전 하이브리드 모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이내믹한 주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 도요타의 디자인 변화, 이젠 놀랍지도 않다

아무리 파격적인 변화도 시간의 익숙함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도요타의 파격적인 디자인 변화에 충분히 익숙한 상태. 처음 봤다면 기겁을 했을법한 디자인이 이제는 젊어진, 컴팩트한, 세련된, 센스있는 등의 표현으로 바뀌었다. 이는 플래그십 모델인 아발론에서 예외는 아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최근 유행을 반영해 패스트백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그릴에서 출발한 매끈한 곡선은 지붕을 타고 올라간 뒤 트렁크 리드로 완만하게 흐른다. 앞뒤 오버행을 줄이고 휠베이스를 늘린 측면은 다양한 라인이 과감하게 사용됐다. 이 선들은 모여 면이 되었고, 이 면은 빛을 이용해 울룩불룩 음영을 만들어내며 볼륨감을 뿜어냈다.

캠리도 적용된 그릴 디자인은 아발론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하단 그릴을 극단적으로 넓힌 디자인은 얇게 뻗은 램프와 함께 색다른 느낌을 자아내는데, 과격한 디자인의 범퍼와 위로 길게 뻗은 에어커튼이 이를 든든하게 감싸주며 일관된 디자인 콘셉트를 주입시킨다. 소형차나 중형차에 더 어울릴법한 디자인 디테일이 이렇게 5미터에 달하는 대형 세단에도 잘 어울릴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후면부 역시 울퉁불퉁 굴곡을 준 램프 디자인이 적용됐다. 이 램프는 가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미국에 판매되는 고급형에는 그랜저처럼 불이 들어오지만 국내 판매 모델에는 안 들어온다.

차체 비율도 색다르다. 길이는 4975mm나 되는데 높이가 1435mm에 불과하다. 이는 그랜저(4930, 1470) 및 G80(4990, 1480)과 비교해 꽤 차이가 나는 숫자다. TNGA 저중심 설계를 통해 전고를 낮춘 덕분인, 이전 모델에 비해 전고는 25mm, 시트포지션은 22mm, 보닛은 30mm 낮아졌다.

# 고급 소재로 꾸민 편안한 실내. 과거와 미래의 부조화?

실내에 들어오니 캠리와의 차이가 확 느껴진다. 캠리 윗급이 확실하다. 소재의 고급감은 기대 이상이고, 일본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계승한 듯한 꾸임새는 심미적 만족감까지 준다. 넉넉한 공간은 물론, 시트에 앉은 느낌도 편안하고 안락하다. 특히, 센터콘솔을 높게 올려 운전자를 위한 독립 공간을 만들어준 것도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센터페시아 디자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를 제외하면 렉서스라 해도 믿겨질 정도로 고급스러운데,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아발론의 급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9인치 모니터를 중심으로 센터터널까지 쭉 이어지는 디자인은 깔끔하기도 하고 미래지향적이기도 한데, 고급스러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조작 버튼의 숫자도 너무 많고, 크기와 배치도 조잡해 보였다.

가격을 맞추다 보니 앞좌석 메모리 시트 및 통풍시트, 열선 스티어링휠, 뒷좌석 열선시트, 전동 트렁크 등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사양들이 빠진 점도 아쉽다. 그랜저 등 국산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필수 옵션이다.

# 그냥 하이브리드가 아니다. 퍼포먼스 하이브리드다

퍼포먼스 하이브리드라는 표현에 코웃음을 치기 보다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요타의 성실함은 정평이 나 있다. 웬만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까지 있다. 이런 방향성과 꾸준함은 도요타의 말에 꽤 높은 신뢰도를 부여한다. 확실히 플라시보 효과가 있다. 

새로운 아발론 하이브리드에는 2.5리터급 D4-S 가솔린 엔진에 2개의 전기 모터가 추가됐다. 178마력의 엔진(22.5kg.m)과 119마력(88kW)의 모터가 뿜어내는 시스템 출력은 218마력으로, 캠리 하이브리드보다 7마력 높다. 88kw는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같은 수준이다.  D4-S 엔진은 직분사와 포트분사를 함께 사용하며 우수한 연소 효율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e-CVT라 불리는 무단변속기지만, 기어봉 조작을 통해 가상의 6단 매뉴얼 수동변속도 가능하다. 놀라운 점은 일반 자동변속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속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특히, 시프트 다운을 하면 마치 프리우스의 B(브레이크) 모드를 쓰는 것처럼 강력한 회생제동이 이뤄지며 속도를 줄인다. 웬만한 상황에서는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기어 단수를 낮춰도 될 정도다. 

전체적으로 퍼포먼스가 좋아졌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엔진은 더 열정적으로 개입하고, 듀얼모터는 쉴새 없이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며 배터리의 능력을 최대치로 뽑아낸다. 변속기도 똑똑하게 엔진과 모터의 힘을 조율한다. 초반 움직임이 다소 무겁다는 느낌을 빼고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무리하게 힘을 뽑아내도 엔진은 낮은 중저음을 내뱉으며 원하는 속도로 이끌어준다. 이전의 카랑카랑 신경질적인 음색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속이나 재가속 시에도 힘들어하는 티를 거의 내지 않는다. 물론, 남모르게 열심히 일하는 모터의 공도 잊으면 안되겠다.

TNGA를 적용해 차체의 무게 중심을 낮춘 것이 꽤 효과를 봤다. 5m짜리 세단임을 고려하면 핸들링도 경쾌하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는 조금 묵직한데, 스티어링휠의 민첩함이 이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여 꽤 일체감 있는 거동을 만들어낸다. 저속은 물론, 고속에서까지 차체 움직임에 불안감이 없다. 

차체와 서스펜션의 조합도 인상적이다. 특히, 단단함과 부드러움의 경계를 교묘하게 파고든 서스펜션 세팅은 주행 상황에 따라 편안함과 스포티함을 재빠르게 잡아줬다. 예전 도요타의 그 기분 나쁜 낭창거림은 사라졌다. 올곧게 운전자의 지시를 따른다. 후륜 서스펜션에는 더블위시본을 적용해 2열 승차감뿐 아니라 안정적인 후미 움직임을 확보한 것도 마음에 든다. 

진동과 소음도 잘 잡았다. 하이브리드 차량 자체가 워낙 조용해 엔진음을 비롯해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꽤 크게 들리기 마련인데, 신기할 정도로 잘 억제했다. 도요타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 3개였던 엔진 마운트를 4개로 늘려 엔진 진동 및 소음을 줄였고, 차체 곳곳에 흡·차음재를 다량 사용했다. 얼마나 소음을 줄였는지 가·감속 시 작동하는 모터음까지 안 들릴 정도다.

연비는 리터당 16.6km/l다. 그랜저 하이브리드(16.2km/l)보다 조금 좋은 수준이다. 아발론 하이브리드의 연비는 주행 스타일을 현실적으로 반영한다. 약 5시간 동안의 시승 중 퍼포먼스 주행에서는 약 13~14km/l, 일상 주행에서는 17~18km/l, 약간의 연비 주행에서는 19~20km/l까지 나왔다.

# '가격 경쟁력 vs 고급 사양'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국내에 출시된 아발론 하이브리드는 XLE 트림이다. 앞서 말했듯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간 수준의 트림을 가지고 왔다. 여기까지는 한국도요타가 결정한 전략적 선택이다. 가격 대 사양의 대결 결과는 판매량이 판단해줄 몫이다.

다행히 10개의 에어백, 도요타 세이프티 센스(TSS), 사각지대 감지 및 후측방 경고 시스템, 드라이브 스타트 콘트롤 등 다양한 안전사양은 빠짐없이 들어갔다. TSS는 차선이탈 경고를 비롯해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 긴급 제동 보조시스템, 오토매틱 하이빔 등 4가지 기술을 포함한다. 

아쉬운 점은 차선이탈방지 시스템의 개입은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나오는 경쟁 모델에는 차로 중심을 유지하며 운전해주는 반자율 기능까지 들어가 있는데, 아발론 하이브리드는 운전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살짝 돌려주는게 전부다. 이미 5년 전에 도요타의 고속 자율주행 기술을 체험한 터라 기술이 없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 앞선 첨단 기술에 신경을 써줘야 한다. 차량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경쟁모델은 그랜저 하이브리드? 어코드 하이브리드? 아니면 파사트?

3.5 가솔린 대신 하이브리드를 들여온 것은 너무도 당연한 판단이다. 2014년 당시의 경쟁 모델이었던 토러스와 300C는 자취를 감춰버렸고, 그랜저도 하이브리드 판매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만, 캠리를 그랜저와 붙이던 한국도요타의 입장이 조금 난처해진 듯하다. 아발론 하이브리드와 경쟁할 국산차는 그랜저 하이브리드(K7 하이브리드)가 유일한데, 이 차는 이미 캠리 하이브리드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랜저 하이브리드 최고급 모델의 가격은 3993만원으로, 캠리 하이브리드(4190만원)보다 200만원이나 저렴하다. 추가 옵션을 모두 더해도 4488만원으로, 이 역시 아발론 하이브리드(4660만원)보다 200만원가량 낮다. 결국 비슷한 가격으로 더 큰 수입차를 탈 것인가, 아니면 사양 좋은 풀옵션의 국산차를 탈 것인가의 고민으로 수렴된다. 

수입차 중에서는 한등급 낮은 어코드 하이브리드 최고급 모델의 가격이 4540만원으로 아발론 하이브리드와 비슷한 가격대다. 더 큰 차가 필요한 소비자에게는 꽤 매력적인 대안이다. 또, 디젤에 대한 대체재로서의 하이브리드를 생각한다면 4263~5219만원의 파사트도 사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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